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Spirituality 63

 “십계명 묵상” 세 번째 시간인 오늘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묵상합니다.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 20:7).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하나님의 이름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사용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경건하지 못한 모습으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 사용하는 일을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맹세하지 말라

먼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두고 맹세하기도 하고, 하늘을 걸고 맹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맹세하는 내용들은 굳이 부모님까지 들먹이면서, 혹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핏대를 세워가면서 맹세할 필요가 있나 싶은 것들입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5:34에서 하나님과 관계된 것을 두고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을 주신 것은 맹세의 말만을 특별하게 만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는 이유는 지금 자기가 하는 말이 진짜 중요하고, 진실된 이야기라고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맹세의 말만 진짜라고 이야기하지 말고, 평소의 말도 진짜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평소에 하는 모든 말들이 진실되면,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맹세하는 일은 없어집니다.

어느 책에서 “원조”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어떤 유명한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모여 있는 골목에 가면 저마다 자기 식당이 원조라고 붙여놓습니다. 어떤 식당은 그저 “원조”라고 붙여 놓고, 어떤 식당은 “진짜 원조”라고 붙여 놓습니다. 그런데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이 동네 원조”라고 붙여 놓은 사람입니다. 동네 원조니 다른 가게가 아무리 원조를 외쳐 봐야 상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참기름에도 “진짜 참기름”이나 “순참기름”과 같은 이름들을 붙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우리의 말에서 진실성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상의 말에서 사라진 진실성을 만들어내고자 맹세의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의 이름이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나의 부족한 진실성을 메우는 양념으로 사용될 때, 하나님의 이름은 경건하지 못하게 사용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건 맹세가 지켜지지 않거나 처음부터 남을 속일 목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사용될 때 하나님의 이름은 망령되이 일컬어집니다.

숨겨둔 나의 이름

그런데 맹세보다 더 심각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속에 나의 이름을 감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언가 말하고 외칠 때가 많지만, 정작 그 이름 속에 나의 이름을 숨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신학자들과 교회들은 히틀러의 나치 정권을 옹호하였습니다. 독일 최고의 신학자로 알려진 교수들이 전쟁동원령의 선전 연설에 불려다니면서 젊은이들에게 히틀러와 함께 전쟁에 나가라고 선동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병사들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구호가 새겨진 군복을 입고 전쟁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기막힌 일입니다. 엄청난 전쟁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이야기하며 나아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나타납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지만, 사실 하나님의 이름 밑에 숨겨져 있는 것은 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밑에 나의 은밀한 욕망, 나의 인간적인 계획과 생각을 숨겨두고서, 이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포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 밑에 숨겨둔 나의 이름을 포기해야 합니다.

한국의 임영수 목사님은 『열흘 동안 배우는 주기도문 학교』라는 책에서 다음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임 목사님이 성경 공부를 인도하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 어떤 교수가 비판적인 자세로 참여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분이 냉소적인 표정으로 질문을 하였습니다. “목사님들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 이렇네, 하나님의 뜻이 저렇네’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임영수 목사님은 이렇게 한 마디로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나의 뜻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제게는 잊혀지지 않는 한 마디입니다. 우리의 삶을 가만히 돌아보면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충돌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나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붙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담긴 소망

이것은 단순히 순종만을 강요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때가 우리가 진정한 복을 누리게 되는 순간입니다. 우리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붙잡을 때, 하나님의 뜻에 담긴 선한 계획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나의 이름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소견은 얼마나 작고 미약할 때가 많습니까?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나의 소견으로 나의 삶의 길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광대하신 하나님이 나를 위해 계획하신 길로서 내 삶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 안에는 놀라운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나의 존재를 채워 주시고, 내 삶에 신비한 은혜들을 놓아두시는 진정한 소망이 하나님의 이름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 아래 은밀하게 나의 이름을 숨겨두려는 어리석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발견한 진짜 소망을 붙잡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김용규 교수는 『데칼로그』에서 십계명의 제3계명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불러라. 그리하면 네가 자유롭게 되리라.” 나의 뜻, 나의 욕심, 나의 이름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이름을 쫓아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담긴 자유와 소망을 발견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헛된 맹세를 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에 나의 이름을 숨겨두지 말고, 광대하신 하나님의 이름에 담긴 소망을 붙잡으라는 초대입니다. 이 초대에 응답하는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