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더 사랑에 빠지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우리의 변덕스러운 취향이 좋아하는 만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것처럼 죽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이 시작되었다면, 그것은 죽기까지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해서 시작한 일은 죽기 까지 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도 그에게 드리는 예배도 죽기까지 해야 하는 겁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얼마나 지불해야 합니까? 나의 모든 것을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사랑이 아니던가요? 사랑은 얼마만큼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것일까요? 사랑은 넘치고 넘쳐나서 지나치게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양입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나 풀, 나무나 꽃이 땅에 부딪혀서 흩어지기 전까지 그 떨어짐을 멈출 수 없는 것같이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것이 사랑입니다. 높이 들어 올린 잔은 넘쳐야 하고, 머리에 부어지는 향기로운 기름은 턱을 타고 넘쳐흘러서 옷깃을 다 적셔야 합니다.

“어느 날 내게도 사랑이 찾아올까?” 설레며 기다리는 모든 젊은 심장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영원까지 이어지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사랑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때에 기적과 같이 내려앉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나는 사랑을 믿지 않아요.”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아직 사랑이신 하나님을 잘 모르는 어린 믿음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느 날 오래 참는 사랑이 그들의 영혼에 분명하게 새겨지며, ‘예수’라는 생생한 이름이 심령의 가장 깊은 곳에 또렷하게 새겨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마음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길을 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이라는 새 날에 새 마음으로 서로 다시 사랑에 빠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땅에서의 남은 모든 새 날들이 매일 더 사랑에 빠지는 날들이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하나님 한 분이시면 다 됩니까? 우리가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전부가 되어 주십니다.”

설교 중에 목사님의 선포가 너무나 빨리 결론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온전히 모든 것을 다해 동참하고 그의 영광을 보시기를 원하십니까? 당신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빤히 사람들이 아멘하고 대답할 수 없을 줄 알면서도 목사님은 담대하게 선포하셨습니다. 무거운 도전이 아닌가 여쭤봤더니, 목사님은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거든 있는 그대로 선포하고 들을 사람은 들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진리를 선포하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거나 예수께서 그들을 피하셨을 때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삶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한복음 6:54-55).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요한복음 6:66-67).

사람들이 싫어할 것을 뻔히 알고도, 있는 그대로 더하거나 빼지 않고 말씀을 전하려면 얼마만큼의 담대함과 용기가 필요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열망을 하나님께서 귀히 보시고, 선포되는 말씀에 기름을 부어 주시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단상에서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이거든 삶에 그대로 투영되어야 마땅합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우리에게 물으시는 예수님 앞에 믿음으로 섭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 된 자녀로서 답을 드립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의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요한복음 6: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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