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5:12-18

꼭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지켜야 할 법을 어긴 사람은 수사를 받고 감옥으로 가는 불행을 면치 못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은 병상에 눕는 불행을 겪게 됩니다.

사람이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될 일 중에는 감사도 있습니다. 꼭 해야 할 감사를 제대로 못 서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감사의 생활을 바로 할 때 불행은 물러가고 행복은 찾아온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감사란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그런 것이 아니고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칩니다. 감사할 수 있는 때와 감사할 수 없는 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어떤 경우에나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감사의 조건이나 이유를 알면 감사하겠지만, 조건도 이유도 모른 채 무작정 감사하라는 건 억지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옳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조건도 이유도 모르면서 무조건 감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감사해야 할 조건이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다 주어진 감사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사람이면 누구나 누리는 생명입니다. 인생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께 받은 이 생명에 대하여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태도로 사는 것은 사람이 마땅히 행할 바요, 마땅히 행할 바를 행하며 사는 것이 삶다운 삶이요, 삶다운 삶을 살 때 인생은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생에 대한 근본적인 감사의 태도를 잃어버리고 삽니다. 슬픈 일이요 불행한 일입니다.

사무엘상서 24장에 사울 왕과 다윗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습니다. 도망치던 다윗이 어느 날 어떤 동굴 속에서 깊이 잠든 사울 왕을 보게 됩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절호의 기회이니 당장 왕을 죽여 없애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의 몸에 손댈 수 없다며 왕의 옷자락 일부만 베어냈습니다. 사울 왕이 잠에서 깨어 이 사실을 알고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진심을 깨닫고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 눈물인 동시에 자신의 생명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진 사울 왕의 마음속에 감사가 그리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생의 기본자세인 감사를 잃어버린 사울 왕은 끝내 하나님께 버림받고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한 끝에 길보아 산에서 자살로 생애를 마치는 불행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온갖 고초와 시련 속에서도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행군했던 다윗은 성군이라는 빛나고 복된 이름을 남겼습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과연 생에 대한 근본적 감사가 우리의 삶 가운데 살아 있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감사를 상실한 존재임을 스스로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상대적 감사의 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이 소원을 들어 주셨으니 감사하고 이익을 보태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누가복음 19장에 열 문둥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를 표한 것은 단 한 사람, 그것도 유대인들이 열등 족속이라고 멸시하는 사마리아 사람뿐이었습니다. 열 명은 모두 믿음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병이 나았을 것입니다. 병이 낫는 순간 모두 생명에 대한 감사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드러내어 감사를 표한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감사를 생의 태도로 삼은 사람과 하나님이 소원을 들어 주셨다고 느낄 때에만 감사하는 사람 간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감사를 생의 기본 태도로 삼아야 합니다. 생명의 선물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이미 감사의 조건을 갖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태도를 항상 가지고 사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감사는 행복의 어머니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썼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헌금에 대해 감사하며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모든 일에 자족하기를 배웠노라”(빌 4:11).

어떠한 형편에든지 모든 일에 자족할 수 있었다면 바울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이런 태도를 배웠을까요? 내가 누리는 생명이 하나님이 내려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때 자족의 삶 곧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감사하며 자족하는 삶의 자세를 가질 수만 있다면 한층 윤택하고 풍요롭고 충만하고 뜻있는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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