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14)

하나님 나라는 그의 통치를 사람들 가운데 건설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강하게 역사하는(마 11:1-13) 하나님의 구속적 통치이며 이 세대의 종말에 예수님(메시아)의 재림으로 완성될 나라이다.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의 창조 이후,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왕국을 말하며, 유대의 후기 역사를 통하여 다시 재현될 다윗의 왕국으로 표현되었는데, 하나님의 구속적 통치가 일어나는 이 세대의 종말론적 행위가 일어날 왕국이다. 하나님의 왕국은 오실 메시아에 의하여 실현되는 하나님의 통치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신앙과 유대교 신앙은 빈번하게 메시아의 언급 없이(구약과 유대교는 성령을 베풀 메시아를 기대하지 않았다) 승리하는 하나님 나라를 묘사했다. 그러나 메시아는 하나님 나라와 분리될 수 없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기다린, 그의 백성을 다스리시고 승리하시는 하나님의 통치 실현을 위해 오신 것이다.

1.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이다(눅 17:20)  

하나님 나라는 참된 의미에서 볼 때 여기서 현재적 사실이 되어 있다는 주장이 복음 메시지의 핵심이다. 그 나라는 지금 “너희 안에” 있다(눅 17:2, 참고 눅 4:21).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 속에서 하나님 나라는 세상 속에 침노했다(C. H. 도드의 '실현된 종말론', 왕국의 현재성,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도래)

1) 하나님 나라(바실레이아)의 기본 의미는 하나님의 통치 내지 지배이다 하나님께서 왕의 권세를 가지고 그의 원수를 궤멸시키시며 그의 백성을 구원하실 때 그것은 하나님의 종말적인 행위를 지칭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데 모여 하나님의 통치의 축복을 영위하게 될 현재적이며 미래적인 구원의 영역을 지칭할수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는 오는 세대와 대치하여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이. 대다수 학자들의 의견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이며 미래적이다.

2) 하나님 나라가 참된 의미로 세상에 들어 왔다면, 사람들은 그 나라를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복음서는 ‘누가 그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말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하여 비유로 설명한다. 여기서 바울 사도에 의하여 선포된 믿음에 의한 구원(갈 2:16, 20)을 보게 된다. 그리고 신자는 그리스도의 행위를 본받아야 하는데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한다(약 2:14-18). 행위는 믿음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3) 하나님 나라를 현재적 실재로 말하는 성경 본문 중에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난해한 구절인 마 11:11-12에서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새 시대의 천국은 강력하게 도래하였으며 열심있는 자들은 현재에 그것을 붙잡았다)"라고, 세례 요한이 보낸 자들에게 답한 예수께서는 이사야 35장 5-6의 메시아 예언(전략,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을 효과있게 인용해, 이 예언은 성취되었고 메시아적 구원의 새 시대가 여기에 도래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축복, 현재적 선물로서의 하나님 나라).

4) 예수님의 이적들은 그것들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현존을 선포하는“강력한 활동(능력)”들이다. 그것들은 현세에서 내세의 능력을 맛보는 것이다. 우리가 주기도문에서 기도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짐을, 다시 말해서 그의 통치가 완전하게 실현됨을 의미한다(마 6:10).

5) 예수께서 복음서에서 보여 주신 윤리는 절대적인 하나님 나라의 윤리로서, 마음의 의를 강조한다(마 5:20,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은 의). 예수님의 윤리는 자신을 따르는 모든 세대 사람들이 지켜야 할 규범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까닭은 하나님 나라는 모든 역사의 목표이자 모든 신자들에게 상급이 될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순종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 침노한(도래한) 하나님 나라에 입각하여 종말론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셨다(종말이 내일인 것처럼 생각하고 매일의 삶을 살아간다). 이렇게 예수님의 교훈은 세상의 종말을 기대하는 자들의 윤리가 아니라, 이미 이 세상의 종말(종말론적 완성)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경험한 자들의 윤리이다. 이 윤리는 하나님 나라 도래를 위한 수단이며 길잡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구약의 소망을 성취시키는데, 구약을 영감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라 생각하였으며, 율법을 하나님께서 주신 생활 규칙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율법이 사람들에 의하여 그 정신이 변질되었으므로, 예수님께서는 변질된 율법을 선호하는 자들을 책망하시고 그 율법을 거절하셨다. 하지만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가 예수의 교훈에 순종하여 얻어지는 대가(보상)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는 하나님의 미래적 은혜의 선물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에 내맡기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현재적인 선물이다.

 

하나님 나라의 실현에 대하여, 하나님 나라는 이미 왔고(실현된 종말론, 도드의 ‘천국의 비유’), 하나님의 통치란 개념에서 볼 때 현재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현재적 종말론 혹은 실존적 종말론, 디벨리우스, 슘니트 불트만), 또 앞으로 올 나라인 것이다(미래 종말론 혹은 철저 종말론, 슈바이처의 ‘라이마투스에서 브레데까지’). 그러면서도 지금도 실현 과정에 있는 나라(예레미아스의 ‘실현 과정 에 있는 종말론’)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한 마디로 정리한 것이 G.E. 래드 교수의 “이미”와 “아직”의 개념(하나님 나라의 이중성)이다.

이를 본서 64쪽, 하나님 나라의 개념과 그 변천 과정에서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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