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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보는 분별의 흑역사 2
박준형 칼럼니스트  |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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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5  07: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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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무분별의 역사는 인간의 탄생 역사와 동일하다

태초에 하나님의 천지 창조 여섯째 날에,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이끌어갈 사람을 지으실 때만 해도 인간들에게 분별력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손수 창조하신 세계 안에서 주어진 최소한의 의무만 다하면 그야말로 파라다이스였다. 아침에 출근해서 출근계를 찍을 필요도 없고, 퇴근 후 집 근처 공원을 배회할 이유도 없었다. 교회의 딱딱한 의자에서 사도신경을 외울 의무도 없었고,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찾아오는 대심방 준비하느라 바쁠 이유도 없었다. 아이 대학교 입시 문제로 온 집안이 긴장할 필요도 없었고, 시부모 눈치 보느라 여름 휴가여행을 포기할 이유도 없었다.

그곳에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아담과 하와만 있으면 되었다. 나머지는 모두 다 그들을 위해 존재했다. 먹고 마시고 자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문제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단 한 가지 의무에서 시작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창 3:5). 하나님은 보기에 좋은 모든 것을 인간에게 주셨다. 단 이것만은 예외였다. “선과 악을 알면 안 된다. 선악을 알면 반드시 죽는다”(창 2:17). 그로부터 성경적인 나이로 일만 년이 지난 후, 현대 세계에 사는 우리들이 여전히 분별하지 못하고 헤매며 사는 것은, 우리들의 먼 조상 둘이 만든 죄의 결과이다: “따먹지 말라는 것을 따먹은 것.”

아담과 하와가 선과 악을 아는 나무를 따먹었으니, 뱀 선생이 유혹했던 것처럼, 눈이 밝아지고 선악을 아는 분별력이 만들어져야 했는데(아마 선악만 알아도 우리 인생이 이처럼 뒤죽박죽이 되지는 않았을 거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뱀은 거짓말쟁이였다. 선악을 아는 대신 수치심만 생겼다.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알기는커녕, 알몸인 자신들을 보게 되고 창피해 무화과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다(창 3:7). 뱀이 결코 옳을 일도 없고 그의 행사가 완전히 성공할 수도 없다. 뱀은 늘 꼬리를 남기게 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다고 한 이 두 사람을 말씀대로라면 ‘반드시 죽여야 하지만’(창 2:17)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아담은 무려 930세까지 장수했고 자녀들을 낳았다(창 5:4-5). 어찌 이럴 수가? 하지만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배반으로 인간의 분별력은 혼미해졌고, 인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호의는 사라졌다. 이제 인간은 무엇이 창피한 줄 알고, 무엇이 수고인줄 알고, 무엇이 임신과 출산의 고통인 줄 알고, 무엇이 저주인 줄 알고, 무엇이 죽는 것인지를, 무엇보다 하나님의 파라다이스에 있었으면 몰라도 됐을 선과 악의 기준을 수많은 고난과 시험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시작이 좋으면 끝이 좋다는 속담도 있지만, 인간의 역사는 좋지 않은 시작으로 인해 두고두고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이제 세상은 더욱 혼탁해지고, 인간의 분별 여정은 더욱 험난해진다. 아니나 다를까 형제간의 살육이 시작된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다(창 4장).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다:“노아의 홍수 그리고 구원.” 그리고 얼마 안 가 인간들은 자신의 이름을 날릴 목적으로 거대한 탑을 짓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이유와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인간들은 역시 하나님같이 되고 싶어했다(창 11:1). 이제 하나님은 인간들의 말을 섞어 서로 못 알아듣게 하신 후 흩으셨다.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접 말씀하시는 하나님 vs. 인간의 분별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홍수처럼 넘치기 전까지, 그들의 지도자들이 직접 나서기 전까지, 그들이 원해서든 아니든, 창세기에서 만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에 이르기까지 마치 자식을 직접 낳아 기르는 부모의 심정으로, 때론 절친한 친구처럼 가까이서 보호하시고, 필요할 때면 나타나 위로하시고, 인도하시고, 때론 대신해 싸우시고, 가끔 후회도 하시지만, 이들과 함께 당신의 창조 역사를 세워가신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8~10).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들이 본질적으로 하나님만 잘 따르고 믿음이 좋아서 하나님이 그 보상으로 잘해 주신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든, 하나님은 스스로 창조하시고 으뜸이라 생각하신 창조물들에 대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창 9:1) 하도록 복을 주시겠다는 스스로의 언약을 지키신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스스로 세운 언약을 지키는 그런 분 아니신가? 그러니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의 직계 후손들은 여전히 실수투성이였고, 분별력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도리어 악해졌다는 게 맞을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은 아내를 누이라 속여 자신의 목숨을 구 했고(아브라함은 두 번이나 그랬고, 그의 아들 이삭은 한 번 그랬다. 아브라함은 아내인 사라와 종 하갈과 삼각관계에 빠지기도 했다), 가족이 피해를 입자 군사를 동원해 집단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아브라함의 증손자인 야곱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는 속임수를 써서 세겜 성의 모든 사람들을 칼로 쳐 죽였다, 창 34장). 어디 이뿐인가? 아브라함의 종에게 환대를 베풀어 이삭의 아내가 된 지혜로운 리브가는 야곱과 합작해 에서의 장자권을 뺏앗아 가족간의 불화를 조장했고, 천사를 알아보고 환대해 소돔에서 재앙을 면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딸과 근친상간을 했고(창 19장), 야곱의 아들 중 요셉은 형들의 허물을 일러바치곤 했으며(창 37:2), 세겜의 살육에 가담하지 않았고,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 할 때 그들을 설득해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 상인들에게 넘기도록 한 유다조차 자신의 큰아들에게 이방여인과의 결혼을 허락하는 죄를 지었고, 본인 스스로도 며느리 다말과 근친상간을 했다(창 38장). 이런 유다가 나중에 애굽의 재상 요셉에게 잡힌 바 되자, 슬퍼할 아버지를 위해 동생 베냐민 대신 종이 되겠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했다(창 44:33). 이런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는 요셉의 눈물과 화해로 이어진다(창 45장).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직속 후손인 이들에게 직접 계시하셨고 직접 만나셨다. 이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은 늘 그들의 편이었고, 직접 인간들의 문제를 풀어 주셨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경외와 순종이었지, 일의 경중과 사안에 따라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분별한다는 것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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