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정신은 끝없이 반성하고 비판하고 개혁하는 데 있어"

지난 10월 10일,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시카고지역 교회협의회가 신학교 교수들을 초청해, 우리가 사는 시대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행사를 가졌다. 교회협의회 30년 역사상 신학 심포지엄이 열린 것은 처음이라는 서보명 교수의 말대로, 신학자들의 역할이 왜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 행사였다. 내년에도 신학 심포지엄을 계속하면 좋겠다는 반응들이 많았다. 신학자들은 각각 다른 관점에서 미주한인사회를 이해하고 전망했다.  서보명 교수(시카고 신학교)는 발제를 시작하며, “종교개혁 정신은 교회가 스스로를 절대화하지 않고, 끝없이 반성하고 비판하고 개혁할 의지를 갖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번 호에는 발제한 내용들을 들으며, 필자 나름대로 “반성하고, 비판하고, 개혁”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그 소감을 나누고자 한다.

POST-TRUTH, POST-SECULAR, SBNR

우선 서보명 교수는 미국 개신교의 역사적 상황을 세 단어, 즉 Post-Truth 사회, Post-Secular 사회,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의 등장으로 설명했다. Post-truth는 사람들이 판단하고 믿고, 결정을 내리는 데 객관적 사실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객관적 진리가 있다 해도 제멋대로 판단하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서 교수의 말대로, 교회는 이제 전통적이고 절대적인 주장만 할 수 없고,  다양한 관점, 열린 관점에서 진리를 재해석하고 전파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마치 예수님께서 구약의 율법을 재해석하고 복음을 전파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4복음서 저자들이 경험하고 강조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듯이, 다양한 관점의 열린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신과의사이자 작가인 스캇 펙은 C. S. 루이스의 글을 인용해, ‘지옥은 한 가지 주장만 하는 곳’이라고 했다.

서구에서는 종교개혁 이후 근대사를 제도적 종교(기독교)에서 벗어나 세속화 과정을 밟는 역사로 이해했지만, 미국이 2001년에 9/11 사건을 경험하면서 종교적 현상이 새롭게 생성되었다고 서 교수는 말했다. 최근 아프리카와 제3세계에서 기독교가 성장하고 있는 현상을 보더라도, 인간은 종교성을 계속 추구하는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서 교수는 말했다. 이어서 서 교수는 SBNR의 개념을 설명했다. 미국에서 조직화된 종교, 제도적인 교회에 속하지 않으면서 영성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다시 말해 많은 현대인들이 영성을 추구하면서 전통적인 교회가 해온 종교적 실천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강연들에서 아쉬웠던 점은 소위 “가나안 성도”에 대한 언급과 이해를 좀 더 심도있게 전개시키지 않은 것이다. 교회 또는 기업이 종교사회학자들을 지원해 이들에 대한 전문적인 설문조사와 연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과연 SBNR들의 영성을 기존의 교회들이 수용하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초대교회는 늘어나는 이방인 그리스도교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했다가, 예루살렘 공의회를 통해 할례를 강요하지 않고 그들의 믿음의 실천을 수용했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들이 SBNR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할례는 무엇일까? 그들을 수용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필자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난비 신앙에서 정주 신앙으로

조의완 교수(풀러 신학교)는 트럼프 시대의 교회 현황을 iChurch 시대, 난비(亂飛:방향성 없이 흔들리는) 신앙으로 풀이했다. 조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 현대 미국 사회, 특히 백인 복음주의자들을 비롯한 현대인들의 믿음의 증상이라고 규정했는데, 그 규정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트럼프 시대는 타인에 대한 공포가 유동하는 시대이며, 각자 살아남기 위해 번영신학과 종교적 소비주의가 득세한 시대이며, 공동체보다 개인을 중시하고, 마치 아이팟(iPod)에서 원하는 것을 쉽게 선택하듯 편리함과 소비주의적 방식에 길들여져 있는 시대라 규정한 것은 조 교수의 탁월한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시대에 그는 초대교회의 사막 수도원 전통의 영성을 재해석하고, 오늘날의 목회적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조 교수는 현대인들의 난비 신앙에는 초대교회 사막의 영성인 자기 응시의 신앙이 없다고 지적했다. 멈추어 서서 자기를 응시하고 성찰해야 하는데, 이것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주(定住:stability) 신앙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자기 응시와 정주, 내적인 고요를 통해 자기의 죄(특히 죄악칠종)를 살펴야 하는데, 현대교회에서는 죄의 고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사막 영성의 전통 중 하나인 침묵의 훈련을 강조했다. 특히 미주한인들은 기도할 때 각자의 부르짖음만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자기중심적 신앙은 나의 필요를 요구할 뿐이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살필 여유가 없다. 예배를 드리면서 자기의 감정을 쏟아내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교회에서 불리는 찬양 가운데 자기 중심적인 찬양이 얼마나 많은가?

조 교수는 또한 지역성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교회는 타자를 환영하고 지역사회에 성육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위 세계를 품은 교회는 많은데, 그 지역에 뿌리내리고 지역사회의 필요에 응답하는 교회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은 필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제껏 필자는 지역사회를 돌보지 않고, 오직 교회에 오는 교인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해왔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또한 타인에 대한 공포(Xenophobia)의 해법으로 타인에 대한 포용과 사랑(Philxenia)을 제시했는데, 이는 필자도 계속 고민해 오고 있는 과제이다. 불안과 공포 가운데 살아가는 현대인들, 특히 미주 한인들은 편견이나 판단 없이 받아들여지는 포용과 사랑의 공동체를 원한다. 이를 위해 교회들은 가정교회, 목장 모임, 사랑방 모임 등을 하지만, 진정한 포용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을까? 필자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난비하는 신앙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조 교수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사막의 영성을 일깨워 주었고, 전통을 재해석해 대안적인 목회적 영성을 이루도록 자극을 주었다.

인구 변동으로 인한 변화에 대비

피터 차 교수(트리니트 신학교)는 미국의 사회 변화를 종교사회학적인 관점에서 통계들을 인용하며 재해석했다. 미국사회는 인구 변동과 경제 체제 변동으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비백인들이 빠르게 주류화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백인들은 공포심을 느끼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종 갈등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인 2세들은 한인사회를 떠나 미국 문화 속에서 일하고 싶어 하고 기독교 신앙을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차 교수는 말했다. 차 교수는 특히 2세 중심의 한인교회들이 인종 갈등과 변화하는 미국사회에서 조정자, 화해자의 역할, 다리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한인교회는 한인들만의 교회에서 지역주민의 필요에 응답하는 교회로 바뀌어야 하고, 2세들을 이해하고 지도력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발제에서 아쉬웠던 점은 지난 20년, 혹은 10년 동안 미주 한인사회의 변화에 대한 구체적 연구조사, 특히 미주 한인교회의 변화에 대한 연구조사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시대 변화, 세대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하지 못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한인 1세 중심의 교회들에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세들이 있는 중대형교회는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작은 교회에겐 한인 1세대를 향한 소명을 다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를 포함해,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은 2세들에게 교회 지도력을 넘기는 문제와 1세 교회로서의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과제때문에 늘 마음이 무겁다. 부활은  죽음을 통해서 오지 않았던가. 개혁보다 죽음이 먼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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