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태복음 6:5-13).

좁은 길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 간 굶주리며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떡으로 표상된 현실적 기복의 문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적에의 믿음, 사탄에게 영혼을 팔아넘김으로써 얻게 될 화려한 세속의 영화,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물리치신 사탄의 유혹들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표상이신 그리스도께서 걸으셨던 삶의 길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반듯한 탄탄대로가 아니라 험한 좁은 길이었으며, 나날이 풍성해지는 성취의 길이 아니라 멸시 받고 고통 당하는 실패의 길이었습니다(사 53:3). 그분이 가고자 하신 길은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늘 하나님 나라를 향해 걷는 제자들에게 똑같이 주어진 현실입니다.

어찌된 일인지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물리치셨던 사탄의 유혹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배부른 떡의 풍요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으로, 안수기도를 신비한 영적 체험으로, 세상에서의 성공과 번영을 은혜의 증거라는 미명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기심과 욕망을 신앙의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사탄을 욕하면서 도리어 사탄의 유혹에 무릎 꿇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주기도는 바로 그러한 현실을 향한 진리의 외침이며 처방전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청원에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향한 권면과 경고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구해야 할 것은 세상 나라의 번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번영이며, 청원자 자신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청원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참된 회심을 경험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기도입니다.

 

회심

회심이란 변화된 마음입니다. 회개와 회심은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신약 용례에 따르면 회개는 회심을 향한 첫 단계입니다. 회개로 시작한 회심은 신앙으로 나아갑니다. 회개는 자신의 죄를 보고 거기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신앙은 예수님을 보고 그분을 향해 돌아서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회심이란, 우리가 존재 자체로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회심은 전인적이며 통합적인 삶의 전환으로 이어집니다. 회심은 정적이지도 않고 단번에 끝나지도 않습니다. 회심은 변화의 순간이자 평생에 걸쳐 지속되는 과정입니다. 변화는 전 생애를 통해 확장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심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은 회심이 잘못에 빠진 신자들,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공동체 그리고 불순종과 우상숭배에 빠진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게 필수적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회심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로 회심한 사람들의 삶은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주님께 속한 사람들이며 오직 하나님만을 섬깁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세상 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존재의 척도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복음의 복음 됨은 말로 가르치고 그 뜻을 이해하는 데 달려 있지 않습니다. 초기 교회가 그 본보기입니다. 초기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회심이 가져온 결과들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났고 복음의 복음 됨이 회심의 열매로 입증되었습니다.

성경적 회심의 목표는 역사와 동떨어진 영혼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세상으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라이 임하옵시며"의 구체적인 실현입니다. 회심하면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게 되고, 소금과 빛이 되어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고 어둠을 밝히게 됩니다.

참된 회심은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회심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된다면 교회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들이 갈가리 찢어진 것은 바로 회심이 하나님 나라로 이어지지 못해서 생긴 끔찍한 결과입니다. 교회는 하나이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비결은 간단합니다. 회심과 하나님 나라가 이어지는 곳, 그곳이 바로 교회 일치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특별히 신약에서의 회심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개인 구원과 하나님 나라 성취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예수님과 사도들의 설교 가운데 핵심으로 녹아 있습니다. 그리스도께로 회심하는 것은 곧 하나님 나라에 충성하기로 마음먹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회심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된 새 시대라는 관점으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가담했고, 그분을 따랐고, 삶의 방향을 예수님께로 바꾸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새 이스라엘로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회심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습니다. 회심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첫 관문입니다. 회심은 순전히 사적인 존재에서 벗어나 공적인 존재가 된다는 탄생의 표지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더 이상 사적인 삶에 몰두하지 않고 세상을 향한 사명에 종사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나라이 임하옵시며"의 실제적인 성취의 시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 결단으로 시작된 구원은 하나님 나라의 성취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회심과 하나님 나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선포하신 후에 제자들을 불러 하나님 나라의 의미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설교는 새 질서를 말해 줍니다(마 5-7). 산상수훈으로 알려진 이 설교는 하나님 나라를 설명해 줍니다. 예수님은 새 질서 속에서의 삶의 방식을 가르쳐 주실 뿐 아니라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의 의미를 이야기해 주십니다. 그것은 율법의 완성임과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을 받아들이는 것에 어떠한 행동들이 수반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생한 묘사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산상수훈이 말하는 새 질서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강령입니다. 예수께서 출범시키신 새 시대의 특성, 우선순위, 가치관, 규범을 말해 주며 초기 교회는 이것을 하나님 나라에 관한 기본 가르침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산상수훈은 새로운 회심자들을 가르치는 교과서 역할을 하였습니다. 나중 된 사람들은 먼저 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먼저 된 자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것을 보고 배워서,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비쳐 주는 거울이 되었으며 서로 배우고 가르치고 권면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산상수훈은 이론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으로 일상의 모든 일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 존재의 밑바탕이 되는 것들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적인 사안만이 아니라 돈, 소유물, 권력, 폭력, 불안, 성, 신앙과 율법, 안도감, 참 종교와 거짓 종교, 이웃과 함께 사는 방식, 원수를 대하는 방식 등 모든 삶의 영역에 관여하십니다. 우리는 삶의 전 영역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것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곧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우리의 충성 여부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그런데 산상수훈은 축복으로 시작합니다. 이른바 팔복은 하나님 나라의 핵심 가치를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가난한 자들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을 가장 우선시하는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무슨 복이 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팔복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인격입니다. 팔복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합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위선 없이 단순한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재물을 쌓아놓고 의지하지 말고, 자신을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게 세상의 필요는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그 의를 구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만이 그 나라에 들어갑니다. 이들은 단단한 토대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강령에 따라 살아가지 않는 자들은 그 집을 모래 위에 짓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과 저주는 생명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축복은 생명이고 우리의 삶에 부어진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저주는 곧 죽음이며 이는 하나님과 단절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예수님께서 축복하시는 구체적인 것들이 세상적인 인간의 사고로는 결코 축복이 아니라 인간들이 피하려고 하는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은 세상적인 가치관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크고 위대하게 만들려는 의지, 야망, 경쟁과 공격성은 세상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돈은 존경의 척도이며 권력은 성공을 향해 가는 길입니다. 경쟁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며 폭력은 갈등 해결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최종수단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염려는 믿음이 없는 자들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여러 개의 보험으로도 염려를 불식시키지 못하는 우리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은 한 마디로 모든 삶의 방식을 뒤집으라는 것입니다.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회심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오직 겸손한 자만이 진정한 회심을 이룰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겸손한 자들의 회심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자. 연약한 자, 장애인, 죄인 등과 같이 자신이 자신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듣고 구원의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변화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바울의 말은 바로 이러한 회심을 가리킵니다.

회심한 사람들의 소망

하나님 나라의 삶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회심입니다. 참된 회심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시작하는 관문이며 복음을 구원의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회심은 반드시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회심한 사람의 사고와 가치관이 하나님 나라의 사고와 가치관으로 변화되었고, 변화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오직 회심한 사람들만이 참되게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청원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이며, 세상의 높은 파고에 시달리는 연약한 사람들을 위한 청원입니다.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기 위한 기도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세상의 힘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신앙이란 그 싸움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이기는 비결은 간단합니다. 회심한 자들이 모여 참된 공동체인 교회를 이루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방식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 길이 소망인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회심한 자들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부요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기 때문입니다(빌 4:10).

백범 김구의 저서 『백범일지』에는 고능선 선생의 말이 나옵니다. "가지를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벼랑 끝을 붙잡은 손을 놓는 것은 가히 장부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때 좌절에 빠져 있었던 청년 김구는 스승의 말을 듣고 절망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고 합니다. 회심이란 바로 이와 같은 용기를 요구합니다. 무모한 것 같아 보이지만 붙잡은 손을 놓는 사람들이 회심한 하나님 나라 백성들입니다.

주기도의 "나라이 임하옵시며"는 회심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가장 큰 소망을 담은 기도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세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는 오직 회심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청원입니다. 그 의미를 마음에 새기면서 오늘도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