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저널
> 오피니언 > 칼럼 | 소망의샘
구유에 누운 아기이사야 9:6-7
허영진 목사  |  revhuh@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11.22  00:19:5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한 어린이가 교회에서 받은 캔디를 잘 보관했습니다. 어머니가 이유를 묻자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아기 예수가 크면 주려구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그 지혜와 키가 자랐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서 굄을 받았습니다. 어른으로 자라 마침내 우리의 주와 구주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사람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지금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 속에 들어와 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성탄절에는 예수님이 아기로 오신 뜻을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어렸을 때 말구유의 아기 예수를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은 겸손하고 순진하고 다정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탄절이 되어도 어릴 때의 그 설렘과 어린이다움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린이다움을 잃어버린 우리를 향해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성탄은 우리가 잃어버린 어린이의 성품을 되찾으라고 하나님이 주시는 절기입니다. 

어린이는 겸손합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 겸손이 지금은 교만으로 바뀌었습니다. 겸손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잘 배웁니다. 어른들은 자기 주장에 사로잡혀 마음의 문을 닫고 삽니다. 그래서 진리를 배우기가 어렵습니다. 현재의 지식에 만족하고 배우는 일을 무시합니다. 그러나 어린이와 같은 겸손으로 마음을 열면 주님은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순진합니다.
어린 시절의 순진함이 지금은 찌든 죄의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이 부패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린 시절의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어린이는 잘 믿습니다.
우리도 어릴 때는 잘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믿지를 않습니다. 누구든지 의심부터 하고 봅니다. 어른이 되면서 호기심과 감탄사가 시들었습니다. 냉소와 궤변으로 가득합니다. 어린이는 상처받는 일이 적기 때문에 상처를 입어도 빨리 낫습니다. 어린이는 비평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유아원에는 무신론자가 없습니다. 

어린이는 오늘을 삽니다.
어린이는 과거에 매여 살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지금만이 중요합니다. “지금”이 하나님의 시간이요, 어린이에게는 지금이 최선의 시간입니다. 

캐나다 북서부 산속에 벌목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 노동자의 부인들이 일터에 찾아와 흥겨운 축하회가 열리고 밴드가 초청되었습니다. 밴드의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한 부인이 안고 있는 아기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늙은 노동자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습니다. “밴드를 멈춰라! 아기 울음소리를 좀 들어야겠다.” 

과학은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했습니다. 가정과 공장에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는 각종 기계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손으로 하던 옛사람들보다 더 기진하고 피곤합니다. 지금은 더 많은 여가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료함과 공허감으로 어느 때보다 지쳐 있습니다.

우리는 우주를 거의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빈곤과 굶주림은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많은 지식을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빈약해졌습니다. 

우리는 미신을 타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까지 손상되어 버렸습니다. 호기심은 시들었고 신비감은 둔화되었습니다. 우리는 거대한 도시들을 축조하고 그 한복판에 처참한 빈민굴과 우범지대를 조성했습니다. 우리는 거의 완벽한 통신수단을 개발해 냈습니다. 그러나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너무 크게 자랐습니까?. 너무 똑똑해졌습니까? 너무 독선적으로 되었습니까? 너무 자부심이 강해졌습니까? 우리는 어른으로 자라면서 더 교활해지고, 더 탐욕스러워지고, 더 인색해지고, 더 소심해진 것입니다.

이 축복의 계절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어린이의 영을 되찾을 수 있도록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어린이의 감수성과 어린이의 밝고 명랑한 영이 우리에게서 되살아나기를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냉소주의와 편견과 두려움을 벗어 버립시다. 피차 가장 좋은 점들을 믿어 줍시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에게 성탄은 하나님께서 첫 번 성탄절에 친히 어린이가 되신 사건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허영진 목사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어? 성경이 읽어지네!”
2
대부분의 교회들이 와이파이 제공
3
미국, 천재지변으로 인한 피해액 2017년 최고
4
탈 진실 시대의 몇 가지 동향
5
사라의 죽음과 땅의 상속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235 N. Elston Ave., Chicago, IL. 60630  |  Tel: (773)777-7779  |  Fax: (773)777-0004  |  청소년보호책임자 : SAMUEL D PARK
Copyright © 2013 The Korean Christian Journal. All rights reserved. mail to kcj@kcj777.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