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열전(8)

창세기 18-19장은 24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로, 아브라함 이야기에 롯이 다시 등장한다. 창세기 13-14장에 나왔던 롯 이야기와 대칭을 이루는 내용이며, 아브라함을 떠나 소돔을 선택했던 롯의 현재 상태와 최종적인 운명을 다룬다. 얼마 전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태어날 것을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 같은 말씀을 전하기 위해 직접 오셨다. 사라가 아직 임신하지 않은 상태여서, 18장의 이야기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이후 오래 지나지 않은 일로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 나무에 거할 때 세 사람이 그를 방문한다. 아브라함은 손님들을 극진히 대접한다. 단순한 손님 대접의 차원을 한참 넘어선다. 100세가 다 된 아브라함은 손님들을 보자마자 달려나가 엎드려 절한다. 2절에 아브라함이 ‘보았다’는 표현이 세 번이나 나온다.(* 개역개정에는 2번, NIV 성경에는 3번) 세 사람이 마므레 상수리 나무 곁으로 온다. 아브라함이 바로 그 상수리 나무 아래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았던 것을 기억하라(창 13:18). 이 때문에 갑자기 찾아온 그들의 정체에 대해 그가 처음부터 짐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브라함은 직접 우리로 달려가 송아지를 잡았고, 사라로 하여금 손수 잔칫상을 차리게 했다. 평범한 손님을 대접하기엔 음식 준비도 특별했다. 세 스아, 즉 약 24리터나 되는 밀가루로 빵을 굽고, 세 명의 손님들에 비해 지나치게 큰 송아지를 잡았다. 그들이 음식을 마므레 상수리 나무 아래서 먹고 마셨다는 표현은 그들의 비상한 신분을 암시한다. 손님들이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아브라함은 곁에 서서 종처럼 수발을 들었다.

식사가 끝난 이후, 본문은 두 가지 중요한 대화를 자세히 언급한다. 먼저, 하나님께서 더욱 구체적으로 사라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말씀하신다. 17장에서 언약을 맺고 그 징표로 할례를 행했기에 그녀가 전혀 몰랐을 것이라 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출산에 대해 처음으로 말씀하시며 그녀를 대면하시는 장면이다. 대화의 주체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이고, 사라는 그저 장막문 뒷편에서 그들의 얘기를 엿듣고 있다. 출산에 대한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 그녀가 보인 반응은 남편 아브라함과 똑같다.

이미 그녀의 나이는 90살이었고 생리가 끊어졌으므로, 출산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이 우스운 이야기로 들린다. 장막문 뒤에 숨어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를 엿듣다가 속으로 그만 웃고 만다. 더 이상 출산에 대해 그 어떤 희망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정확히 헤아리시고 그녀의 불신앙적 웃음을 책망하신다. 신기한 것은, 여기서 책망을 듣는 첫 번째 대상이 사라가 아니라 아브라함이라는 사실이다. 출산에 대한 말씀을 엿들은 사라의 반응을 비춰볼 때, 17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그가 비록 할례를 행함으로써 약속에 대한 신앙고백을 했더라도, 아내 사라에게 약속의 말씀을 어떻게 전달했는지에 대해서는 본문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의구심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라의 웃음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을 아브라함에게서 찾으시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무런 소망 없던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말씀을 주신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이제 일년이 지나기 전에 사라가 아들을 품에 안게 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첫 번째 대화는 집에서 이루어졌고, 두 번째 대화는 소돔과 고모라로 향하는 헤브론 산지에서 이어진다. 헤브론은 가나안 땅에서 가장 높은 지대로 해발 약 1천 미터의 산지인 반면, 소돔은 사해 남쪽, 해발 약 4백 미터 가량의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소돔을 주제로 한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는 소돔성을 내려다 보며 진행됐을 것이다. 뜻밖에도 하나님께서 소돔성을 멸망할 계획을 알려 주셨다. 이 사실에 깜짝 놀라 소돔성의 멸망에 초점을 두고 본문을 읽으면 중요한 사실을 놓치게 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의 초점은 소돔성의 멸망에 있지 않았다. 첫 번째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1)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고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 2) 그 나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의와 공도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구체화하고 재확인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운명에 대해 말씀하셨을까? 아브라함이 이루어갈 나라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의와 공도의 나라라면, 그와 정반대로 온갖 압제와 폭력으로 부르짖음이 하늘에 닿아 그 죄악이 심각했던 곳이 바로 소돔이다. 어쩌면 소돔의 멸망은 당연해 보이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원하신 것이 있었을까? 아브라함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해야 했을까? 소돔을 향한 아브라함의 기도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열방은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소돔을 포함한 열방의 운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표 중 하나였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소돔의 운명을 두고 하나님께 간청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간절한 요구는 세상을 향한 선지자로서의 직책을 감당하는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20장 7절에서 아브라함을 선지자라 부르신 것과 이방 왕 아비멜렉이 살기 위해선 아브라함의 기도가 필요함을 확증하는 부분에서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물론 아브라함은 소돔 성에 사는 조카 롯을 염두에 두었겠지만, 그의 간구에서 롯을 지칭하는 용어는 찾아볼 수 없다. 선지자로서 그의 기도는 단순히 자신의 조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말씀을 따라 이루어갈 나라가 “의와 공도”의 나라였기에(19절), 하나님께서 소돔성의 멸망에 대해서도 참으로 의와 공도를 이루실지 관심을 기울인 것이다(25절).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께서 정의를 행하셔서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시길 간구했다. 아브라함이 기도를 통해 확인하고자 했던 것은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의인을 결코 멸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의인 열 명’에서 기도를 멈출 수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끈질기게 간청했으며,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이해했다. 하나님께서는 다수의 악인보다 소수의 의인에게 초점을 맞추실 것이며 온 세상에 의와 공평을 행하실 것이다.

결국 소돔 성은 멸망하고 말았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의인 열 명’에서 간구를 그쳤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여섯 번이나 간구했다.‘열 명’이라는 숫자는 공동체 안에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의인의 최소 단위로 간주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확인했고, 하나님께서는 소돔 성을 멸하실 때, 비록 의인 열 명을 찾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에 남아 있는 의인을 구원하셨다. 소돔이 멸망한 이유는 아브라함의 기도 부족 때문이 아니라, 저들의 죄악이 심각했기 때문임을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는 신앙 고백이지 그분의 뜻을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다.(그림 설명 :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존 마틴,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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