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치버와 함께 20세기 후반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는 1938년 오리건 주 클래츠케이니에서 태어났다. 심한 가난 속에서 글을 써나갔는데, 처음에는 이렇타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가, 1983년 소설집 『대성당』이 출간되면서 전미 도서상 후보와 퓰리처 상 후보에 올랐다. 대표  작품으로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대성당』 등을 들 수 있는데,  그의 작품은 20여 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50세에 워싱턴 주에서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란 작품은 분량이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그의 미니멀리즘 문체의 특성, 인본주의적 따뜻함, 리얼리즘 관점으로 미국 중류층의 삶을 조명하고 있어서 그의 작품의 특성을 잘 엿볼 수 있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엄마인 앤은 아들 스코티의 생일 파티를 위해 케이크를 주문했다. 빵집 주인이 워낙 무뚝뚝해 보여, 앤은 주문에 필요한 정보만 알려 주고 가게를 나왔다. 그런데 막상 스코티의 생일에 스코티는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엄마와 아빠는 병원에서 며칠을 간호하다가 서로 번갈아가며 집에 들렀는데 먼저 아빠 하워드가 집에 들어갔을 때 이상한 전화를 받게 된다. 수화기 너머에서 어떤 남자가 케이크를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하워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병원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미친 자식이 전화를 하거든 바로 끊어 버리라고 일러 주었다.

다음 날 아이는 심하게 앓다가 죽었다. 부부가 집에 돌아왔을 때, 이번에는 앤이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저편 남자가 스코티 일을 잊어버렸느냐고 묻자, 앤은 "이 악마 같은 자식!"이라고 소리치고는 잠시 후 그 남자가 누구인지를 기억해냈다.

부부는 “그 개 같은 빵집 주인”을 만나러 빵집을 향해 차를 몰고 갔다. 늦은 시간이어서 이미 문은 닫혀 있었지만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어 그들은 뒤로 가서 앞치마를 두른 주인을 만났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주인은 이제 사흘이 지나 팔 수 없게 되었으니 그냥 케이크를 가져가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경멸하듯 말했다. 그때 앤이 말했다. "우리 아들이 죽었어. 차에 치여 죽었다고.”

그러자 빵집 주인은 손에 들고 있던 밀방망이를 내려놓고 그들을 의자에 앉히고 갓 구운 롤빵을 내밀었다. "이럴 땐 먹는 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거든요.” 라고 하면서.

나는 이 작품을 좋아한다. 타인의 고통과 나와의 거리를 이렇게 잘 표현한 소설이 있을까 싶어서. 그리고 간격을 좁히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준 것 같기도 해서.

어렸을 때 나는 한 가난한 친구네 집을 다녀온 적이 있다. 1967년,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담임 선생님이 결근을 하셔서 아이들끼리 자습을 했다. 목덜미에 면도질을 한 맨드라미 머리의 숙이 책이 눈에 익었다. 평소에는 책이 없어서 다른 사람의 책을 빌려 보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그냥 귀로만 수업을 듣던 아이였다. 겉장 구석에 내가 진달래꽃 그림을 그려 놓은 게 눈에 띄었다. 잃어버린 내 책이라고 확신하며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이거 네 책 맞나?”
숙이가 대답했다.
"내 책 맞다.”
그 아이는 손으로 책을 꼭 붙든 채 말했다.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아이들이 말했다.
“이거 정이 책 맞다! 정이가 그린 그림, 여기 있다!”
숙이는 화가 난 듯, 말했다. 
“안 훔쳤다. 이건 우리 아버지가 사 준 거다.”

다음 시간에 아이들은 임시 학급 회의를 열었고 부모님께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회의 결과에 따라, 방과 후 반장 아이와 나는 숙이를 따라 그 아이 집에 갔다. 숙이네 집은 논둑 밭둑 지나 한참을 더 걸어가야 했다. 초가지붕의 한쪽 끝은 곧 아래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숙이가 방문을 열자 수건으로 이마를 동인 숙이 엄마가 누워 계시다가 일어나 앉으셨다.

“어서 와라. 배 고프재?” 숙이가 말했다. “배 안 고파요. 학교에서 친구들이 도시락 나눠 줘서 많이 먹었어요.” 무슨 소리인가 했다. 그 애는 집에서 아침을 너무 많이 먹고 와서 도시락이 필요 없어 안 가지고 온다고 학교에선 그렇게 말하곤 했는데... 엄마가 반장 아이와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 숙이가 친구를 데리고 집에 온 건 첨인데 이를 오짜노? 대접할 게 하나도 없네. 내가 아프고 애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셔서 우리 사는 게 이렇다.”

반장아이와 나는 마치 어머니의 병문안을 하러 온 듯 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반장아이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친구의 얼굴도 그 집의 정확한 위치도 지금은 기억할 수 없지만, 그때 그 친구 집이 참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보았던 친구의 집 중에 가장 멀리 있었던 그 친구의 집.

이따금 타인의 고통과 나 사이에 간극이 느껴질 때, 서로의 울음이 서로에게 가닿지 못할 때, 왜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제재소나 서점, 병원 청소부 일을 하면서 가난 속에서 허덕였던 카버도 그런 유사한 경험이 있었던 것일까? 문득 눈물을 닦아 주는 건 거리를 좁힌 따뜻한 말 한 마디, 갓 구운 빵 한 조각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란 소설은 문학동네에서 김우열 번역으로 펴낸 『풋내기들』이란 소설집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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