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계속 남쪽으로 내려와 샌프란시스코의 여러 교회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했으며 여러 가지 문제들로 번민하는 성도들을 만나서 상담 사역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상담학을 공부하지 않았지만, 복음 안에서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모든 인생의 문제들은 예기치 않은 사고와 병고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용서와 사랑의 부재에서 오는 것들이었습니다.

십자가의 피 묻은 복음을 만난 자는 누구든지 용서할 수 있고 또 사랑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피 묻은 복음을 경험하지 못했거나 지식으로만 아는 많은 크리스천들은 사랑과 용서의 능력이 없기 때문에, 개인과 가정의 문제로 큰 슬픔에 빠져 고통을 겪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에게 진솔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을 때, 회개가 터지고 성령님의 강한 역사가 나타나 주님께서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유명하다는 샌프란시스코도 구경하지 못하고 또 다시 달려서 LA로 급히 내려가야 했습니다. 지난번 시애틀에서 사역할 때 LA에 사는 5살짜리 큰 손녀딸이 전화를 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언제 오시느냐고 해서 3주 있으면 간다고 했더니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와 사탕을 많이 사서 오시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계속되는 집회 일정으로 지연되어 가지 못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역하고 있는데 또 전화로 왜 아직도 오시지 않느냐고 할 때 엉겁결에 거짓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예쁜 손녀딸이 무엇을 사 오라고 했는데 잊어버려서 아직 못 가고 있어” 했더니, “할아버지 할머니, 나는 과자 사탕 필요 없어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고 싶어요. 빨리 그냥 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손녀딸의 전화를 받고 눈물이 났습니다. 한창 재롱 피우며 예쁘고 귀엽게 자라고 있는 두 손녀딸을 보지 못한 지가 일 년 6개월이 넘었습니다. 우리도 손녀들의 재롱을 보며 편하게 살 수도 있으련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인 복음 전파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

손녀의 전화를 받은 후 보고 싶은 마음이 급해져서 달려온 우리에게 그사이 많이 자란 두 손녀딸이 안긴 채 떨어지지를 않았습니다. 또 다시 금방 떠날까 봐 그러는 것 같았습니다. 자식들에게 느끼는 사랑도 크지만, 손녀들을 향한 사랑은 마음을 파고들며 더 애틋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녁 늦게까지 자지 않는 손녀딸들을 재우고 우리는 집밖에 세워둔 RV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아들 며느리가 만류하는데도 밖에서 자야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지냈던 생활이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항상 편하고 좋은 것을 찾고 더울 때는 시원한 것 추울 때는 따뜻한 것을 원합니다. 일 년 반 동안 길에서 살면서 길들여진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RV에서 사는 것이 혹시나 싫어질까 봐 그런 것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디모데후서 1:8).

이 사역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해도, 마음이 흔들리고 연약해질 수 있는 우리들의 속성을 주안에서 이미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5:24).

율법적인 이유가 아닌 우리의 마음이 연약하기에 약한 육체를 쳐서 성령님께 복종시키려는 의도였습니다. 또한,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 때문에 복음 전하는 일을 미루거나 나중에 하겠다는 핑계를 댈 수는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언제나 현재이어야 합니다. 내일로 미루면 한 생명이 구원받지 못할 안타까운 일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LA 몇 교회에서 초청해 주셔서 집회 일정으로 또 다시 분주하게 되었습니다. 큰아들이 EM 전도사로 있는 교회에서 간증한다는 것이 부담되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수요일 저녁에 했습니다. 참으로 많은 성도가 참석하였고 은혜 가운데 눈물을 흘리는 성도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안일한 삶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삶을 드려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에 많은 도전과 감동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간증이 끝난 후 우리의 사역을 위해 돕는 헌금을 하자고 목사님이 갑자기 말씀하셨습니다. 갑자기 헌금을 하였는데도 그날 헌금 액수가 $5,000 넘었다고 목사님이 선교비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교회에서 주시는 사례비를 받지 않기로 했기에 어디서든지 주시면 감사헌금 또는 건축헌금으로 다 드렸습니다.

정말 돈이 떨어져서 없을 때는 사례비를 받았지만, 간증을 듣고 은혜받은 성도님들이 기도 가운데 사역에 동참하고 싶다고 주시는 사랑의 물질을 감사하게 받아서 그동안의 사역비로 사용했습니다. 최소한의 돈만으로도 우리는 만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여러 모양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심을 경험했기에 이번에도 우리는 그 돈을 그 교회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우리에게 온 물질을 쓰지 않고 하나님께 드린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아낌없이 겸손한 마음으로 바치니 마음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물질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변질되거나 유혹받고 싶지 않아서 하늘의 만나와 메추라기로만 살기로 우리는 결심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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