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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마틴 루터 킹 Jr. 목사 서거 50주년워싱턴과 멤피스를 비롯한 미국 전 지역에서 추모 연설과 행진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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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5  01: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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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은 50년 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암살당한 날이다. 이날 멤피스와 워싱턴을 비롯해 미국 전 지역에서 킹 목사를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렸다. 멤피스에서는 “나는 사람이다”라는 피켓을 든 주민들이 암살 장소 부근에 모였다. 이 피켓은 1968년 환경미화원들의 시위를 재연한 것이다.

워싱턴 D.C.에서는 새벽부터 킹 목사의 서거를 추모하며 수백 명이 침묵의 행진을 하였으며, 행진 참가자들은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연합감리교",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가톨릭", "정의를 행하라 자비를 사랑하라 담대하게 행진하라", "인종 차별은 죄이다" 등의 문구가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고 CNN이 보도했다.

내셔널 몰에서도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크리스천 리더들의 집회가 열렸다. 진보적인 크리스천 그룹 소저너스의 창립자인 짐 월리스 목사는 ”백인의 인종차별, 백인우월주의, 백인특권주의를 죄라고 고백하지 않는 한, 자신을 백인 크리스천이라 말하는 이들은 결코 자유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인종 차별은 개인이 ”미안해“라고 말하는 차원을 넘어선 것이라며 구조적인 죄에 맞서 행동할 것을 촉구했다.

뉴욕 타임즈는 "50년 후, 킹 목사와 아직도 진행 중인 전투들을 기억하며"라는 제목의 특집에서 킹 목사 관련 기사들을 모두 다루었다.

문화사역자 짐 데니슨 목사는 ‘"루터 킹 주니어의 용기"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암살당하던 날의 킹 목사를 회고했다. 다음의 글은 칼럼 일부를 발췌 번역한 것이다.

킹 목사가 암살당한 로레인 모텔

'50년 , 4월 4일 오후 6시 1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치명적인 총상을 입었으며 7시 1분에 그의 죽음이 발표되었다. 『구원: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마지막 31시간』은 킹 목사의 비극적인 죽음을 야기한 사건들에 대해 저널리스트 조셉 로젠블룸이 서술한 책이다. 로젠블룸은 인권 운동 지도자가 왜 멤피스에 있었는가를 설명하고, 그의 독보적인 용기와 헌신에 존경을 표한다.

1968년, 킹 목사는 워싱턴 D.C.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캠페인"이라 부른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전국에서 모든 인종의 가난한 사람들 수천 명을 집결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미국의 수도에서 입법자들이 빈곤 근절을 위한 개혁을 실천할 때까지 시위를 할 예정이었다.

이 와중에 그는 멤피스에서 몇 주 동안 벌어진 환경미화원들의 시위를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킹 목사는 시위자들과 가족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멤피스로 향했다.

물론 킹 목사는 도망친 중범죄자 제임스 얼 레이가 그를 살해하려고 뒤쫓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군대에서 불명예제대를 한 레이는 이후 감옥에서도 도망쳤으며 킹 목사를 쫓아 멤피스로 왔다. TV와 신문을 통해 킹 목사가 로레인 모텔 306호에 묵고 있다는 정보를 얻은 그는 길 건너편에 있는 낡은 건물의 방 하나를 빌렸다.

킹 목사와 일행은 그날 밤 후원자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그는 방에서 호텔 발코니로 나와 친구들과 대화하던 중이었고, 레이는 아래 주차장에서 킹 목사를 향해 총을 쏘았다.

엄청난 위험에 직면해서 킹 목사가 보여준 변함없는 용기에 대한 로젠블룸의 표현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수없는 살해 위협에도 불구하고 킹 목사는 경찰의 보호를 거의 요청한 적이 없다고 로젠블룸은 보고한다. 킹 목사는 적들이 죽이려고만 하면 분명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믿었다.

킹 목사는 변호사에게 “나는 40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오랜 동료인 앤드류 영은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철학적이었다.”면서, 훗날 “그는 그날이 올 것을 알았고, 알다시피 그는 암살에 대해선 자신이 할 일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을 때, 킹 박사는 아내 코레타에게 자신도 같은 방법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이 암살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암살되기 전날 밤 마지막 연설에서 그는 지지자들에게 산정에 올라 약속의 땅을 보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내 눈은 주님이 오시는 영광을 보았다"고 외쳤다. 다음날 그는 주님을 뵈었을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에 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서거 50주년을 맞이해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권법 제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그의 리더십을 회고할 수 있을 것이다. 신학자이자 연사로서 빛나던 그의 지성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해마다 자신의 사례비 20만 불을 인권 운동 기관에 기부한 그의 희생적인 나눔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킹 목사의 탁월한 용기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는 멤피스가 인종 갈등으로 펄펄 끓는 가마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 도시로 갔다. 그는 많은 이들이 그를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비전의 대가로 목숨을 바쳤다.

그의 용기는 오늘도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변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이들의 본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도록 여호수아를 보내시면서 그에게 도전을 주셨다. “강하고 담대하여라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마라 네가 어디를 가든 여호와 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할 것이다”(여호수아 1:9, 우리말성경).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말했다. “강하고 용감하게 하여라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지 않고 너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역대기상 28:20).

워싱턴 D.C.에 있는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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