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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일을 하고 있습니까?”
곽성환 목사  |  PMI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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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24  06: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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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실린 아내의 목소리가 운율의 곡선을 그리며 귀청을 두드립니다. 모니터에 빠질 듯이 박고 있던 머리를 들면서 허리를 곧추 세웁니다. 엄지손가락 두 개를 모아 턱을 밀어올리기도 하고 손바닥 끝을 머리에 대고 죄우로 끌어당겨 봅니다. 목과 어깨가 뻐근한 것을 보니 구부정한 자세와 거북이 목으로 컴퓨터를 한 지 한참의 시간이 지난 모양입니다. 스트레칭을 하는 1,2분은 근육만이 아니라 정신도 이완시키는 유익한 시간입니다. 그 참에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하고 따뜻한 차를 내려서 향을 음미하기도 합니다.

자세에 대한 경각심을 마음에 새긴 후 다시 컴퓨터 작업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는 모니터를 끄고 늘어진 정신줄을 다시 조인 후, 해야 할 다른 일을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보통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생기는 일입니다. 요즘은 뉴스도, 강의도, 소식도 인터넷을 통해 주고 받습니다. 전공과 관련된 필수 서적이 아닌 경우에는 책을 사서 읽지 않습니다. 원저자의 글이 아닌 이차적 자료나 간단한 논문을 유저들이 업로드한 콘텐츠를 통해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또한 SNS를 통해 내 생각이나 겪은 일 등을 알리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것도 모자라 손에 들고 다니는 컴퓨터(셀폰)를 보는 것이 일과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설교 예화나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아야 한다는 이유에서 시작한 인터넷 서핑은 처음과는 달리 여차하면 다른 곳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꼬리를 물고 등장하는 관련기사와 팝업들을 클릭하다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납니다. 어느새 나는 검색삼매경에 빠져 허리 휘는 줄도 모르고, 식사 시간이 지난 줄도 모릅니다. 그때쯤 아내는 제 정신 세계에 파문을 일으키는 돌멩이를 던집니다. 걱정이기도 하고 분노이기도 합니다. 호소이기도 하고 경고이기도 합니다. 아내의 말뜻을 알기에 나는 잠시 동작을 멈춥니다. 그리고는 스트레칭을 하며 이렇게 질문합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이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바르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바로 답이 나오지 않으면 그 일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일입니다. 그 답이 떳떳한 것이 아니라면 그 일은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답변에 걸린 시간과 답의 내용은 나로 하여금 자세를 바꾸던지, 하고 있는 일의 내용을 바꾸라는 신호입니다. 사이버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하고 싶은 일에서 해야 하는 일로 바꿔야 한다는 경고입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라는 자문에 자괴감이 든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변화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개혁은 익숙하고 당연하게 하고 있는 행동에 대한 점검의 질문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왜 이 일을 하는가?”이는 How의 문제(열정과 속도)가 아니라 Why(방향)의 문제입니다. 그 질문을 하려면 생각할 틈이 있어야 합니다. 그 틈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소리를 듣게 하시고, 보게 하시고, 때로는 멈추게 하십니다. 그 순간 우리는 자신에게 질문하고 진지하게 답을 찾아야 합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10월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시월의 마지막 밤을 기억하고, 어떤 이는 색다른 코스튬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개혁이라는 단어와 루터를 생각합니다. 루터는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종교적 관행에 대하여 “왜?”라는 질문을 던졌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답에서 의미와 정당성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용기를 내어 일어섰던 사람이고, 그의 용기는 교회내 뿐 아니라 서양사 전체를 뒤흔드는 역사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착한 사람들일 수록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고, 그 질문을 불신앙이나 불경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이야말로 내가 하는 그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함이고 열정적으로 끝까지 하기 위함입니다. 스스로를 개혁하지 않으면 개혁의 대상이 됩니다. 회의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흐트러진 자세를 바꾸던지, 아니면 시간과 공을 들여 이루려고 하는 그 내용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저와 여러분은 개혁의 대상이 되고 말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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