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너 있다’라는 달달한 말이 있다. 시청률 50%를 달성했다는 전무후무한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나오는 대사라고 하는데, 파리의 연인을 직접 본 적이 없어서 언제 어느 배우가 어느 배우에게 한 대사인지는 잘 모르겠다. 시험 볼 것도 아니니 알 이유도 없다.

오래 전 미국에 온 어느 한국목사에게 미국사람이 너네 나라는 개고기를 먹는 나라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러자 그 목사는 화를 내기는 커녕 실실 웃으며 "너네들은 개를 사랑한다며 집안에서 기르고 침대에서 재우고 하는게 끝이지만 우리는 개가 죽으면 사랑하는 개를 그냥 떠나보낼 수 없어서 아예 그 개를 우리 몸 속에 집어 넣는 것"이라고 했다 한다. 그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으로 황당하고 민망했다.  좌우지간 우리 안에 개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말 개 같은 이야기다. 사실 우리 안에는 개가 아니라 괴물이 있다.

괴물을 영어로는 몬스터(monster)라고 한다. 몬스터 하면 쉽게 흉물스런 괴물을 연상하게 되는데, 사실 몬스터라는 영어 단어는 ‘한쪽과 다른쪽을 구분하는 경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존재’라는 의미다. 이쪽은 행복이고, 저쪽은 불행일 수 있으며, 이쪽은 성령충만이고 저쪽은 불평충만일 수 있다. 이쪽은 겸손이고, 저쪽은 교만일 수 있으며, 이쪽은 선함이고 저쪽은 악함일 수 있다. 이쪽은 사랑이고 저쪽은 그냥 유혹일 수 있다. 이때 이 경계에서 갈팡질팡하다 좌절하게 되는데 이를 몬스터라고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괴물은 바로 그 경계선에 서있는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로 새롭게 다시 시작하려고 하나 안일했던 나의 과거가 나의 발목을 붙잡고 다시 나를 과거에 묶어놓는데 이를 괴물이라고 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한쪽과 다른쪽을 구분하여 경계를 지을 때 잘못된 쪽으로 가게 되는 것을 몬스터라고 한다면 바른쪽으로 가게 되는 것은 인간성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좀 더 비약해서 말한다면 세상 쪽으로 나아가는 것은 괴물이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는 것은 회개의 길이요 천국 입성의 길이라는 것이다.

로마서 8장 10절에 ‘살아있는 것’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생명’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11절에 ‘죽을 몸’은 말 그대로 사망이다. 그러니까 바로 이 ‘죽을 몸’이 경계를 벗어난 몬스터 즉 괴물이라는 것이다. ‘죽을 몸’ 즉 내 안에 있는 괴물을 내어쫓는 길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길밖에 없다. 로마서 7장 18절에서 ‘원함은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라고 한 말씀을 보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이 경계선에서 멈칫하는 순간 원치 않는 악을 묵인하거나 직접 악을 행하게 되는데 이게 곧 몬스터요 몬스터가 하는 짓이다. 그러나 원함도 있고 선도 행하였다면 이는 내 안의 몬스터를 내어쫓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넘기 어려운 경계선을 잘 넘어 생명의 길로 들어섰다는 이야기도 된다.

사망의 길에서는 내가 바로 몬스터고, 내 안에 몬스터가 있으며, 몬스터를 계속 자라게 하나 생명의 길에는 몬스터가 함께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살리시는 길에는 죽음이 함께할 수 없으며, 천국으로 가는 영생의 길에선 괴물이 함께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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