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열전(14)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아브라함과 사라의 시대가 지나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본문은 자연스럽게 이전 세대인 아브라함과 사라의 죽음 이야기(창 23장과 25장)의 한가운데 새로운 세대인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이야기를 둠으로 새시대를 향한 독자들의 기대를 높인다. 이삭의 결혼 이야기는 아브라함과 종 사이의 대화로 시작되지만, 종과 이삭의 만남으로 마무리된다.

아브라함이 매우 늙자, 아들 이삭의 배필을 찾기 위해 자신이 믿는 늙은 종을 밧단아람으로 보낸다. 아브라함의 요청은 단순하다. 친족 가운데서 배필을 찾아 가나안 땅으로 데려오라는 것이다. 이 때 종은 만일 찾은 여인이 따라오지 않으려고 할 때, 이삭이 가서 살아도 되는지 질문한다. 이 질문은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의 중요한 가치관을 드러낸다. 그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구성되어 있다.

6절  내 아들을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 
7절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8절 내 아들을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

실질적으로 아브라함과 늙은 종의 대화는 성경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마지막 목소리인데, 하나님이 주신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이 잘 나타난다. 이는 아브라함 자신이 가나안 땅에 처음 들어왔던 그때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약속의 말씀을 다시 되새기는 것이다(창 12:7). 야곱과 요셉의 마지막 유언에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창 48:29-33; 50:24-26).

하나님의 이끄심을 받은 종은 밧단아람에 도착한다. 약 한 달 정도 걸리는 아주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 여정에 대해 침묵하고 오히려 우물가에서 있었던 일에만 집중한다. 주요 등장인물인 리브가를 자세히 소개하기 위함이다. 족장 이삭의 아내를 우물가에서 만나는 이야기는 대표적인 전형 장면(type-scene)이다. 미래의 아내를 얻는 사람이 외국으로 가서 우물가에서 그 상대를 만나고, 어려움을 극복한다. 자신의 신분을 말하자 신부는 즉각 달려가서 가족에게 알리고 그 가족으로 인도하여 결혼에 이른다. 일단 24장은 처음 나타나는 전형 장면이고 가장 길게 언급되기에 24장 자체에만 집중해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이후에 나타나는 유사 이야기들(창 29장과 출 2장)은 앞의 장면들과 비교하며 내용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여기서 크게 다섯 가지의 전형적인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창 24:10-33; 29:1-14; 출 2:15-21). 아래의 전형적인 장면들이 다른 문맥에서는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주목함으로, 전형 장면을 통해 각각의 본문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연속성과 캐릭터의 성격의 발전에 주목함으로, 전체가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신랑은 신부를 구하기 위해 외국으로 여행한다
신랑은 젊은 아가씨를 우물가에서 만난다
물을 긷는다
여자는 집으로 달려가 소식을 전한다
음식을 대접하고 결혼을 준비한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그는 일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조건을 걸고 그 상황이 일어나면 하나님의 뜻으로 알겠노라고 한다. 그는 우물에 물을 길러 오는 아가씨에게 물을 구하고, 그녀가 자신에게뿐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먹이면 주님의 뜻인 줄 알겠다는 기도를 드린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자 마자 한 아가씨가 등장한다. 그녀는 아주 아름답고 게다가 처녀이다(그녀의 가족관계가 드러나 있지만, 이는 나레이터가 독자에게 주는 정보이지 늙은 종이 아는 정보가 아니다). 놀랍게도 이 아가씨는 노인의 부탁과 기대보다 더 앞서서 행동한다. 그녀는 늙은 종에게 물을 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낙타들에게도 “배불리” 먹인다. 낙타가 먼 거리를 여행한 것이라 가정할 때 낙타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물의 양은 약 90~100리터 정도 된다. 낙타가 무려 10마리이니 이 여인은 900~1,000리터에 해당되는 물을 길어야 한다. 물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의 크기와 물을 머리에 이고 가는 항아리의 크기를 고려할 때, 그리고 당시 고대 근동의 우물 형태를 생각할 때(16절), 이 젊은 아가씨는 거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노인과 낙타에게 친절을 베푼 것이다. 종은 묵묵히 아가씨가 하는 모든 일들을 지켜보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사람인지 확인하고자 했다.

한편, 막막한 상황에서 이런 기도가 이해되기는 하지만, 현대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식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이미 드러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에 있어야 한다. 본문은 종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 신속하게 응답하신다고 알려줌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종이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결혼 적령기에 이른 리브가가 우물가에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는 아브라함의 친족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여기서 다음으로 이어질 이삭 톨레도트(창 25:19-35:29)에서 등장할 주요한 인물인 리브가와 그의 오빠 라반이 소개된다. 두 사람의 등장에서 우리는 이후 이야기에서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 짐작할 수 있다. 라반은 첫 등장부터 탐욕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전달한다. 리브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달려가서 종을 영접할 때, 집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라반은 가장 먼저 종이 가져온 재물과 낙타 등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이런 모습은 후일 조카 야곱과의 관계에서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이런 탐욕이 오히려 라반을 곤경에 빠뜨리는 이유가 될 것이다.

리브가는 대단히 주도적인 인물이면서도 인품을 잘 갖춘 인물로 나타난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삭이 아닌 리브가에게 먼저 말씀하시고, 이삭의 축복 장면에서도 야곱이 복을 받는데 대단히 신속하게 결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런 리브가의 성격이 24장에서 잘 드러난다. 그녀는 종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약대에게 물을 먹이고, 종과 약대를 집으로 초대한다. 우물가로부터 집으로 이어지는 리브가의 헌신적인 환대는 창 18장에서 아브라함이 천사를 환대했던 모습을 기억나게 한다. 리브가의 믿음과 결단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대목은 마지막 장면이다. 종은 모든 것을 설명한 그 밤이 지나자 아침 일찍 서둘러 리브가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려 했다(54절). 어쩌면 영원히 보지 못할 수 있는 부모님과 가족들을 남겨두고, 단 한 차례도 본 적 없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신속히 떠난다는 것은 가족 모두에게 너무 아쉬운 일이었다. 그래서 리브가의 어머니와 오빠는 당시 전통적인 결혼 양식을 따라 더 오래 머물기를 원했으나, 리브가는 바로 다음 날 아침 종을 따라 자신의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겠다고 결단했다. 리브가 이야기는 그녀가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의 결단을 공유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약속을 믿고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믿음의 여걸 리브가에게 주어진 가족들의 축복은 명백하게 창 22:17-18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최종적으로 주신 그 약속을 반영한다(60절).

아브라함의 종은 이제 돌아와 이삭을 “내 주인”이라 칭한다. 아브라함은 더 이상 무대에 등장하지 않고, 그들을 대신할 이삭과 리브가만이 언급된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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