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자존심이 없는 여자인가보다고 의심할 때가 있다. 깔끔하게 각과 날을 세워서 콧대 높은 여자가 되고 싶지만, 작은 것 하나에도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곤 한다.

블루베리 스콘 앞에서 그렇다.

블루베리 스콘은 참 부드럽고, 적당히 달콤하다. 버터의 고소한 맛, 소금이 들어 있는지 없는지 느끼지 못할 정도의 알맞은 간이 일품이 아닐 수 없다. 또 조심스럽게 퍼져 나오는 불루베리 향도 꼼짝 못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어떤 다른 종류의 빵이나 다른 과일이 들어 있는 스콘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맛이 있다. 바로 포슬포슬하다가 사르르 녹을 때의 그 맛이다. 블루베리 스콘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면 행복감에 빠져버린다.

그렇게 좋아하는 맛 때문에 피해를 본다. 남편과 다툰 후에 일어나는 일이다. 화난 상태로 말을 했다 하면 목소리가 크고 쉴 틈을 주지 않는 남편은 그때마다 내 자존심을 무참하게 박살낸다. 그런 남편에게 대꾸를 안하는 것이 최고의 보복이다. 속이 상하여 안절부절 못하다가 혼자 결심을 한다. 내 자존심을 위하여 최소한 한 달은 말하지 말자고.

몇 시간 금언하고 있는 나에게 화가 수그러진 남편은 사과를 한다. 상대가 아무리 큰 잘못이 있다 할지라도 화난 상태의 목소리가 크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리 사과를 해도 난 용서할 수 없어서 남편을 피하며 고개를 꼰다.

단단히 삐져서 풀어지기가 쉽지 않음을 느낄 때 사용하는 비장의 무기를 똑똑한 남편은 알고 있다. 바로 “블루베리 스콘 하나 사올게!”라는 말을 듣자마자 표정을 관리하지 못하는 난 입을 비쭉거리다가 웃어버린다. 몇 개월의 ‘말 없음’이 필요했던 자존심은 3불 안팎의 스콘 하나에 단박 녹아버린다.

또 있다. 작년 오월부터 오기 시작한 손님 켄이다. 일주일에 꼭 셔츠 석 장을 가져오며 전 주에 맡긴 석 장을 찾아가는 빈틈없는 사람이다. 올 때마다 심각한 표정으로 다림질이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빠지지 않은 얼룩을 지적한다. 어떤 때에는 쉽게 볼 수 없는 후미진 부분에 살짝 얼룩을 칠해 두고는 빠졌는지 조사하기도 한다. 항상 같은 액수의 요금을 내면서도 의심의 눈으로 잔돈을 세고 또 센다. 그밖에도 그의 무례는 늘 내 심사를 크게 뒤틀어놓는다. 그래서 자존심을 스스로 뭉개며, 만족할 만한 다른 세탁소를 찾아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랬는데도 어김없이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나타나서 숫제 나를 괴롭힌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가는 손님 끌어당길 수 없듯이, 오는 손님 또한 막을 수 없다. 그가 올 때마다 마음 크게 먹고 자존심은 저 바닥에 두어야 했다.

그런데 지난 성탄절 무렵엔 믿기 어려운 일이 있었다. 그날따라 그가 수표를 썼는데 5불을 더 써주었다. 잘못 쓴 줄 알고 써야 할 금액을 다시 말해 주었다. 그는 처음으로 웃으며 나에게 주는 성탄 선물, 커피 값이라고 했다. 세상에, 세탁요금에 얹어 주는 커피 값이라니! 이렇게 무례한 선물은 처음 받아보았다. 바닥에 내려갔던 자존심이 땅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듯했다.

참 이상도 했다. 그가 가고 난 한참 후, 수표를 바라보던 내 가슴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수표 속에서 더해진 5불이 그동안 행했던 무례를 하나 하나 사과한 것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저 밑에서 바짝 날을 세우고 있던 내 자존심이 또 녹아버렸다. 그러고 보니 내 자존심은 창피하게도 오불, 그 이하인 것이다.

돌아보면 어릴 적 자존심은 이렇지 않았다. 어려운 시험 문제, 그 정답이 손만 뻗으면 열 수 있는 수첩에 적혀 있었다. 그러나 점수 5점, 10점으로 자존심을 팔지 않았다. 우열을 가름하는 친구가 옆에서 정답을 썼고, 눈만 돌리면 그 답을 나도 쓸 수 있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내 앞자리를 그 친구한테 빼앗긴다고 해도 자존심만은 단단히 지켰다. 그러던 내가 이 풍진 세상을 살아오면서 더 고귀해지기는 고사하고 고작 오불과 그 이하에 녹아나다니.

생각에 빠졌다. 난 예수님의 보혈로 재창조된 성도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보혈이 나를 살리셨다. 내 속에 모든 것, 자존심까지도 예수님의 보혈로 사신 것이다. 얼마나 값지고 단단한가! 모든 것은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값을 매길 수 없고, 어떤 강한 것으로도 부수거나, 상하게 할 수 없는 귀하고, 단단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오불로 녹아버린 줄로 알았던 내 자존심은 남편의 잔소리나 손님의 무례에 절대로 깨지거나 상하질 앉았던 것이다. 처음부터 박살나지 않았으니 녹아나지도, 회복될 일도 없었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누가 그렇게 가격을 매겼던가! ‘성도들은 예수님짜리’ 라고. 그 말을 맨 먼저 썼던 분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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