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짜리 예쁜 은우가 동그라미를 배웠다고 그림을 보내왔다. 하얀 종이 위에 연필로 그린 크고 작은 다섯 개의 동그라미 얼굴.

그 얼굴들 안에는 콩알만 한 또 다른 동그라미로 눈, 코, 입이 제법 자리를 잘 지키고 앉았다. 그 앙증맞음이 ‘풀잎에 연 이슬’처럼 느껴졌다. 양 갈래로 묶은 머리를 표현하려고 가는 선을 서너 개씩 양쪽 위에 달고 있는 큰 동그라미가 자신이라 했다. 다른 동그라미들은 같은 반 친구들이라는 설명까지 보탰다. 귀여움만 받고 차분하고 조용히 3년 자랐을 뿐인데 어떻게 눈에 보이는 인물을 형상화시켜 손으로 그려낼 수 있는 능력까지 키웠을까? 자라는 아이들의 지혜와 재능을 볼 때 놀라움을 숨길 수 없다.

자신이라는 동그라미는 얼마나 크게 그렸는지 같은 친구들을 다 포개고, 품어 넣을 수 있겠다. 서양인 일색인 교실 안의 얼굴들을 타원형이나 네모, 세모도 아닌 동그라미로 표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친구들의 얼굴을 동그라미를 통해 표현한 은우의 마음도 곧 동그라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보이는 형상이 마음을 통과하여 나왔기에 마음 안에 있는 형상도 묻어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마음을 꼴로 생각해 봤다. 동그라미도 있는가하면 굽거나 각진 꼴도 있다. 삼각, 사각, 팔각, 각이 적은 모형은 뾰쪽한 그 부분이 넓지 않아서 다른 모형을 받아들이기에 참 어렵게 생겼다. 그러나 각이 점점 많아져서 원에 가까워지면 편하게 느껴짐은 당연하다.

쉽게 볼 수 있는 별 모양도 그려봤다. 별꼴은 밖으로 다섯 개의 각이 나와 있는 것은 물론이요, 깊숙이 안으로 다섯 개의 각이 거꾸로 들어간 형상이다.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자신 외에 다른 어떤 모형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성 싶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쉽지 않고, 예민한 성품의 소유자를 두고 우린 흔히 말하곤 한다. “저 사람 별꼴이야!”라고. 참 그럴 듯하다.

그보다 심한 표현도 쓴다. “별꼴이 반쪽이야!” 그 별꼴을 반으로 자른 형상을 한 번 상상해 봤다. 어떤 모형이라도 그 안에선 답답하고 불편함은 물론이요, 찔리는 아픔을 당하고야 말 것이다. ‘별꼴의 반쪽’ 누가 맨 먼저 사용했는지 모르지만 기가 막힌 우리말의 표현, 그 재치가 놀랍기만 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같은 모형의 마음일 수는 없다. 별꼴의 마음, 세모꼴의 마음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어우러져 살아간다. 그런 마음의 모양도 때론 필요하다. 그러나 난 아무래도 둥근 마음 곁에 있고 싶다. 굽거나 모난 데 없이 유연한 동그라미로 표현되는 원만한 마음의 옆에.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으로 시작되는 ‘얼굴’이라는 노래를 18번으로 삼았던 친구가 있었다. 기분이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빠르고 경쾌하게, 울적할 때는 동그라미로 피어날 누군가를 그리워하듯 느리고 낮게 부르곤 했다. 동그라미를 좋아해서 그랬는지 성품 또한 편안했다. 다른 사람의 실수에는 개의치 않고 웃어버리던 친구. 자신의 의견도 목청 높이지 않고 조용하게 피력하던 친구.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일도 조근조근 설명해 주곤 하던 친구였다. 자신의 애창곡처럼 마음 또한 동그라미였음에 틀림없다.

반세기 가깝게 흘러버린 세월은 친구 안의 동그라미를 잘 보호해 주었을까? 혹시 다른 꼴로 바뀌지는 않았을까? 바라기는 그 마음을 그대로 지켰으면 좋겠다. 동그란 사람들과 어울리며, 어느 하늘 아래서 동그란 성품으로 세상을 이겨내고 60대를 살고 있었으면 참 좋겠다. 그랬으리라는 확신과 함께 삶에서 얻어낸 커다란 동그라미를 세상을 향하여 흘려보내며 살고 있을 것 같은 친구의 모습을 상상하며,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를 흥얼거렸다. 은우가 그려준 도화지 얼굴들을 통해 피어나는 내 어린 시절 친구의 모습으로 행복한 시간을 잠시 누렸다.

동그란 마음의 주인공, 동그라미를 막 배운 예쁜 은우야! 날마다 자라나서 내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지혜의 사람이 되어라! 동그라미 마음으로 보드랍고 예쁘게 자라라! 혼자 가만히 중얼거렸다.

아주 먼 훗날, 예쁜 은우가 성숙해지고, 또 원숙해질 만큼 시간이 지난 후에 편안히 앉아서 자신의 시간을 돌아볼 때, 그 동그란 마음 속에서 내 얼굴도 피어났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언감생심이었다.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욕심은 나를 향해 강하게 말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 예쁜 아이 옆에서 동그란 마음을 보여 줘야 할 책임이 나에게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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