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야고보서 1:19-21).

말씀이 심긴 사람들

야고보 사도에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진리의 말씀으로 태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 곧 그분의 뜻에 의해 새로운 백성이 탄생했음을 선포했습니다. 복음으로, 곧 '진리의 말씀'을 통해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들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가장 먼저 말합니다.

야고보서 1:19은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에 해당하는 '이스테'로 시작합니다.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적 행동, 그 변할 수 없는 사실에 근거해 이제는 그 구원의 행동의 의미와 결과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실제적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이 심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알고 행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듣고 말하기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선 말부터 근본적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을 속히 해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속히'라고 번역한 '민첩하게'라는 단어 '탁수스'는 문자적으로 '즉시'라는 뜻입니다. 지체함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포함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있어 지체함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 우리의 순종이 즉각적이고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이 즉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갔던(3) 것과 같은 그런 순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말하는 것에 관해서는 더디 해야 합니다.

듣기는 속히 해야 하는 반면, 말하기는 더디 해야 합니다. 원문은 ‘둔하게’를 뜻하는 '브라두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말하기를 민첩하고 약삭빠르게 하지 말고 어리석은 자처럼 둔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전도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도서 5:2).

사실 우리는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성경 구절과는 반대로 듣는 데에는 굼벵이보다 느리고, 말하는 데에는 치타보다 빠릅니다. 듣는 일에 참을성이 없습니다. 또 들어도 고집스럽고 둔하고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남이 말하는 것을 자기 식으로 알아듣고 자기중심으로 해석하기가 다반사입니다. 반면에 말을 할 때에는 얼마나 급합니까? 상대방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도중에 끊고 들어와 그 말을 가로채고 자기 생각을 쏟아 붓기에 바쁩니다.

또 성내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말하기를 속히 하는 사람은 쉽게 흥분하고, 쉽게 분노하고, 쉽게 격동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언 15:1)는 말씀이 사실인 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들은 그 반대로 행합니다.

말이 급하고 격하면 분노를 자극하기 마련입니다. 상대방의 노를 격동할 뿐 아니라 자신의 분도 격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관계가 깨어집니다. 다툼과 시기와 분쟁이 일어납니다. 공동체는 파괴되고 평화는 결렬됩니다. 그래서 말의 문제는 단순히 말의 문제가 아니라 "의와 평강과 희락"을 깨뜨림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지 못하고 파괴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예수 믿은 사람은 그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긴 사람입니다. 거기에서 영적 생명이 자라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라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바뀌는 것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말을 바꿉니다. 듣기와 말하기의 습관을 바꿉니다. 거듭난 신자는 그의 심령에서 울려나오는 하나님의 말씀, 기록되었고 또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속히'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일에 미련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죄를 짓는 일에는 빠르고, 헛된 소리, 더러운 소리, 격동하는 소리, 탐욕과 분을 자극하는 소리에 빨랐던 자가, 그런 소리들에는 점점 미련할 만큼 반응이 느려지고, 대신 하나님의 깨끗하고 지혜로우신 말씀에는 점점 빨리 반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듣기를 속히 하라는 말은 정말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누가 나를 비판하면 그것이 아무리 황당해도, 변명하고 방어하기 전에, 일단 하나님 앞에 가져가야 합니다. 내가 고쳐야 할 것들이 있는지 정직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있으면 겸허하게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분 앞에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속마음을 샅샅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도 아무런 허물이 없다면 근거 없는 비난에 대범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며 가던 길을 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는 아무에게도 판단 받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듣기를 속히 한다는 것은 아무 것이나 쉽게 믿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잠언에서 말하는 것처럼 많이 듣지만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단순한 사람입니다. 들을 말을 듣지 않고, 아무것이나 듣고 아무 것에나 흔들리는 사람입니다. 유독 우리나라에는 재림주가 많습니다. 예언이나 환상을 보았다며 점쟁이 노릇하는 신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순결하고 진실하며 의와 생명이 가득한 말씀을 듣고 깨닫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는 것을 늘 기억하며 경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말하기를 더디 해야 합니다. 참된 말은 반드시 사랑으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해야 할 말은 언제나 당사자에게 조심스럽게 하되, 모욕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잘못을 지적하는 이유와 목적은 잘못한 형제를 회복시키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사랑이 목적입니다. 그런 목적이 확실할 때 입을 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황종렬 교수님의 다음 말을 늘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사랑이 식었다면 비판하십시오. 비판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요. 사랑하면 따뜻하게 비판할 때와 방법을 마침내 찾게 될 것입니다. 비판이 아니라 사랑만이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지켜가기 어렵거든 비판의 말을 가슴에 묻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의 햇살과 빗줄기 안에서 사랑이 익으면 비판의 방법도 같이 익어 가는 기쁨과 충만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성품

속히 듣고, 더디 말하고, 더디 성내는 것은 하나님 백성의 특질이요 성품입니다. 남아공의 고 넬슨 만델라 대통령에게서 그 성품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27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너무도 힘겨운 기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넬슨 만델라를 빚으시는 하나님의 시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 백성의 성품으로 빚어졌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대로 그는 속히 듣고 더디 말하고 더디 성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결코 말을 가볍게 하지 않는다. 27년간의 옥살이가 내게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독의 침묵을 통해 말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고 얼마나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가 출옥한 후 총선 실시가 발표되었는데, 흑인들 간에는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혼란기를 이용해 백인들이 재집권을 위해 공권력을 동원해 수십 명의 사람들이 죽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을 때에도 그는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동료 흑인들에게 자제를 당부했습니다. 그는 분노가 모든 것을 망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27년간의 감옥 생활이 그에게 가르쳐준 지혜였습니다.

그는 더디 성내는 사람이 되었고 그런 그를 통해 마침내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흑인들에게 최초로 투표권이 주어진 총선이 열리고, 흑인들이 다수인 의회가 결성되고, 마침내 만델라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전임 대통령이었던 백인을 부통령으로 세우고, 가장 큰 정적이며 흑인 가운데 다수 부족인 줄루족 지도자를 내무부 장관으로 세웠습니다. 진실과 화해의 힘겨운 시기를 지나야 했지만 참으로 감격스러운 해방이었습니다. 임기가 끝나고 모든 이들이 재집권을 요구했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고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의 모습에서 속히 듣고, 더디 말하고, 더디 성내는 하나님 백성의 성품을 봅니다.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사람이 사람에 의해 억압받는 일이 결코, 결코, 결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자유가 흘러넘치도록 하자. 아프리카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지요?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데 있다."고 만델라는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일어나야 합니다. 영원히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할 일은 언제나 새롭게 일어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속히 듣게 되길 바랍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