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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주님과 부활의 삶
최태선 목사  |  어지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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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10  04: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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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요한복음 4:46-54).

두 기적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거의 죽게 된 자기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청하면서 이루어진 치유 기적 사건은 요한복음에서 두 번째 표적입니다. 본문은 그것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4:54).

이러한 끝맺음은 2장에 소개된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기적 사건을 서술한 뒤 끝내는 방식과 비슷합니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2:11).

요한복음 기자는 두 개의 기적을 비슷하게 끝낼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두 기적을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먼저, 가나에서 두 번째 기적을 이야기하기 전에 두 기적 사이의 연관성을 놓치지 않도록 그 기적이 첫 번째와 같은 장소인 갈리리 가나에서 일어났음을 밝힙니다.

두 번째로, 두 번의 기적 사건에서 매번 예수님께서 기적 행위를 하지 않으려 하시면서도 결국 행하십니다. 세 번째로, 기적은 순전히 예수님의 말씀과 그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에 의해 일어납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는 물을 항아리에 붓고 그 물을 연회장에게 가져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일꾼들이 순종함으로써 이루어졌고, 왕의 신하의 아들의 경우 또한 예수님의 말씀에 왕의 신하가 순종함으로 일어납니다. 네 번째로 기적을 목격한 이들이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첫 번째 기적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두 번째 기적에서는 왕의 신하와 그의 온 가족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밀접하게 연결된 두 기적을 통해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갈릴리 가나에서 일어난 기적은 기쁨과 축제의 자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결혼식 자리입니다. 이제 두 번째 갈릴리 가나에서 일어난 기적은 근심과 고통의 자리. 인생에서 가장 절망적인 죽음의 자리입니다. 이 두 자리는 모든 인간들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운명의 자리입니다. 그러한 운명의 자리의 주인이시며 주권자가 바로 주님이십니다. 기쁨의 자리든 고통의 자리든 주님이 주권자가 되셔서 당신의 뜻대로 가장 완벽한 선을 이루는 해결책을 마련하십니다.

이 두 기적을 통해 요한복음 기자는 우리의 모든 인생에 개입하시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당신의 뜻에 맞게 해결해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기쁨의 자리에서 주님을 우리 인생의 주권자로 인정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기쁨의 자리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고통의 자리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고통 중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순간순간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식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들은 하나님께 고통을 없애달라고 울부짖지만, 고통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시며 함께 아파하시는 그분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의 삶 모든 곳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참된 신앙생활이란 바로 그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기쁨의 자리뿐만 아니라 고통의 자리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느끼고 바라보며 그분께 우리의 모든 삶을 기꺼이 의탁하고 내 뜻이 아니라 그분의 뜻에 따를 때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그분은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죽음의 바다를 향해 치닫던 우리의 삶이 영원한 삶, 부활의 삶으로 바뀝니다.

부활 신앙

"인생의 문제다. 부활의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네 무덤을 비워라. 업적과 인기와 성공 위주의 삶을 죽여라. 벗을 위하여 생명을 바쳐라. 마음의 눈을 열어라. 낯선 사람을 사랑에 초대하라. 믿어라. 서로에게 평화를 빌고 용서하라. 달라져라. 이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 부활을 체험할 것이고 부활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아니 오히려 부활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바로 이런 삶을 살게 한다."

이제민 신부님의 말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부활 신앙을 살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죽은 후에 천당에 간다는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라고 배워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죽은 후에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살아서 들어가야 하는 나라입니다. 부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후에 부활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래서 우리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라"(요 11:25-26)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적은 순전히 예수님의 말씀과 그 말씀에 대한 순종에 의해 일어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에게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가장 큰 기적은 우리에게 부활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르고 순종할 때 우리는 부활을 체험하고, 부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일어나게 하시는 가장 큰 기적임을 우리의 삶을 통해 체험해야 할 것입니다.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는 삶에서 이웃과 더불어 꽃자리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홀로', '혼자' 살던 생활에서 예수님을 중심으로 이웃과 함께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고개를 돌려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나와 아무런 인연이 없던 사람들이 형제로 보여질 때 우리는 다시 살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민들레 국수집 서영남 사장이 말하는 삶이 바로 부활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김기석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오직 그분만이 내 삶의 의미이고, 목표이고, 바른 길이라는 고백이며, 그의 싸움과 사랑의 실천에 연대함으로 삶의 무상성을 넘어 영원에 이르겠다는 다짐이다. 그들은 비애에 가득 찬 삶을 살면서도 결코 낙심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 있고, 가야 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절대적 충성을 요구하는 문화식민주의, 민족주의, 과학주의, 신자유주의, 물질주의에 저항한다. 그들은 삶의 주도권을 예수께 넘겨드리고 산다."

김기석 목사님이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이 강요하는 것들을 거부하고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저항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이 없는 고기는 물가에 멈춰 떠있거나 물이 흐르는 대로 따라 흘러내려갈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원하는 곳으로 마음껏 헤엄쳐 다닙니다. 부활 신앙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주님이 공급해 주시는 생명과 그분의 말씀을 따라 세상을 거슬러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살아서 경험해야 할 부활의 삶을 죽음 이후로 밀어내고 시류에 편승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기석 목사님은 다시 이렇게 질문합니다.

"하지만 예수는 정말 오늘의 교회에서 '주'인가? 교회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결정에서, 교회 일치를 위한 대화에서, 교회의 재정 사용에서, 주님은 정작 소외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불필요한 자기 과시와 이익 추구를 위해 주님을 골방 속에 유폐시키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하는 고백은 권력과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복음을 속화시키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거대한 물음표이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 7:21). 이 얼마나 단호한 말씀인가?"

주님은 가장 기쁜 인생의 자리에서뿐만 아니라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에서도 우리의 주권자이십니다. 진정으로 그분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며 그분께 온전히 의탁한다면, 우리의 인생 여정은 더 이상 죽음의 바다를 향해 흘러가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우리도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시 23:4)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향해 "내 잔이 넘치나이다"(5)라는 고백을 드리며, 일상이 기적이며 모든 것이 감사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부활의 삶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생명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의 삶입니다. 그분은 모든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우리의 주권자가 되셔서 우리가 어떤 삶의 정황에 처하게 되더라도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을 늘 바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그 일은 곧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삶인 부활의 삶의 시작입니다. '값 싼 은혜'를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는 대가를 기쁨과 기대에 찬 마음으로 기꺼이 지불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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