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기독교의 거대한 대중적 운동은 잔디를 깎다가 발을 다친 한 남자의 이야기를 상기시켜 줍니다.

그 사람이 아내에게 발에 난 상처를 보여주자 그녀가 어쩔 줄 몰라해서 결국 병원 응급실에 가서 진단을 받기로 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실 현관문에 들어섰을 때 두 개의 문이 있었고, 하나엔 “남성”, 다른 하나엔 “여성” 이라고 쓰여 있어서 그는 “남성” 이라고 쓰인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때 또 두 개의 문이 나타났는데, 하나에는 “40세 이하”, 그리고 다른 하나에는 “40세 이상” 이라고 쓰여 있어 그는 “40세 이상” 이라고 쓰인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또 문 두 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엔 “상체”, 그리고 다른 하나엔 “하체.”

발을 다쳤으므로 “하체” 라고 쓰인 문으로 들어서자 또 두 개의 문이 있었는데, 하나는 “내상”, 다른 하나는 “외상” 이라고 쓰여 있어 “외상”을 택하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또 두 개의 문이 나타났고, 각각 “중상”, “경상” 이라고 쓰여 있어 “경상”을 택했습니다.

그 문을 열고 나와 보니 그곳은 주차장이었습니다.

그 남자가 집에 돌아오자 아내가 물었습니다: “여보, 병원에 간 것이 도움됐나요?” 남편이 대답했습니다. “전혀 도움은 안 됐어. 하지만 병원이 정말 체계화(organized)되긴 했더군.”

내가 경험하고 관찰한 바로, 오늘날 기독교 간판을 단 대중적 기독교는 도와 줘야 하고 또 도움을 줄 수 있는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체계화(organized) 되긴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내가 믿기엔 해답이 있습니다. 용기를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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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프랭크 바이올라의 허락을 얻어 그의 블로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현대 제도권 교회가 세상에서 흘러들어온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조직과 제도로 체계화되어 있어, 겉은 번지르르하고 그럴 듯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것, 즉 하나님의 목적과는 동떨어져 있으므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음을 풍자한 글입니다.

이번 한국 방문 중에도 성경이 말하는 복음에는 동의는 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여 두려워서 제도권 기독교에 머물러 있기를 택하는 사람들, 제도권 기독교가 틀린 줄 알면서도 주님을 위해 “쓰임 받는 것”을 즐기는 중독에 빠져 계속 그 길을 가려는 사람들, 자기가 아는 복음이 전부인 줄 확신하며 개혁을 외치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는 무관심하여 조금도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 사람들 등등을 만나보며 위의 글이 말하는, “체계화”만 되고 도움은 되지 않는 기독교를 실감했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그런 제도권을 박차고 일어나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교회로 살며 좁은 길을 걸어가기로 선택한 사람들을 보며 힘이 났습니다.(기사 출처 : 예수님짜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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