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시선: 사슴(시편 42편)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1절).

시편기자는 왜 갈급한 자기 영혼의 상태를 사슴의 갈증에 빗대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을 치고, 떠돌아다니고, 사냥하고, 전쟁을 치렀던 유대 산지에 사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귀, 당나귀, 토끼, 참새, 독수리, 곰이나 사자도 갈증을 느낀다. 생명을 지닌 유기체는 모두 물 없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어느 짐승이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하필 사슴이었을까?

곰, 독수리, 사자 같은 육식 동물을 사슴의 자리에 대입해 보자. "하나님이여 사자가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일단 말이 되지 않는다. 육식동물은 다른 짐승의 피와 고기를 취하면서 굶주림과 갈증을 함께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슴은 갈증을 시냇물이 아닌 다른 데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시에서 시편 기자는 생명의 연장을 위해 수분을 공급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호흡하고, 하나님의 의를 먹고 마시는 일, 하나님이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개입해 주시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시편기자에게는 원수를 무찌르거나, 자신에게 가해진 공격을 되받아치고, 타인의 피와 재산, 행복의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옵션은 주어져 있지 않다. 지금 생존본능에 따라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약육강식'이나 '물질만능'의 원칙을 따라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없는 것이 시편기자와 하나님 사이의 언약적 조건이다. 참된 생명의 근원이며 모든 문제의 해결사는 하나님뿐이라는 확신을 저버릴 수 없을 만큼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알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이 답이 아닌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2절)

그런 시편기자도 하나님을 언제 만날 수 있을지는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알고 있고 하나님을 갈망한다. 그렇지만 언제 하나님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지 알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3절)면서, 하나님의 해결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영혼에게 좌절의 십자포화를 퍼붓는다. 실제로 시편기자는 마음이 상했고(4절), 분명히 낙망했다(5절). 내가 왜 착한 일을 하면서 인내해야 했는지, 선한 생각과 결정들에 대한 배신이라는 보응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너의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낙망에도 불구하고, 시편기자는 주변의 비웃는 음성들과 대결하지 않는다. 오히려 낙망을 호흡하고 있는 자신의 영혼, 불안함을 들이마셔 떨고 있는 자신의 내면을 다그쳐 “너는 너의 하나님을 바라라”고 외친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지금 주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거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멸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시편기자는 ‘기억’ 속의 하나님을 호흡하기로 결정한다.

십자가상의 예수님은 이 시편기자와 닮아 있다.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을 올라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시기까지 경험하신 모든 일들이 시편 42편과 43편의 언어에 담겨 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을 쏟아내고 계셨다. 참 인간이셨기에, 다가오는 죽음과 십자가라는 형틀을 벗어버리고 싶은 생존본능, 구원에 대한 온갖 상상이 그분의 뇌리를 스쳤을 거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통을 피하지 않으시고, 좌절과 낙심, 위협과 조소, 단절을 경험하시면서 죽음을 향해 나아가셨다.

자신을 조롱하는 이들을 변호하시고, 사랑하는 제자들로부터 버림받으신 주님은 그렇게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영원적 기억과 시간적 기억이 뒤엉킨 채, 생명과 사망이 입 맞추는 그 순간,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으며,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와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사망의 영역으로 들어가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났기에 생겨난 목마름의 자리에 스스로 서시고, 그 목마름을 해갈하도록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다. 참 인간이시기에 고통과 사망을 경험하셨고, 참 하나님이시기에 그의 죽으심과 보혈을 흘리심으로 인간의 죄를 대속하셨다. 성부, 성자, 성령은 영원히 하나이지만, 성자는 단절을 경험하셨다. 사탄이 파괴한 세상을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질서. 그 파괴의 질서에 대해 십자가상의 예수님은 항변하지 않으셨고 저항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질서의 거짓을 보여 주셨고,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 나라의 의로움을 드러내셨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