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저 세도남에게 저런 소탈한 부분이 있다니!’ 잘 생긴 얼굴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 지진희보다 다정하게 생겼다. 날씬하고 훤칠한데다가 고등학생이라기에는 어른스러울 정도로 예의 바르고, 조용하고, 점잖은 행동거지와 항상 단정한 옷차림의 그에게는 세도남(세련된 도시남자)이라는 이름이 맞는 듯했다. 그런 아이가 거침없이 교회 주방에 와서는 밥통 안의 밥을 그릇에 담아가지곤 입을 크게 벌려 먹는 거였다. 그 뒤로 보조교사 유니폼 셔츠를 입은 또래들이 차례로 밥을 퍼갔다. 내 눈물이 섞였을지도 모르는 비빔밥을 즐기고 있는 그들을 행복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우리 교회의 VBS 기간이었다. 주일학교를 비롯하여 유아반까지 한바탕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음을 다하여 준비한 교사들은 물론이고, 보조교사가 된 중고등부의 형, 누나들의 도움을 받으며 나흘간 베풀어진 잔치에서 어린이들이 노래하며, 춤추며 예수님을 배워 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야말로 우리 교회의 다음 세대가 넓은 본당에서 손잡고 뛰며, 뒹군,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마지막 날인 금요일 저녁, 내가 속한 그룹에서 저녁식사를 담당하였다. 그룹원들 모두 어린이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 본 지가 언제였던가? 어떤 메뉴가 그들의 입을 행복하게 할까 연구하고, 젊은 엄마들의 조언을 들어가며 장만하였다. 불고기 당면 백반이 주 메뉴였다. 맛있게 잘들 먹는가 싶더니 음식의 양이 모자란 듯했다. 혹시 늦게 참석할지 모를 사람들을 위해 10여 명분의 식사를 차려두고 나니 불고기는 거의 바닥이 났다.

전적으로 충분한 양을 준비하지 못한 내 실수였다. 다행히 밥통 속에 상당한 양의 밥이 남아 있었다. 어떡하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40여 년 가깝게 가족을 먹여 살린 살림 9단 아줌마 집사님들의 솜씨가 발동되는 순간이었다. 두 집사님이 냉장고 쪽으로 뛰어갔다. 지난 주일 친교 시간에 남은, 잘 익은 김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용하고 남은 양파도 나왔다. 냉동칸 안에서는 두툼한 햄이 나와 전자렌지에 몸을 풀었다. 어떤 집사님은 이튿날 새벽기도회 끝나고 아침을 준비하려고 미리 가져온 달걀을 또 가져오면 된다는 다짐과 함께 꺼내왔다. 다른 분은 시장에서 산 콩나물이 차에 있다며 들고 왔다.

다진 양파와 김치가 프라이팬에서 익는 냄새가 친교실을 채웠다. 바로 옆에서 풍성한 양의 달걀이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잘게 자른 햄이 볶아졌다. 콩나물이 어느새 알싸한 비릿내를 풍기며 익어가고 있었다.

밥통을 열었다. 여기저기서 익힌 재료들을 밥에 부어 주었다. 불고기 국물까지 밥통 속으로 쏟아졌다. 고추장과 참기름이 더해졌다. 주걱으로 휘젓기가 벅찼다. 손으로 비빌 수밖에. 일회용 위생장갑으로는 뜨거움을 견딜 수 없었다. 고무장갑 먼저 끼고 일회용 장갑을 덧끼었다. 뜨겁지는 않았지만 일회용 장갑이 자꾸 벗겨졌다.

누군가가 내 뒤로 왔다. 뽀얗고 여린 손이 뒤에서 나왔다. 그의 오른손이 나의 오른쪽, 왼손이 또 나의 왼쪽 일회용 장갑을 잡아 주었다. 팔놀림은 불편했지만 밥을 비빌 수 있었다. 그 재치에 가슴 뭉클했다. 잠시 후, 유치부의 한 엄마가 달려와, 왼손 쪽의 일회용 장갑을 잡았다. 왼쪽을 인계한 뒷사람은 웃는 얼굴로 앞으로 오더니 오른쪽 장갑을 잡았다. 역시 유치부 엄마였다. 팔놀림도 한결 편해졌다.

두 사람의 시중을 받으면서 불그죽죽한 김치비빔밥을 버무렸다. 교회의 좁은 주방에서 여왕이 된 기분이었다. 갑자기 뭉클해진 가슴에서 뭔가가 솟구쳐 눈으로 올라왔다. 눈가에 감동의 눈물이 배어나왔다. 젊은이들의 행동이 큰 행복으로 다가왔다. 늘 세상살이 경험이 나보다 부족하다고 어리게만 생각했다. 그들은 어줍잖은 나의 관념을 깨고, 불편하게 밥을 비비는 나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애정 어린 관심을 갖고 순발력을 동원해 다가왔다.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사랑의 마음으로 나를 무안하게 했다. 그것은 주님께서 허락하신 진정한 지혜로 여겨졌다. 그들의 성숙한 섬김의 자세로 인해 행복이 밀려와 주체하기 어려웠다.

문득 하나님 나라에서 만드신 한 조각의 행복이 내려왔음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확신은 충분하지 못한 음식으로 인하여 불안했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음식의 부족함도 천국의 행복 조각을 내 안에 인식시켜주시기 위함이었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든,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시는데, 난 이런 멋진 순간들을 찾아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높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돈, 성공한 자녀, 평안한 삶, 이런 것으로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삶인 줄 알았다. 눈이 어두워져 멋진 하나님 사랑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고 욕심 또한 내지 않았다니. 이제부터라도 이곳저곳에 넣어두신 기쁨을 찾아내며 살아가리라 다짐해 봤다.

김치 비빔밥은 저녁을 못 먹었던 사람들이 나누었어도 많은 양이 남아 있었다. 마침 주방 옆을 지나가던 세도남 보조교사도 사랑이 만든 작품에 끌린 듯 들어와서 게걸스럽게 먹었던가보다. 같이 가던 친구들도 사양하지 않았다. 밥통은 어느새 바닥이 드러났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배달하신 ‘천국 행복 한 조각‘으로 나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세도남은 체면을 벗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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