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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복음 전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 별세'그래함 목사, 평생 400회 집회와 방송을 통해 185개국의 2억 넘는 이들에게 복음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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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2  01: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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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르 그래함 목사(사진 출처 : 빌리그래함전도협회)

2월 21일, 20세기의 유명한 복음주의 설교자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목사가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럿의 자택에서 오전 7시 46분 별세했다고 빌리그래함전도협회의 마크 데모스 대변인이 발표했다.. 그의 나이 99세였다.

아들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아버지는 내게 ‘천국이 어디냐?’며, ‘예수님 계신 곳이 천국이다. 나도 곧 그곳으로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아침 아버지는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살게 되셨다. 나를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아버지를 그리워할 것이지만, 아버지는 주님의 품 안에서 어머니와 재회하고 영원히 평안을 누리실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빌리 그래함 재단 뉴스에 따르면, 빌리 그래함 목사는 평생 400회의 부흥회, 동시 방송, 복음 집회를 통해 185개국 2억1천5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또한 TV, 동영상, 인터넷과 34권의 저서를 통해 복음을 전했다. 한국어로는 『내 소망은 구원입니다』, 『새로운 도전』, 『인생』, 『사랑하라 늦기 전에』, 『마지막 설교』 등이 나와 있다.

19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 출생한 그는 대공황 기에 성장하면서 근면성을 몸에 익혀 수십 년 간 지치지 않고 전 세계에 복음을 전했다.

“나는 딱 한 가지 메시지를 전할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으며, 다시 부활하셨고 우리에게 죄를 회개하고 당신을 구세주로 영접할 것을 명하셨고, 그렇게 하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이 바로 그 메시지”라고 그래함 목사는 2005년 6월, 뉴욕의 플러싱 메도우즈 코로나 파크에서 열린 마지막 부흥회에서 말했다.

그래함 목사 전도의 우선순위는 전 세계에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지만 한편으로 그는 여러 대통령들에게 영적인 자문을 했으며, 인종차별 폐지를 위해 싸웠고, 시련의 시기에 희망을 주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직후에는 워싱턴 국립 성당에서 미국과 전 세계에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1983년과 1986년, 2000년에는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국제 컨퍼런스에서 208개국에서 참가한 2만3천 명의 복음주의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하는 법을 가르쳤다.

2013년 95회 생일에 미국과 캐나다 480개 TV 방송을 통해 그래함 목사는 마지막 메시지를 전했다. 26,000개 교회들이 ‘나의 희망’ 프로젝트에 참가함으로써, 빌리그래함전도협회(BGEA)를 북미에서 가장 큰 규모의 복음 전도 기관으로 성장시켰다.

샬럿의 농장에서 성장한 그는 어렸을 적에는 종교보다 야구를 더 좋아했다. 그러나 1934년 복음 전도자 모르디카이 파울러 햄의 집회에 참가한 15살의 빌리 그래함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신했다. 이 사실에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친구에게 설득 당해 집회에 갔는데, 하나님의 영이 밤마다 내게 말씀을 하셨다. 어느 날 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초대를 받았을 때 ‘주님 내가 갑니다’라고 말했고, 새로운 방향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해 뒤 그래함의 새로운 방향은 그를 플로리다 성서 학교(현재 플로리다 트리니티 칼리지)와 시카고 인근의 휘튼 칼리지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아내 루스를 만나 1943년 결혼했으며, 다섯 자녀를 두었다. 아내 루스가 2007년 운명하기까지 64년 간 부부는 해로했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1947년 첫 부흥회를 개최했고, 1949년 로스 엔젤리스 집회가 전국의 주목을 받으면서 3주 일정의 천막 집회는 8주로 연장되었으며, 당시 수십만 명의 남녀노소 주민들이 메시지를 들으러 왔다.

2000년 빌리 그래함 전도 협회가 창립되었고, 현재 그의 아들 프랭클린 그래함이 이끌고 있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하나님께 국경이나 국적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믿었다. 그는 에티오피아의 아디스 아바바, 러시아의 자고르스크, 뉴질랜드의 웰링턴에서 워싱턴 전국 성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곳에서 설교했다. 1973년 대한민국 여의도 부흥회에는 부흥회 사상 가장 많은 1백만여 명의 한국인들이 운집했다.

1972년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 집회에서 그래함 목사는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속해 있다. 그분은 전 세계에 속해 있다. 나는 증오에 기반을 둔 그 어떤 교리도 거부한다. 기독교는 백인의 종교도 아니며 그 누구도 흑백을 논하게 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래함 목사는 인종과 신념이나 배경 불문하고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사역 초기 인종차별 폐지 운동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부터 그는 인종차별을 반대했다. 미 연방 대법원이 인종 차별을 법으로 금지시키기 이전에 이미 그는 인종차별을 폐지한 부흥회를 개최했으며, 20년 간 인종 차별 폐지를 기다리며 남아공에서의 집회 초대를 거절했다. 1977년에는 공산국가였던 헝가리에서 설교했다.

1996년 빌리 그래함 부부는 의회 금메달을 받았다. 갤럽에는 “가장 존경받는 사람 10인” 명단에 61회 올랐다. 이제 그의 묘비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 복음 설교자"로 새겨질 것이다.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몇 번 한 적이 있다. 그때 나의 전 생애가 눈앞에 펼쳐졌다.”면서 2002년 6월 신시내티 부흥회에서 그래함 목사는 “나는 주님께 ‘저는 설교자이며 많은 이들에게 설교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 주님, 저는 죄인이며 여전히 당신의 용서가 필요합니다. 아직도 십자가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주님께 마음의 평화를 구했으며, 주님은 내게 놀라운 평화를 주셨다. 그 평화는 나를 떠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유족으로 자매 한 명과 다섯 자녀, 19명의 손주들이 있다. 장례식은 빌리 그래함 도서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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