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Spirituality 67

 “십계명 묵상” 일곱 번째 시간인 오늘은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을 함께 묵상합니다. “간음”이라는 말은 남녀가 욕망에 불타서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간음에 있어서 행위를 넘어서는 마음의 문제를 강조하십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7-28). 예수님은 마음에서 다른 사람을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불을 꺼야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잠언 6:27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느냐?” 불을 품고 있는데, 옷이 타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마음에 뜨거운 욕망의 불이 타오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을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단순히 외적으로 드러난 행위를 넘어서 보다 근본적인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마음의 불을 꺼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끌 수 있습니까? 나도 내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는데, 어떻게 내 마음에 일어나는 불을 끄고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까?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늘의 십계명을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참되게 사랑하라”입니다. 우리는 참되게 사랑할 때, 자유와 기쁨을 누립니다. 간음은 참된 사랑 안에 있는 자유를 막는 최대의 적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있는 욕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죄책감을 자극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중요한 것은 간음이 얼마나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가는지를 이해하고 느낄 때 우리는 마음의 욕망을 다스리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의 참된 자유

간음은 두 가지 면에서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 갑니다. 첫째, 간음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막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유를 경험하는데, 간음은 하나님 안에 있는 참된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을 방해합니다. 인간은 때로 잘못된 사랑으로 마음의 공허함을 달래보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과 명예로 삶의 공허함을 달래고, 어떤 사람은 술, 어떤 사람은 이성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생의 허무함을 다루려고 합니다. 오래 전 한국 뉴스에서 남녀가 소주 62병을 마시고 여자가 숨을 거두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 두 사람은 알콜중독 치료과정 중에 만난 사람들인데, 둘이 병원을 나와서 ‘한 번 죽을 때까지 술을 마셔보자’고 하다가 진짜로 생명을 잃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삶의 무기력함과 공허함을 술을 통해 달래고자 하였지만, 이것은 참 부질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공허함은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만 완전하게 채워지는 것입니다.

조현 기자가 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책에는 하나님을 만난 한 수도사의 이야기나 나옵니다. 이 수도사는 오랜 기도 생활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경험합니다. 마치 무한대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직관적으로 경험하는 듯한 신비로운 체험을 합니다. 그런데 이분이 하나님을 만나보니, 하나님이 사랑 자체였음을 발견합니다. 이 수도사의 말을 한 번 들어보십시오. “주님의 동작 하나하나가 사랑이 타는 듯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떤 모습이든지 상관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내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껏 내가 생각했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내가 모든 이론과 관념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사랑의 현존을 체험하면, 하나님이,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줍니다.” 이 마지막 표현이 참 좋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우리 마음의 공허함과 삶의 무의미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어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하나님 안에 들어갈 때에 우리는 그 안에서 경험하는 참된 자유와 평안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고, 끊임없이 잘못된 사랑을 향해 나아갑니다. 마치 그 잘못된 사랑이 하나님 안에서만 경험하는 기쁨과 평안을 줄 것처럼 생각하며 달려나갑니다. 바로 간음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는 부적절한 관계 속에서 사랑과 마음의 위로를 얻으려고 하지만, 이러한 잘못된 사랑은 하나님 안의 진짜 사랑을 가로막을 뿐입니다. 간음이라는 잘못된 사랑은 허상입니다. 간음이라는 허상은 나에게 기쁨과 평안을 줄 것처럼 포장하지만, 이것은 가짜 사랑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우리로 하여금 바닥을 향하여 내려가게 할 뿐입니다. 오늘 십계명의 일곱 번째 계명에서 묵상할 것은 나의 사랑이 어디를 향하여 뻗어가고 있는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을 향하여 뻗어나갈 때에 우리는 인생의 참다운 기쁨과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 누리는 자유

두 번째, 간음은 사람 사이의 자유를 빼앗아갑니다. 간음의 잘못이 행해질 때,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큰 고통을 경험합니다. 간음의 문제가 가정 속에서 일어나면 남편이나 아내, 자식들 중에 누군가가 이 문제로 고통을 경험합니다. 또한  인간관계에서 자유가 사라집니다. 누군가를 욕망의 대상으로 보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서 관계의 자유를 빼앗아 갑니다.

나태주 시인이 쓴 <풀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자세히 보면 그 사람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게 된다는 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렇게 자세히 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안에 욕망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타오르는 욕망의 불을 통해서 보니, 상대방을 자세히 볼 수도 없고,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용의 대상으로 보고, 욕망의 대상으로 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자세히 보시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자세히 보면, 그 사람은 나의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사람은 나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자세히 보니 아름답고, 오래 보니 사랑스러운 사랑의 대상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보라고 초대하는 말씀입니다. 이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엄청난 자유입니다.

제임스 마틴은 『모든 것 안에서 하나님 발견하기』라는 책에서 정결이 주는 유익은 모든 사람을 자유롭게 사랑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일어나는 수많은 욕심과 미움과 욕망은 다른 사람을 자유롭게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서 욕망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없어지면 우리는 주변의 모든 사람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해지고, 이 속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 속에 자유가 찾아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게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경험하는 자유를 누리고, 인간관계에서 누리는 자유를 경험하라고 초대하는 말씀입니다. 잘못된 사랑의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이웃과의 관계를 깨뜨리지 못하도록, 참된 사랑 안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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