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살 때 중고등학교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김포공항 근처였다. 육군에 입대해서 30개월 넘게 바가지로 고생한 뒤였다. 국어교사가 긴급히 필요하다기에 제대복을 입은 채 학교로 달려갔다. 그때에는 변두리 신설학교여서 교육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시설도 그렇고, 공항 근처의 들뜬 분위기, 학생들의 정서도 너무 거칠었다. 그들 가슴에 ‘쓰레기 학교’라는 자학이 하수도의 썩은 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지금은 수준 있는 학교가 되었지만, 그때는 삼류도 아닌 사류 오류라고 투덜댔다. 실제로 불우한 가정, 품행이 단정치 못한 학생, 학습 능력 미달들이 꽤 있었다. 

  국어 과목은 전 학년을 가르쳤고 담임은 남녀합반의 고1이었다. 나는 아직 미혼,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노래 그대로였다. 학생들끼리는 사석에서 나를 ‘그 형’ 혹은 ‘그 오빠’라고 불렀다. 그 학생들에게는 지식개발보다도 동기유발과 인간교육이 더 절실했다. 그래서 ‘희망교육’을 핵심으로 선택했다. ‘비전을 영혼 속에 불어넣는 일’이었다. 급훈도 희망, 담임 학급 이름도 희망반, 환경정리 주제도 희망의 창조...... 희망으로 도배를 했다. 

  특히 ‘희망의 나라’(현제명 작사 작곡)를 학급 노래로 정하고 조례 때와 종례 때마다 함께 불렀다.“밤은 지나가고 환한 새벽 온다. 종을 크게 울려라.”가사의 핵심구절이다. 그때 그 반에서 유명한 인물을 키워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수강 학생 모두가 지금은‘단정하게’살아가고 있다. 손주들에게 건강한 희망을 가득가득 채워주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단다.  

   지난해던가‘인천상륙작전’이라는 영화를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 극장에서 관람했다. 인천상륙작전은 예측된 성공률이 5천분의 1밖에 안 되어 상관과 참모 모두가 극구 반대했다.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하지만 맥아더 사령관은 바로 5천분의 1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 작전을 감행했다. 적들이 전혀 예상 못한 곳의 허를 찔렀다. 세계전쟁사에 크게 기록된 승전사례가 되었다.  

  그래서‘예수님의 성공률’을 생각해 보았다. 지금은 예수님의 이름에 해 질 날이 없다. 온 인류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고, 가장 많은 인류에게 희망을 안겨 주신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그분의 성공률을 숫자로 표현하면 과연 얼마나 될까. 계산능력이 없어 잘 모른다. 확실한 것은 5천분의 1보다도 훨씬, 훨씬 낮다는 사실뿐이다. 그분은 스스로도 ‘조그만 겨자씨 한 알’이라고 하셨다 (요 12:24). 그 겨자씨 한 알이 온 인류에게 영원한 희망이 되셨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은 그만큼 죽음에 더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최악의 절망인 죽음 말이다. 하지만 구원받은 우리는 영원한 희망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그래서 또 한 번 목이 터져라 외친다.    “독자 여러분, 새해에도 희망열차 타고 또 한 번 씽씽 달려가요. 영원한 희망의 깃발 예수님과 함께요......”  

(대표저서: 목회자의 최고 표준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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