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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까지 보탤 필요는 없지"
신양숙  |  일리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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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15  01:5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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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 질질 끌려 다니느냐며 핀잔을 주는 남편 때문에 속이 상한다.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차오르지만 지금은 참아야 한다.

취향이 비슷한 것도 아니고 교감이 잘 되는 친구도 아니어서, 남편이 보기에는 내가 K에게 끌려다니며 원치 않는 만남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지금은 이혼이 평범해 보이는 세상이 되었지만, K가 이혼했을 당시, 남편이 장애인이어서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K가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행동도 했더랬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K는 많이 지쳐 보였고 불안해 보였다. 대화 도중에 불끈불끈 사나워지기도 했다. 왜 아니겠는가?

전 남편이 신체적으로 약자이긴 했지만, K 역시 폭력의 피해자였다. 고학력자가 저학력자에게 던지는 비하 발언,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 퍼붓는 언어 폭력도 폭력이다. 신체적 폭력을 당해야만 폭력의 피해자라 할 수 있을까? 신체 폭력보다 더 치유되기 힘든 것이 언어 폭력으로 인한 인격 학대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이야기하는 동안 K는 남편의 언어 학대에 대한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문득 우리의 내면에는 언어 무기고가 있고, 어마어마한 양의 무기들이 저장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 핵폭탄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K는 추측컨대 남편으로부터 언어의 핵폭탄을 맞은 것 같았다. 그래서 보란 듯이 이혼으로 대응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신체적 약자인 남편보다 K가 더 많은 비난을 받았다. 지치고, 힘들고, 분했던 마음을 어디에도 풀어놓을 수 없었는지, 그녀는 나를 만나자마자 봇물 터지듯 그동안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들을 쏟아놓았다.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는 게 보였다.

순간 마음이 싸~아하게 아파오면서 그녀가 몹시 안쓰러웠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독이 되었는지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가슴을 치기도 하고 부여잡기도 했다. 건강도 안 좋아 보였다. 모처럼 비난하지 않고 그냥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을 만나서인지 숨도 안 쉬고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야기를 마치자 그녀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드디어 숨이 제대로 쉬어지는 모양이었다.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했지만,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삶의 안정을 되찾았다고 했다. 그제야 나도 마음이 놓였다.

한숨 돌린 K가 내게 물었다. “너는 왜 아무 말 안 해? 너는 왜 내가 잘못한 거라고 지적하지 않아?” “......”

나는 그 대답을 남편에게 했다. “다들 비난하는데 나까지 보탤 필요는 없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못난이들을 만났다. 왕따 당하고, 잘못한 일 때문에 손가락질 받고, 사회 적응력이 떨어지고, 제 밥벌이도 못하고... 나는 그런 못난이들에게 마음이 쓰인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못난이들을 만나면, 내 발걸음은 저절로 그들의 곁에 가 있다. 나도 그런 못난이 중 하나였기에...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태복음 12: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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