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심포지엄 지상특강

종교개혁의 정신은 교회가 스스로를 절대화하지 않고 끝없이 반성하고 비판하고 개혁할 의지를 갖는 데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이 시대 미국의 사회적, 종교적 상황을 살펴보고 이런 흐름이 미주 한인 교회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탈 진실(Post-Truth) 사회

지난해 미국의 대선 기간 동안, 시대를 풍자하는 상징적인 용어 하나가 유행했다. 탈 진실(Post-Truth)이라는 단어인데, 2016년 말 옥스퍼드 사전에 '올해의 단어'로 선정될 만큼 영향력이 컸다. 탈 진실(Post-Truth)은 사람들이 무엇을 판단하고 믿고 또 결정을 내리는 데 객관적 사실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정치판에서 진실과 거리가 먼 주장을 해도 지지자들은 별다른 동요 없이 기존 후보를 지지하는 모습을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탈 진실(Post-Truth) 사회는 신뢰가 와해된 사회이고 냉소적인 사회이다. 타인의 진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자신의 진실은 왜곡된 뉴스를 통해서라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한 사회이다. 현재 미국의 그리스도 교회는 이런 사회  현상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 등장

현재 전체 미국 성인 중 1/5은 종교가 없다고 말한다. 20대의 경우, 그 비율은 1/3로 증가한다.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은 20%밖에 되지 않으며, 해마다 수천 개의 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다. 최근 인구 조사에서 종교적인 소속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들을 연구하면서 새롭게 발견된 부류가 있다. 현재 미국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이라는 그룹이다. 조직화된 종교를 싫어하고 제도적인 교회에 출석하지 않지만, 스스로 영성을 추구하는 삶을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최근 이들의 영성과 그 파급 효과에 대한 연구가 늘고 있다. 교회에서는 이들의 영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할까 하는 고민이 커졌다.

 SBNR  급속도로 늘고 있을까

교회가 교리와 제도를 앞세우고 영성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를 떠난 이들이 늘어난 때문일 수 있다. 혹은 불교나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다원주의적인 영성을 지닌 이들이 늘어난 때문일 수 있다. 교회의 교권주의, 성직자 중심주의, 번영 신학 등이 교회를 떠나는 요인이 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성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또는 환영이 각각 교회를 떠나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SBNR의 숫자가 점차 늘면서 미국 내 개신교의 전통적 신앙이 새로운 형태의 영성과 가치관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많은 학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SBNR의 증가를 시대적 현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또래 친구들과 만나서 놀고 대화하면서 성장하던 청소년기의 사회화 과정이 깨지고, 혼자 있어도 행복한 세대가 생겨났다. 결과적으로 종교와 영성을 스스로 찾는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가 이런 시대적인 현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SBNR의 증가 원인에 대한 답은 복합적이다. 하지만 교회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교회를 떠났지만, 신의 존재를 믿고 자기 나름의 영성으로 선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선교적 입장에서 돌보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영성이 기독교 신학에 어떤 도전을 주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현실

한국의 개신교는 최근 전체 교인의 숫자만 줄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를 잃고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여파는 이민 사회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이런 개신교의 현실에 대한 다양한 진단과 반성이 있어 왔다. 흔히 원인으로 제시되는 교단 정치, 상업화, 헌금 강요, 세습, 대형교회 건축 등의 문제가 한국 교회의 물량주의, 성공주의, 배타주의와 같은 이미지와 연결되면서 개신교회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다. 그 결과 90년대 중반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종교 없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어 주목받고 있는데, 이 현상은 한국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한국교회가 주목해야 할 통계는 국민의 다수가 개신교에 대한 불신, 개신교 성직자에 대한 불신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신은 이민사회의 한인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잠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주 한인교회의 현실

미주 한인교회들이 고령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앞으로 10년 밖의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상태이다. 교회에서 젊은 층들을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이민 1세대 교회들은 미국 사회의 종교 지형 변화에 주목하면서 이민교회를 떠난 사람들에 대한 좀 더 체계적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연령대별로 그들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인교회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교회를 떠난 자신들의 신앙과 영성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어떤 교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등을 알아봐야 한다.

교회가 변해야 할 부분이 없는지 되물어야 한다. 실제로 이민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민 사회의 특성상,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문제는 불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신앙과 영성과 가치관이 출석하는 교회와 맞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변화와 개혁에 대한 요구는 안을 들여다볼 때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교회의 선교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시작해야 하고, 그들이 느끼는 영적인 욕구를 그들의 눈높이에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교인들의 영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절실하다. 믿음이라는 잣대로 측정하기 힘든 영성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일률적인 믿음만 강요하는 경우는 없는지 반성이 필요하다. 교회의 프로그램이 교회를 위한 것인지 교인을 위한 것인지 자주 물어야 한다.

미주 한인교회가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과 한국사회 종교의 지형 변화, 교인들의 고령화, 교인들의 감소 추세, 교회 폐쇄 등 그 어느 부분도 녹녹하지 않다. 이런 가운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았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죽음을 각오한 결단의 결실이었다. 한인교회 역시 루터와 같은 각오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종교개혁의 정신은 끝없는 자기 반성을 요구한다. 미주 한인교회들이 만인사제설에 입각한 자기 반성으로 교인들의 영성을 살피고 교회 밖에 있는 신앙인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시카고교협 주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심포지엄, 서보명 교수 강연 발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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