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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느니라②하나님 나라(12)
이학진 장로  |  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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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22  06: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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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예수(2)  

존 브라이트는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상은 구약성서의 신적 계시와 신앙의 대망 가운데 깊이 잠재해 있었다고 강조한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향한 이러한 대망은 곧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고백에 근거해 하나님은 좀 더 강하고 종말론적인 의미에서의 왕이 될 것이라는 대망 사상이 일어나게 된다. 신정왕국으로 말해지는 구약의 하나님 나라 사상은 하나님의 통치 사상에 의한 것으로서,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 장차 올 미래에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오셔서 이스라엘에게 자유를 주신다는 소망이 피력된 것이다. 결국 구약성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이며 하나님은 온 세상의 통치자라는 사실이 그 중심이다.

G. 래드는 하나님 나라의 출발점이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한 그분의 목적을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을 통해 이루시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곧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인간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실 것이라는 소망이다. 이와 같은 소망은 하나님 자신이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계시한 구약성경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 실체이면서(마 12:28), 미래적 축복(고전 15:50), 다시 태어난 자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요 3:3) 영적인 축복이면서(롬 14:17), 이 세상 나라의 통치(계 11:15)와도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람들이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현재적 영역이면서 나중에 들어갈 수 있는 미래적 영역(마 8:11)이며, 믿는 자에게 상속되는 미래적 축복의 나라이면서(눅 12:32), 현재에 믿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나라(막 10:15)라고 강조한다.

이제 우리는 “때가 차매” 그리스도라고 불리우는 나사렛 예수 앞에 서 있다. 그리스도는 누구이며 그는 무엇을 하기 위하여 오셨는가에 대한 답변을 찾아야 한다.  이 예수는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바로 그 메시아이고 그분 안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소망은 그 성취를 발견하고 현재적 사실이 될 것이라는 결론이 신약성경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높이며 각자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에 의해 형성된 결과에 따라 신앙을 표현할 것이다.

이 답변이 복음인데 그 복음 즉 초대 교회의 이 선포(케리그마)는  신약성경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말해질 수 있다. 이는 성경대로 메시아께서 강한 권능으로 사시고, 죽으시고, 다시 사신 이 예수라는 것을, 그리고 이 예수는 하늘로 높이 올라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곧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이라는 것을 선언하였다.

이제 사람들은 죄를 사함받기 위해 회개하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 시대를 위해 결단해야 하는 것이다.

당시의 유대에는,  첫째, 정치적 회복에 대한 소망, 메시아에 의해 주도되는 군사적 활동에 따른 로마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소망이 있었다. 이 소망은 특히 유대교 내의 민족주의 당파인 열심당으로 알려지는 무리들에게 연결된다.   둘째, 바리새인들 사이에 만연된 거룩한 국가 공동체(하나님나라)에 대한 이상이 있었다. 이들 역시 메시아의 통치 아래 하나님의 백성들의 광명을 고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하였고,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투쟁 속에서 메시아라 자처하는 인물들을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엄격한 율법의 준수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이상을 구현하는 것을 그들의 의무로 생각하고, 만일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이 그의 메시아를 보내서 그들을 높이실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셋째로 묵시적 소망(다니엘서와 에녹 1서)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대파국적 개입과 영원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 구름을 타고 영광 중에 임하시는 종말론적 인자에 대한 소망이었다(단 7: 13-14).

우리는 구약에서 사물들의 현재적 질서와 하나님 나라의 구속된 질서가 서로 대조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옛 질서와 새 질서의 차이점은 두 질서 사이에 연속성과 불 연속성의 정도의 차이에  따라서 서로 다른 술어로 묘사되고 있다. 아모스는 하나님 나라를 아주 현세적인 술어(9:13-15, 내 백성 이스라엘)로 서술하는 반면, 이사야는 새 질서를 새 하늘과 새 땅(사 65:17)으로 보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옛 질서를  완전히 변화시킨 것으로 새 질서가 초월적인 언어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렇게 역사적인 발전을 통하여 “이 세대”와 “오는 세대”라는 새로운 관용어가 생겨났다. 이는 마태복음 12:32에 “이 세상”과  “오는 세상” 이라는 단어와 같은 것이며, “오는 세상”은  요한복음의 “영생”과 같은 의미로 영생은 오는 세대의 생명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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