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지음 / 꽃자리 펴냄(2016)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는 52통의 편지 모음이다. 사람들과의 만남의 흔적이다. 저자에게 다가와 자신의 삶과 고민을 들려 준 벗들에 대한 저자의 응답이다. 편지글은 고요하다. 풍요롭다. 열정이 있다. 성찰의 힘이 느껴진다.

편지의 행간에는 오늘날 한국 사회와 지구촌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이 들어 있다. 예수 따르미로서의 순결한 마음과 진지한 성찰, 그리고 의로움을 저버리지 않는 외로운 결연함이 스며들어 있다.

저자는 답을 제시하기보다 고민에 동참하고자 한다. 일일이 호명할 수는 없지만, 저자는 그들에게 ‘사랑의 빚’을 졌다면서, “그들이 있어 나도 있다”고 고백한다.(출판사 서평 일부)

저자 김기석은 목회자이자 문학평론가이다. 시, 문학, 동서고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글쓰기와 문장력으로 신앙의 새로운 층들을 열어 보이되 화려한 수사에 머물지 않고 현실에 단단하게 발을 딛는다. 그의 글과 설교에는 ‘시대의 온도계’라 할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병든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세계의 표면이 아닌 이면, 그 너머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번득인다.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김 목사는 1997년부터 청파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저서로는 『광야에서 길을 묻다 - 출애굽기 산책』, 『말씀의 빛 속을 거닐다 - 요한복음 산책』, 『행복하십니까? 아니오, 감사합니다』, 『기자와 목사, 두 바보 이야기』, 『오래된 새 길』, 『내 영혼의 작은 흔들림』,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서다』, 『길은 사람에게로 향한다』, 『삶이 메시지다』, 『일상 순례자』가 있으며, 역서로 『가난한 마음과 결혼한 성자』, 『예수 새로 보기』, 『예수의 비유 새롭게 듣기』, 『기도의 사람 토머스 머튼』 등이 있다.

(본문 중에서)

- 저는 얼마 전부터 예수의 사역을 ‘빗금 철폐’라는 말로 요약합니다. 예수는 관습이 만들어놓은 그러한 경계선을 가로지르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백안시하며 살던 사람들이 서로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도록 했습니다. 문제는 빗금을 철폐해야 할 종교가 빗금을 생산하는 공장 구실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개신교회가 보이는 배타성은 확고한 믿음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은 내적 부실함을 가리려는 가련한 몸부림이 아닌가요? 자신들의 비릿한 욕망을 종교의 망토로 가리려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설산을 그리워하는 까닭’ 일부)

- 시간 속을 바장이며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모든 판단의 중심으로 삼습니다. 아무리 객관적이라 해도 우리의 판단은 주관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이런 자기중심주의의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타인의 삶의 자리로 자꾸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마음 쓸 때 우리는 조금씩 자기중심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오게 됩니다. 죄는 이웃에게 등을 돌리게 하지만 사랑은 이웃을 마주 보게 만듭니다.(.자기 속으로 구부러진 인간‘ 일부)

- 저는 어둠을 모르는 빛, 절망의 심연을 거치지 않은 희망, 대가를 치르지 않고 주어지는 은혜, 추함을 외면하는 아름다움, 불화의 쓰림을 알지 못하는 조화, 흔들림조차 없는 확신, 일상을 떠난 영성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흔들림 속에서 든든함을 지향하고, 추한 현실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가장 속된 것 속에서 거룩한 것을 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그래서 나의 길은 흔들리며 걷는 길입니다.(‘성과 속의 경계를 넘어’ 일부)

- 언제든 동원할 수 있는 큰 돈을 가진 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를 ‘전능자’로 인식합니다. 그들의 주변에는 늘 그들을 ‘유사-신pseudo-god’으로 떠받들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자본의 시선은 메두사의 시선과 같아서 바라보는 모든 것을 물화시키고 맙니다.(‘돈의 전능성을 해체하라’ 일부)

- 손이 아름답던 한 사람을 압니다. 예수입니다.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깨어났습니다.

물결처럼 가벼우면서도 산맥처럼 무거운 그분의 손을 잡고 싶습니다. ‘마주 잡을 손 하나’가 바로 희망입니다.(‘마주 잡을 손 하나’ 일부)

- 일상적인 세계, 상식의 세계, 예측 가능한 세계가 무너질 때 삶은 혼돈으로 변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런 무난한 세계에 쉽게 싫증을 느낍니다. 일탈의 욕망은 그렇게 나타납니다. 이런 일탈의 욕망이 없다면 인간 세계는 지루함 때문에 지옥으로 변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욕망이 타자를 물화시키거나 그의 존엄을 훼손하기 시작할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종교는 그런 과도한 욕망을 경계하는 나팔소리여야 합니다. 종교가 분명한 소리를 내지 못할 때 세상 도처에서 괴물들이 나타납니다.(‘인간보다 이상한 존재는 없다’ 일부)

- 오늘의 교회가 잃어버린 것은 심리학이나 문학이 아니라 거룩한 분노라는 것입니다. 거리에서 불의가 자행되고 거짓이 횡행하는 세상에 살면서 분노할 줄 모른다면 그는 하나님도 세상도 알지 못하는 것이지요.(‘가시밭길을 걷다’ 일부)

- 중용 23장에 ‘치곡致曲’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치’는 한발 한발 나아가 마침내 이르는 것이고, ‘곡’은 곡진하다는 뜻이니, ‘치곡’이란 마음과 뜻을 정성스럽게 한 채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을 이르는 말일 겁니다. ‘정성스럽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거짓과 술수가 판을 치는 세상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익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온새미로 그분께 바칠 때 우리는 지금보다는 조금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치곡致曲의 삶을 향하여’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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