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할머니 집사님께서 너를 위해 늘 기도하시는 것 잘 알지?”

주일 예배를 마친 후 친교실로 가던 내 발걸음이 멈춰졌다. 중고등부 교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가 솔깃해진 것이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몹시 궁금해 빠끔히 열린 문으로 살짝 들여다봤다. 우리 교회의 연세 지긋하신 집사님 앞에 젊은 엄마와 중학생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젊은 엄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너는 이 할머니 집사님께 뭐를 해드릴 건데?” 중학생이지만 아직 사춘기하고는 먼 순하고 앳된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으로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 어찌 저리 기특한 생각이 나왔단 말인가! 가만히 듣고 있던 내 얼굴에도 활짝 웃음이 피어났다. 그게 뭐냐는 엄마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빠진 아이는 곧, “좋은 음악 한 곡을 잘 연습해서 피아노 연주를 해드릴 게요.”라고 약속했다. 할머니 집사님은 대답하셨다. “열심히 연습한 피아노 음악을 듣기에 부끄럽지 않게 더 힘껏 기도해야겠네.”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참 아름다운 순간’을 만났다. 문 밖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가슴이 벅차올랐다.

옛날 시골에서는 한 아이를 온 동네가 키운다는 말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다. 한 마을에서 오랫동안 같이 살다보면 동네가 큰 가족이 되기 마련이었다. 집 밖을 나가서 만나는 이들은 모두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셨고, 아줌마, 아저씨였으며, 손자, 손녀들이었고, 조카들이었다. 그러기에 잘못한 일에 대해 그 자리에서 지적을 받아도 아이들은 대들지 않았다. 부모들이 혼난 아이들을 편든다고 나서서 따지지 않고, 지도해 주신 것을 고마워하기까지 했다. 기쁨은 물론 슬픔과 아픔 그리고 가정 가정마다의 바라는 일까지 같이 기대하며 바라고 살았다.

그렇게 한 마을이 가족이기에 이웃사촌이란 말도 생겼나보다. 이웃사촌, 어려운 일이나 급한 일이 있을 때 멀리 있는 친척보다 이웃이 든든한 보호자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라나는 아이들도 가끔 만나는 친지들보다 날마다 마주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을사람들에게서 더 많은 영향을 받으며 자랐기에 동네가 아이를 키운다는 말은 당연했다.

이젠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나도 그런 아름다운 풍속을 지킬 생각도 없이 이민가방 하나 들고 떠나와 버렸다. 한창 아이들을 키울 때 옛 마을의 정서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내 눈길이 닫지 못하는 곳, 내가 함께하지 않는 곳에서 실수를 한다면,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뒷소리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사랑의 마음으로 경책할 수 있는 어른을 그리워했던 것이다. 자랑스러운 일을 했을 때 지나가는 아이를 불러 세우고 칭찬하며 자신의 일인양 기뻐해 주는 진정한 마음들을 간절히 소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당치 않은 바람이라고 마음 한쪽으로 치워버리고 단념했다.

그날 우리 교회 중고등부 교실의 풍경은 바로 오랫동안 그리워하고 소망했던 바람이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아이의 양육에 온 교회가 기도로 함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예배 한 번 같이 드리고 헤어지는 것 같지만 서로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마음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노 집사님께는 저 아이가 기도 제목이 되고. 아이는 든든한 할머니 집사님의 기도를 생각하며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이런 마음들이 늘어간다면 옛 고향 마을보다 더 좋은 공동체를 만들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하나님을 몰랐던 그 시대의 마을이 만들어 낸 그것을 예수님의 피로 연결된 우리가 더 쉽게 이룰 수 있음은 당연하지 아니한가!

우리에게 교회가 힘이 되고, 어려울 때 달려가고 싶은 곳이면 참 좋겠다. 그렇게 되리라고 장담한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 우리는 예수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성도들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을 이루려고 최선을 다한다. 이런 노력이라면 아이들을 온 교회가 양육시키는 것은 물론, 서로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느끼는 진정한 고향을 만들게 되리라.

이제부터 노 집사님 댁에선 기도 소리, 아이의 집에선 피아노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피어나리라. 새벽녘 선잠 속으로 새소리를 대동한 신비의 화음이 설핏 들어오면 내 한 가닥의 기도 소리도 화음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신호로 알고 퍼뜩 일어나리라. 어린 영혼의 양육을 위해 일조하는 기쁨을 덤으로 맛보리라

피아노와 기도 소리의 멋진 하모니는 북쪽 캘리포니아 하늘을 가득 채우고, 퍼지며, 하나님 앞까지 올라갈 것이다. 하나님 앞에 놓여 있는 금대접은 행복한 향으로 가득 차겠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