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 속에서 분리와 보복과 참극은 사람이 사람을 학대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아브람이 백세가 가깝도록 아들이 없자 그의 아내 사래가 여종 하갈을 남편에게 취하게 했고, 하갈은 수태되자 본처 사래를 멸시(학대)하였다. 이로 인해 사래 역시 하갈을 학대하게 되었고, 하갈은 도망하여 방황하던 중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 후 아브람은 구십구세가 되어서야 본처 사래를 통해 아들 이삭을 낳게 되었다. 이 두 조상의 후예들이 오늘에까지 이어져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이슬람교의 알라 신을 섬기고 있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예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결국 사람이 사람을 학대한 것이 시발점이 되어, 이 두 후손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간 서로 원수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끝없는 참극을 빚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일시 권력이 있다고 해서 무죄한 사람을 학대하는 일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잠언 기자는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잠 14:31)라고 했고,  이어 말하기를, “악인은 그 환난에 없드려져도 의인(학대 받는 자)은 그 죽음에서도 소망이 있다”(잠언 14:32)라고 기록했다.

성경은 무죄한 자를 학대해 저주와 멸망을 당한 경우들을 수없이 나열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학대하고 핍박했던 당시 이스라엘 주권자들로 인해 그 후손들이 얼마나 많은 질고를 겪었던가!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대로“열국 중에 그들을 해치고 진멸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렘 9:16), “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청년들은 칼에 죽으며 자녀들은 기근에 죽고”(렘 11:22), “그들이 멸망과 놀램과 비웃음과 저주를 당함이 오늘과 같으니라”(렘 25:18)고 했다. 동시에 이 무서운 저주는 “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마 23:35)라고 기록된 것처럼 신약에까지 이어졌고, 심지어 이러한 저주는 당사자들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마 27:25)라고 자취(自取)하여,  이스라엘의 비극적인 역사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반도는 남과 북을 막론해 민주주의 국가라는 미명하에 사람이 사람을 학대하는 수준이 도를 넘은 지 오래이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최근 남한의 종북 좌파들의 행태는 미련하리만치 잔인하기 그지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학대만 보더라도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종편들이 전하는 대로 생사람을 잡아 말려 죽이려는 고의성이 그대로 드러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법을 따지며 재감금을 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 감금시켜 놓고 거짓 자백을 받아 내고,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증인들은 처음부터 세우지 아니하여 그야말로 사람을 개돼지 취급하고 있다.

문제는 사람을 학대하는 세력이 득세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실정을 보더라도 사람이 채찍을 들고 사람의 잔등을 후려치며 강제 노동을 시키는 일은 일반화된 상황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먹고 입을 것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허기진 상태에서 나날을 보내게 하여, 수백만 명의 주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세태는 천인공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러한 상황을 뻔히 알면서 종북을 선호하고 북한과의 연방 통일을 외치고 있는 현 남한 정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을 개돼지처럼 학대하고 가난에 시달려 수백만이 굶어 죽어가는 것이 그렇게도 부럽단 말인가?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사람이 사람을 학대하는 일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일”(잠 14:31)로서, 하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동시에 아무리 학대를 받더라도 의로우면 반드시 죽음에서도 소망이 있다는 말씀(잠 14:32)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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