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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당하는 자를 위한 종이사야 50:4-9
허영진 목사  |  revhu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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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21  00: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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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닥터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윌리엄 허트라는 배우가 잭 먹키라는 외과의사 역으로 나옵니다. 먹키는 명성이 높은 성공한 의사였습니다. 그는 수련의들에게 환자와 너무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환자를 대할 때는 간단하게 취급하는 게 좋아. 지나친 동정은 금물이야. 나는 고통을 알아. 나는 의사라구.”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마침내 고통을 아는 것과 고통을 체험하는 것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자신이 악성 종양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방사능 치료를 받으면서 그는 모든 의료인들에게 불평과 분노를 터뜨립니다. 그는 의료진으로부터 보통 환자와 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진료를 위해 한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복잡한 서류를 작성해야 합니다. 입원실 배정 절차도 거쳐야 합니다. 그는 특히 의사들이 무성의하다고 느끼며 화를 냈습니다.

병원 신세를 져본 사람이면 누구나 의사들이 성의가 부족하고 냉정하다고 느낀 적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은 담임 목사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낀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는 고난 받는 종은 결코 무정한 자가 아니요, 고통을 참으로 아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이사야서 50장은 이사야 선지자가 쓴 종의 노래 네 편 중 셋째 편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종의 노래는 “그는 (...)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사 53:3)고 노래한 넷째 편인 이사야 53장입니다. 말하자면 넷째 편이 종의 노래의 클라이맥스입니다. 그러나 고통에 대해 가장 잘 묘사한 노래는 셋째 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학자의 혀를 주셔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셨다”(사 50:4)고 말합니다. 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학자의 귀도 주셔서“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다.”(사 50:5)고 말합니다. 그는 매 맞는 고통과 수염이 뽑히는 고통과 침 뱉음을 당하는 고통과 함께, 귀가 열려 온갖 고통의 소리를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을 펴고 고난주간 기록을 보면 이사야 50장의 말씀이 이사야의 예언 사역을 뛰어 넘어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고난당하는 종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난을 찾아가는 종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에 가득 모인 사람들을 둘러 보시고 한 불구자의 고통을 느끼셨고, 남자들의 세계 속에서 소외된 여인의 고통을 느끼셨습니다(눅 13:10-17). 그는 무리를 보시고 목자 없는 양 같다고 불쌍해서 우신 분입니다(마 9:35-38). 그는 예루살렘 도성을 보시며 암탉이 병아리를 모음같이 그 백성을 모으려 하신 분입니다(눅 13:34-35). 예수님은 학자와 같은 혀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그는 고통을 경험하신 분으로 우리의 고통을 아십니다.

영화 “더 닥터스”의 주인공 먹키는 뇌종양으로 죽어가고 있는 젊은 여인 준을 만나면서 의미심장한 연민과 동정을 느낍니다. 먹키는 준을 통해 동정심을 가지고 돌보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그는 죽어가는 준의 병상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아 줍니다.

준이 죽은 후, 먹키는 그녀의 편지를 읽습니다. 편지에는 이런 이야기가 쓰여 있었습니다. “많은 토지를 소유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짐승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주위에 함정을 파고 덫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외로웠습니다. 그는 밭에 나가서 두 팔을 벌리고 짐승들을 향해 가까이 오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한 마리도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짐승들은 낯선 허수아비처럼 보이는 그가 무서웠던 것입니다.
준은 맨 끝에 이렇게 썼습니다. “선생님, 두 팔을 내리세요. 그러면 사람들이 다가올 것입니다.”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저를 얼마나 사랑하세요?”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답하셨습니다. “이만큼”그는 두 팔을 힘껏 벌리신 후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두 팔을 내리면 사람들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오는 것은 그가 십자가에 달려 두 팔을 넓게 벌리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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