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그 어느 때보다 북한 정권의 위협이 거세다. 우리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습이 아님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이 시점에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상황을 언제까지 보고만 있고 한숨만 지어야 하는가? 지금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의 방법과 길이 있음을 알리고 기도해야 할 때이다.

그동안 많은 대북선교단체들과 한국교회들과 미주 교회들 그리고 성도들이 인도주의와 동포애를 발휘하여, 중국과 제3국의 국경 일대 심지어 북한 안으로 들어가 돕다가 체포되고 감금되기까지 하면서 북녘의 동족들을 도왔다.

그러나 아무리 감동적인 노력들과 현실적인 대안들로 대화의 테이블에서 만난다 할지라도, 한쪽에서는 전쟁도 할 수 있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선 절반 이상의 국민들이 통일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통일은 그저 순진한 바람이며 뜬구름일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이들은 무력에 올인 하고 있는 저들이지만, 통일에 대한 확신과 열정이 없는 마음, 북녘 동족들이 72년 넘게 고난 받고 있는 아픔을 외면한 사랑의 부재, 전 세계와 역사 앞에서의 우리 민족의 존재 가치와 사명 없음도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만약, 지금이라도 수천만 명의 국민들이 통일을 적극적으로 구하고 외친다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그런 기적이 왜 일어나지 않겠는가? 합일된 의지와 공동의 목표가 없기 때문에 통일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 90년대 초 구 소련을 무너뜨린 것도 철권무력이 아니라, 자유와 진리를 알려 주고자 했던 용기 있는 소수 사람들의 행동이었다.

소련 사람들이 그간 몰랐던 외부의 진실한 소식을 전하는 행동이었는데, 그 작고 작은 팩리밀리 기계 몇 십 대(지금으로는 핸드폰)가 소련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중한 역할을 해냈기에, 탱크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맨몸으로 맞선 주민들이 결국 70년 역사의 소련연방을 해체시켰다. 이렇게 진실의 소리와 자유의 목마름은 총으로도 핵무기로도 통제할 수 없다.

핵미사일 발사로 어수선하고 혼란한 이때에, 놀랍게도 70여 년 기나긴 분단의 아픔을 참아내며 생명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지하성도들이 북녘에 있다는 사실(유튜브 동영상: 70년 견딘 성경책, 북한 지하교회 확산 - TV조선 뉴스)은 매우 고무적이다. 틈만 나면 인권을 찾고 민주를 부르짖는 그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은 북녘의 동족들이 수십 년 겪고 있는 인권 탄압과 부자유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실망스럽다.

이제부터라도 민족의 장래를 축복받은 통일로 준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전쟁과 가난이라는 어려움을 극복하며 쌓아 온 우리들의 소중한 자유와 생명의 이야기들, 그리고 70년 넘게 두려움을 견디며 신앙을 지켜낸 북녘 지하 성도들의 이야기들을 영상과 결합해 SSN 등을 통해 북녘과 세계에 보낸다면, 핵미사일로는 불가능한 겨레의 생명 구원과 복된 통일을 이루어내리라.

우리 크리스천들은 복음 안에서 통일을 준비하고 있기에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 오히려 핵을 장착한 미사일이 통일을 더 두려워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핵무기를 버리고 회개하고 돌이켜 참 진리와 생명으로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통일은 무력과 주체사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만으로 가능하다. 주님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마 10:28)고 말씀하셨고,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요일 4;18)면서, 지금도 우리를 격려하신다.

누가 더 통일에 적합한가? 생명을 파괴하는 미사일인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주의 백성들인가? 북한 지하 성도들의 순교 이야기와 주민들의 참상을 알리는 일이야말로 역사적 예수의 구현이다. 주님의 백성들이여, 주님으로 인해 고난 받는 동족들을 위하여 울며, 기도하고 외치십시오!

"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주의 영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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