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탬파에서 10마일 북쪽 지역에 있는 침례교회에서 집회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서둘러 떠나야 했습니다. 보고 계속 보아도 아름다운 해변가를 생각하면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영혼을 살리는 복음을 위해서는 그 어느 것도 우리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플로리다는 기역자로 생겨서 서에서 동으로 북에서 남으로 가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습니다.

포트 월톤에서 탬파까지 400마일 넘는 길을 달려서 도착하니 너무 피곤하여 힘들었지만, 차를 타고 다니면서 힘들고 피곤하다 하는 것이 오히려 송구스러웠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 더운 지방을 오랜 시간 걷거나 배를 타고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했을 생각을 하니 피곤함이 싹 가셨습니다.

다음날 주일 오전에 키스톤 침례교회에서 집회하고, 260마일을 남쪽으로 내려가서 마이애미의 중앙 침례교회에서 저녁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집회 일정이 잘못된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민 와서 고난 가운데 살면서도 오직 믿음으로 승리하여 복음 전하는 자로 쓰임 받고 있는 것이 간증을 듣는 성도들의 마음에 회개와 도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더 많은 간증을 듣고 싶으니 꼭 다시 오라고 당부하며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반성하고 말씀대로 살겠다는 새로운 결단을 했습니다.

오후 1시 30분이 되어서야 허둥지둥 떠나면서 RV에 무리가 갈까봐 5분 정도 쉬면서 저녁도 못 먹고 달렸는데 7시 40분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먼 길 오는 것을 아시기에 늦을까 걱정이 되셨는지 목사님께서 교회 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옷을 부리나케 갈아입고 성전에 들어서니 뜨거운 찬양이 교회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가리라 /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우리도 은혜로운 찬양에 눈물 범벅이 되어 목청껏 큰소리로 주님께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알아 주는 사람 없어도 주님만 알아 주시면 됩니다. 쓰러질 것같이 힘들어도 주님께서 붙들어 주시기에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 생명 다할 때까지 복음을 위해 살겠습니다. 호흡이 다할 때까지 하겠습니다.

찬양에서부터 성령님의 임재가 느껴졌고 간증 시간에는 모두 울었습니다. 울고 있는 사연은 잘 몰라도 이민 생활의 아픔과 슬픔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간증을 들으면서 같은 아픔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영주권이 없어서 고통당했던 그 시절을 지금 누군가 남모르게 가슴 조이며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소망이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삶을 지켜보시고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형통의 복을 주셨습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예레미야애가 3:33).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원망과 불평 대신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고난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로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빌립보서 2:14-15).

밤이 늦었는데 집에 갈 줄 모르고 친교실에 모여서 은혜를 나누며 자신들의 신앙에 문제가 있었음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고난을 통과한 우리 부부의 삶에 대한 간증을 통해 많은 심령을 위로하시고 치료하시고 또 회개하도록 성령님께서 그때마다 역사하셨습니다.

고난이 네게 유익이라고 하신 말씀대로 지금 우리 가정은 정말 축복받은 가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1982년도 돈 없이 가방 몇 개 들고 미국에 와서, 일가친척도 없이 고아 같았던 우리는 마켓 뒤의 쓰레기통에 버려진 야채와 과일과 변한 고깃덩어리까지 주워 먹으며 살았지만 감사했습니다.

공원과 아파트 단지 쓰레기통을 뒤지며 깡통을 주웠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모든 것을 은혜로 여기며 기쁨과 감사 속에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을 말씀 속에서 찾고 기도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용광로 같은 불 속에서 믿음의 연단을 거치게 하셨습니다. 욥은 고난을 통해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본다고 했습니다(욥기 42:5). 고난은 어린아이 같은 신앙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리를 자라게 하셨고 세워 주셨습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편 119:67).

말씀 안에서 우리의 심령에 생명과 평안이 넘치도록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시편 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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