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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II
최태선 목사  |  어지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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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0  03:5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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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태복음 6:5-13).

이벤트 사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이벤트 사회라고 부르는 사회학자들이 있습니다. 이벤트라는 말을 누구나 사용하지만 그 내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벤트 사회는 이벤트를 쫓아다니는 데 삶의 의미를 두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입니다. 이벤트를 추구하는 것을 '이벤트호핑'이라고 합니다. 이벤트호핑의 목적은 피곤한 일상을 잘 견디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재미를 찾아서 인생을 떠들썩한 디즈니랜드처럼 만듭니다.

이벤트 사회의 특징은 구성원들이 의미에 대한 질문에서 도피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을 '의미 지향'에서 '체험 지향'으로 이동시키기 때문입니다. 사회학자인 게르하르트 슐체의 연구에 의하면, 체험 지향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행복이 최고의 인생 목표입니다. 개인의 행복이 최고인 사회에서는 향락 추구를 뒤로 미루지 못합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덕목인 인내가 사라집니다.

인생을 즐기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에게 이벤트는 좋은 수단입니다.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하고 지루함을 없애 주는 이벤트들이 인생의 활력소가 되고 즐거움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인내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내입니다. 믿음은 인내 없이 자랄 수 없습니다. 믿음은 인내라는 밭에 심은 씨앗입니다. 믿음이 싹 트고 자라기 위해서는 오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역경과 오랜 기다림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이벤트 사회의 구성원들은 인내를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체험 지향의 사회는 현재 지향의 사회입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향락을 위해 노력, 인내, 금욕, 연대의식과 같은 가치를 포기하고 "인생을 체험하라!"가 삶의 원칙이 됩니다.

체험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자극이나 새로운 친구나 새 애인을 찾습니다. 권태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권태를 견디거나 이길 힘이 없는 그들은 새로운 충동을 찾아 방황하게 됩니다.

오늘날 그와 같은 모습으로 방황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재미와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처럼 이 교회 저 교회, 이 집회 저 집회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참된 진리를 찾아 순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순간적인 체험, 짜릿한 즐거움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교회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인간의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까요?

하나님 나라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복음이란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이고,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는 자연인의 상태에서는 결코 알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네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는 예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성령에 의해 새 생명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복음도 하나님 나라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두 번째로 확인해야 할 사실은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은 세상의 가치관이나 풍조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방식에 따라 그리스도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얼마든지 믿는다고 말할 수 있지만 믿음은 반드시 세상을 거스르는 삶을 통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그 사람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는 그 사람의 삶을 통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교회에 열심히 출석한다 해도 하나님 나라의 방식을 따르고 그리스도의 길을 걷지 않는 믿음은 자기의에 빠진 어리석은 착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호흡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을 기억할 수 없듯이 거듭난 사람 역시 자신의 거듭남을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호흡을 시작하지만, 호흡은 인식 대상이 아닙니다.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고 내쉽니다. 그런데 의식적으로 숨을 고를 때가 있습니다. 분노로 숨이 가빠지면 심호흡으로 분노를 가라앉힙니다. 운동으로 호흡이 가빠졌을 때 가쁜 숨을 쉬면서 부족한 산소를 더 많이 섭취합니다. 몸이 피곤하거나 산소가 부족할 때 하품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호흡을 인식하게 됩니다.

호흡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올바른 호흡의 유익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심폐기능이 강화되고, 소화기능이 촉진되고, 배설기능이 활발해지고, 혈액순환이 활발해집니다. 손발의 냉증이 해소되고, 뇌빈혈이 해소되고, 산모의 경우 태아에게 원활한 혈액 공급이 이루어집니다. 자율신경이 개선되어 불안과 초조감이 사라지고 백혈구의 증가로 저항력이 높아집니다. 기억력이 좋아지고, 머리가 맑아지고, 체내 독소가 잘 배출되어 피부 미용이 좋아지고 집중력이 높아지고 정신력이 강해집니다. 그리고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갑니다.

얼숨

영적 생활에서도 호흡은 중요합니다. 영적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영적인 호흡입니다. 그래서 다석 유영모 선생은 '얼숨'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영혼을 가리키는 '얼'과 생명을 가리키는 '목숨'의 숨을 합쳐 '얼숨'이라는 순 우리말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얼숨'은 영혼의 생명, 즉 호흡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영혼이 쉬는 숨은 무엇일까요? 바로 기도입니다. 숨을 쉬어야 영혼도 삽니다. 우리의 영혼도 성령을 들이마시고 자아를 내쉬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으려면 성령과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려면, 성령을 호흡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20장 22절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새로운 사람들이 되어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의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제자들이 영혼으로 성령을 들이마신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이 활력을 얻고 새로운 소망과 확신이 생겨난 것입니다.

평소에는 호흡을 생각하거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건강이 훼손된 후에야 호흡과 공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얼숨인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기도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음에 이끌리는 기도는 자아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는 기도밖에 드리지 못합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는 기도의 일부일 뿐입니다.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공급받습니다. 기도가 얼숨이 되는 것입니다. 얼숨에도 깊은 숨이 있고 얕은 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요구만을 아뢰고 그것을 얻을 때까지 부르짖는 기도는 얕은 얼숨입니다. 그 기도로는 우리 영혼의 활기를 채울 만큼 충분한 호흡을 할 수 없습니다.

주기도는 바로 그러한 깊은 얼숨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특히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청원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한 우리의 마음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에는 그러한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시작할 때 우리는 성령을 영혼 깊이 호흡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기도는 우리에게 깊은 얼숨을 가르쳐 주는 교과서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호칭의 의미만 알아도 기도 내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청원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만으로 우리의 중심은 자아에서 하나님으로 옮겨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며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는 깊은 얼숨을 쉬게 되는 새로운 세계로 발돋움합니다.

호흡과 얼숨 간에 다른 점이 있습니다. 숨은 저절로 쉬어지지만 얼숨은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호흡은 생명이 있는 한 저절로 쉬어집니다. 그러나 얼숨은 저절로 쉬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노력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얼숨을 쉬지 않아도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얼숨에 익숙해지면, 얼숨을 쉬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육신의 생명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내쉬시면서 "성령을 받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얼숨을 들이마시는 일은 우리 스스로 해야 합니다. 육체의 호흡처럼 매일 매 순간 마셔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주기도는 바로 그렇게 깊은 얼숨을 쉬는 법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얼숨을 통해 하나님과 깊은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으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익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집니다.

얼숨의 유익을 생각나는 대로 열거해 보겠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숨겨진 상처와 아픔들이 치유됩니다. 깨어졌던 관계의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삶에 질서가 생겨납니다. 정신적으로 강해져서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고, 허황된 일에 마음이 분산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여 신실한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을 대하듯 사람을 진정으로 섬기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세상 열락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비도덕적이거나 비윤리적인 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매사를 아버지의 뜻 안에서 조명해 보고 결정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소자들을 섬기게 됩니다. 자신의 생명이 아버지의 것임을 알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주님의 것으로 알아 주인의 뜻을 헤아리는 선한 청지기가 됩니다. 그러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깊은 얼숨을 기뻐하며 하나님과의 더 깊은 교제로 나아가게 됩니다.

주기도는 그 얼숨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기도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는 것은 사랑의 교제 속으로 들어가는 출입문과도 같습니다. 이 단순한 청원에 우리의 모든 열정을 담을 수 있을 때, 우리는 깊은 얼숨을 쉬게 됨은 물론, 얼숨이 우리의 영혼과 육체에 가져다 주는 온갖 유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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