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에스메 브라운은 뉴욕에서 엘에리로 옮겨간 유명한 사교계 인사이다. 피터 캐리 피터슨은 맨하탄에 사는 부자 청소년으로 쇼에 출연한 적이 있다. 이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구였다. 1월 14일 둘은 결혼했다. 트럼프의 대통령의 딸 티파니가 신랑신부의 플라워 걸인 바람에 둘의 결혼은 각 언론의 헤드라인으로 다루어졌다.

보도에 따르면, 티파니 트럼프의 친구들은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결혼을 했다. 신부 에스메는 자신의 결혼을 ‘비전통적’이라 불렀으며, “피터와 나는 낭만적인 사랑에 빠져 있지 않다. 실제로 둘 다 다른 사람들과 데이트를 하고 있다. 우리는 온갖 형태의 사랑을 찾아볼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면 할수록 거기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가장 친한 우리는 진화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한 테라피스트는 “익숙해진 이유 때문에 결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둘 다 괜찮다면 다 좋은 것이다.”라고 그들의 결정을 지지했다. 또 다른 심리학자는 "이런 종류의 수많은 결혼들은 점점 고립되어가는 사회에 대한 대응이며 사람들은 일종의 가족 모델을 창조하길 원한다.“라고 설명했다.

결혼에 대한 브라운의 설명은 우리 시대의 만트라이다. “우리는 한 번 산다. 고로 자유로워져라.”

하나님은 조건 없는 사랑을 토대로 세워진 남녀 간의 서약으로 결혼을 창조하셨다(창 2:18-24; 엡 5:21-33).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서로에게 주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최근 우리 문화의 결혼 정의는 분명 하나님의 계획과는 동떨어져 있다.

로우 대 웨이드 재판이 있기 전까지 태아는 법으로 보호되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인들은 해마다 65만여 건의 낙태를 한다. 자연사하는 순간까지 우리는 생명의 신성함을 중시했는데, 지금 미국인의 73%는 안락사의 합법화를 지지한다. 이는 1951년보다 두 배나 늘어난 수치다.

그렇다고 모든 소식들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크리스천들은 의미 있는 방식으로 여전히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타겟의 탈의실 정책은 도덕적 이슈를 반영시킨 크리스천의 힘을 보여 준다. 칙 필레이와 하비 라비의 인기는 우리의 문화 속에서도 기업들이 기독교적 가치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전진해야 한다. 느헤미야 4장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모습이 나온다. 국군이나 경찰이 없던 그 시대에 도시의 성벽은 안보에 필수적이었다. 그러한 성벽이 없으면 예루살렘 인구는 다시 늘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적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 결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다”(16절). 뿐만 아니라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다”(17절).

한 손으로는 일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병기를 잡고 재건하는 일은 지금의 문화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최악에 대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18일에는 호주 해변에서 드론이 구조 장비를 떨어뜨려 십대 청소년 두 명을 구조했다. 과학자들은 8가지 암의 징후를 알 수 있는 혈액 검사를 개발했다. 그러나 드론도 혈액 검사도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한 손으로 일하고 한 손으로 병기를 잡은 모습은 우리 문화의 영적 성벽 재건에 들어맞는 모습이다. 우리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데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한다(마 22:39). 우리는 또한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울”(유 3)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 건설 과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라. 헨리 나우웬은 『영혼의 양식』에서 “우리는 주어진 소명을 감당할 만큼 충분히 선하다.”라고 말했으며, 드와이트 무디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 말에 동의하는가?(짐 데니슨 박사의 1월 19일 칼럼 발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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