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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The Martyred)』문학 산책 6
신정순  |  작가, 시카고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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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1  00: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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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한인이민사를 한글권 한인문학사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특별한 열매가 거의 없었던 듯이 보인다. 아마도 소수의 이민자를 제외하고는 문화 충격 극복과 이민생활 적응이라는 문제에 온 정성과 힘을 쏟아 부어야 했으므로, 문학 창작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서도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마치고 유학 혹은 이민을 와서 영문으로 창작을 했던 영어권 작가들이 주류문단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시기의 대표 영어권 작가로는 김은국과 김용익을 들 수 있는데, 이 중에서 김은국(Richard E. Kim)이 1964년에 출간한 영문판 『순교자(The Martyred)』는 1969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으로, 또 미국 주류 문단의 주목을 받은 것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김은국은 1932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발발 전에 월남했다. 1954년 미국으로 유학을 왔으며, 1960년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문학 석사, 1962년 아이오와 대학에서 인문과학 석사, 1963년 하버드 대학에서 극동 언어와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 매사추세츠 주 자택에서 77세로 별세했다. 신과 인간의 관계를 실존적 입장에서 통찰하고 있는 『순교자』라는 소설은 당시 미국의 신 사조였던 이른바 ‘신의 죽음’의 신학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데 우선 이 작품의 줄거리부터 살펴보자.

이 작품의 화자인‘나’는 1950년 6월 전쟁이 벌어지자 육군에 입대하여 특무대 장교로 일하게 되었다. 나의 상관인 장대령은 전쟁이 나던 날 공산당에게 체포되었다가 집단 살해를 당한 목사들에 대해 조사하라고 내게 명령을 내렸다. 공산당 비밀경찰이 열네 명의 목사를 잡아갔는데, 그 중 열두 명만 총살하였고 두 명은 지금 살아있다면서 그 진상을 조사하라는 거였다.

‘나’는 생존해 있는 두 목사 중 하나이며 이 소설의 주인공인 47세의 신 목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신 목사는 죽은 열두 명의 목사는 공산당원들 앞에서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했고, 자신은 비겁하게 동료 목사들을 배반하고 신앙을 저버린 대가로 생명을 부지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나는 신 목사의 말이 어쩐지 믿어지지 않았다. 신 목사는 너무나 진실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거였다. 그래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신 목사의 명예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갖는다.

그러던 중 당시 목사들의 처형 사건을 지켜본 인민군 소좌 하나가 생포되면서 사건의 진실이 폭로되었다. 그는 평양 신도들이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를 당했다고 믿고 있는 열두 명의 순교자들이 사실은 가짜 순교자임을 밝혔다. 열두 명의 목사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자기네 신을 부정하고 동료들을 헐뜯으며 죽어갔다고 밝혔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인민군 사령관은 목사이면서도 죽음 앞에서 함부로 신앙을 배반하는 모습이 역겨워 총살을 명령했다고 했다. 젊은 한 목사는 미쳐버렸기 때문에 차마 미친 사람을 쏠 수 없어 못 죽였고 신 목사는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주장하고 있었기에 존경스러워 차마 그를 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신도들은 신 목사의 집 주위를 빙빙 돌면서 “유다! 유다!”라고 외치기도 하고, 흥분하여 집안의 가구며 유리창을 부수기도 하면서 격정적으로 신 목사를 비난했다. 하지만 신 목사는 이러한 모욕을 당하면서도 침묵을 지켰다.
‘나’는 신 목사에게 거짓으로 사람들을 위로함으로써 또 다른 배반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사실을 밝히고 명예도 회복하라고 권했다. 그때 신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인간이 희망을 잃을 때 어떻게 동물이 되는가를, 약속을 잃었을 때 어떻게 야만스럽게 되는가를 보았소. 그렇소, 영원한 희망이라는 그 환상 말이오. 인간은 희망 없이는, 정의에 대한 약속 없이는 그 괴로움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301)

신 목사는 전쟁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신도들이 신앙을 지켜나가기 위해 무언가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걸, 자신들을 지도했던 목사들이 죽음 앞에서도 용기있게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걸 믿게 하고 싶었노라면서, 그것조차 빼앗으면 그들이 이 어둠의 시기를 어떻게 버텨나가겠느냐고 말했다. 이렇듯 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하며 십자가를 짊어졌던 신 목사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나’를 포함한 국군 모두가 평양에서 총퇴각을 할 때에도 계속 그곳에 남아 신도들을 위로하고 끝까지 돌보았다.

나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 태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한국전쟁에 대한 꿈을 꾸기도 하고 무언가 불안하거나 시간에 쫓길 때 마치 내가 전쟁 포화 속에 있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전쟁을 겪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늘 영적 전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다시 세상의 욕심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과 싸우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특히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 때문에 곤혹을 당할 때, 아니라고 이건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을 때 영적 전쟁의 포화는 더욱 불을 뿜는다.
6월이다. 전쟁으로 상징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디선가 열심히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실존으로 살아가고 있을 신 목사가 그리워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순교자』, 김은국, 을유문화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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