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커피 한 잔씩 들고 연휴의 여유를 즐기며 나이도 잊은 채 우리들의 마음은 마냥 설렜다. 6시간 이상 운전하면서 못 다한 정담도 나누고 간식도 나누다 보니 입도 마음도 즐거워졌다. 초행길이 아닌데도 초행길 같은 길을 달려갔다. 방주를 향해!

벌써 가을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하는지 바깥 풍경의 일부가 울긋불긋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도시를 벗어나자 드넓은 콩밭이며 옥수수 밭이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듯, 풍요와 여유와 평안을 주었다. 어떤 이들은 지루하다고 하지만, 난 이런 풍경을 사랑한다. 최소한 거기에는 전쟁이 없어 보이니까. 반면 도시는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전쟁터 같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관계 전쟁, 언어 무기고에서 막 꺼내온 최신형 언어 전쟁, 학력 전쟁, 체면 전쟁, 돈 전쟁... 온통 전쟁의 상흔으로 점철된 피난민들 천지인 것 같다.

이런 전쟁들이 할퀴고 간 상처는 텍사스를 휩쓸고 간 허리케인 하비를 닮았다. 어떤 집들은 물이 오랜 기간 빠지지 않아 회복이 불가능하다는데, 사람들의 오래된 관계 전쟁이 남긴 상처도 회복 불가능한 폐허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런 전쟁을 피해 좋은 친구들과 수다 떨며 떠나는 이번 여행길이 무척이나 행복했다.

어느결에 ‘Ark Encounter’라는 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작년에 왔을 때보다 한결 잘 정돈된 주차장이며 주변 환경들이 반가웠다. 쉬지 않고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버스를 타고 방주로 향했다. 방주 주변도 훨씬 짜임새 있게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바쁘게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우리들은 우선 그냥 즐기기로 했다. 거대한 방주, 작은 호숫가의 각종 꽃들, 특색 있는 나무들, 여유롭고 활기찬 사람들, 배고픔을 달래줄 작은 간이식당들. 우리들은 눈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간이식당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야외 의자에 앉아 있는데, 잠자리 한 쌍이 놀다가 한 마리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나머지 한 마리가 내 팔 위에 앉았다. 꼬리 부분이 신비로운 푸른빛을 띠고 있는 그 잠자리는 잠시 휴식을 취한 것인지 짝을 찾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드디어 방주 안으로 입성했다. 4층으로 지어진 방주 안도 보충된 부분들이 많아서 지난해보다 재미가 더했다. 노아의 고뇌와 외로움이 크게 느껴지는 방주를 보면서 하나님에 대한 그의 온전한 믿음이 얼마나 크게 보이던지. 그의 거룩함, 그의 성실함, 혼신을 다한 그의 순종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신기술로도 2년 넘게 걸렸다는데, 노아는 이 거대한 방주를 건축하면서 어떻게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견뎠을까. 새삼 그의 믿음에 고개가 숙여졌다. 무엇보다 죄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방주 건축을 계획하신 하나님의 섬세하고 자비로우신 마음이 아련히 전해져 왔다. 인간에 대한 창조주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또 담았다. 밖으로 나오자 왠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돌아오는 길, 자동차 안에선 침묵이 흘렀다. 각자가 가슴에 담은 것들을 되새김질하고 있는 듯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거대한 방주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상이 아무리 전쟁터 같아도 그 전쟁을 멈추게 하신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이 여전히 세상을 보듬고 있지는 않을까. 그 사랑 속에 머문다면 전쟁터에 있어도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돌아가서 다시 살아야 할 삶의 무게가 훨씬 가볍게 느껴졌다. 우리의 짐을 대신 져주시는 분의 인도하심은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라고 했으니.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편 23:6).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