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Spirituality 75

 

 

“예수 비유 묵상” 다섯 번째로 “하나님 나라의 잔치”(눅 14:15-24)에 대한 비유를 함께 묵상합니다. 이 비유는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어 주변 사람들을 초대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잔치에 초대 받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핑계로 잔치에 오기를 거절하고, 원래 초대 명단에 들어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 잔치에 참여합니다. 여기에서 잔치를 베푸는 사람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천국 잔치에 누가 참여하고 있느냐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의외의 사람들이 초대되다

먼저 비유는 잔치에 참여한 의외의 사람들을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눅 14:21). 원래 초대받았던 사람들이 거절하면서 잔치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은 뜻밖의 사람들입니다. 가난하고, 몸이 불편하고,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화려한 잔치에 초대를 받지 못합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죄인들과 세리들, 이방인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소외되고,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하십니다.

하나님의 초대 명단은 우리의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우리의 초대 명단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나하고 친한 사람, 잔치의 분위기에 어울릴 만한 사람들입니다. 나와 가깝지 않은 사람, 생각이 다른 사람, 함께 있으면 어색해질 사람은 잔치의 초대 명단에 넣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베푸시는 잔치에 모든 사람을 포함시키기를 원하십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함께 있기에 불편한 사람도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서 함께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는 모든 사람이 함께 초대되었습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모든 사람이 함께 기뻐하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가 베풀어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다

그런데 비유에는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눅 14:18-20). 이들은 잔치에 참여할 수 없는 저마다의 이유와 핑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밭을 사서 돌봐야 하기 때문에 잔치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밭이 상징하는 것은 소유를 의미합니다. 넉넉한 소유가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은 소의 겨리를 사서 시험을 해야 하기에 잔치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겨리란 소에게 짊어지워서 끌도록 하는 쟁기를 말합니다. 새로 산 겨리를 시험한다는 것은 새로운 계획입니다. 삶의 계획과 일에 분주해서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장가를 들어서 잔치에 못 간다고 말합니다. 가족의 일로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부분에 있어서 아주 급진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셨던 분입니다. 누가복음 12:53에는 예수님이 오신 이유가 가족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가족이라는 울타리조차 넘어서 하나님께 응답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급진적인 생각을 알려 주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은 잔치 비유에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응답하지 못하는 이유로 소유와 삶의 계획과 가족을 예로 듭니다. 곧 삶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막아서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이유들 중에 어떤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경험하는 삶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데, 하나님의 초대에 응답하지 못하게 만드는 우리의 핑계는 무엇입니까?

고든 맥도날드 목사님이 아내와 함께 스위스 알프스의 초원에 갔다가 농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농부가 낫을 들고 일하다가 쉬면서 낫의 칼날을 작은 돌에 벼리고는 다시 일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10분 가량 풀을 베고는 5분 가량 낫을 벼렸습니다. 고든 맥도날드 목사님은 처음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분 풀을 베고 5분 낫을 벼리면 결국 한 시간에 20분을 낭비하는 셈인데, 차라리 계속 풀을 베고 일찍 일을 마치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런데 맥도날드 목사님은 금방 깨달았습니다. 낫의 칼날이 무뎌지면 작업이 더 힘들고, 그만큼 작업량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농부에게 풀을 베는 것 만큼이나 낫을 벼리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든 맥도날드 목사님은 이것을 영적 생활에 적용하면서 “베고 벼리는 원칙”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성취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바쁜 일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서 나를 벼리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나를 벼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향해 응답하지 못하는 이유를 돌아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초대에 응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상의 바쁨을 넘어서 때로 하나님 앞에 멈춰 서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초대의 음성을 듣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응답하라

결국 잔치 비유의 중심 메시지는 한 단어입니다. “응답하라”입니다. 비유에서 잔치를 베푸는 주인은 종을 보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눅 14:17). 잔치는 이미 준비되었고, 이제 필요한 것은 이 잔치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잔치가 이미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고 있는 잔치가 이미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내 삶에 벌어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라고 강조하십니다.

시카고의 무디성서대학의 학장이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지금부터 1분의 시간을 드릴 테니, 다른 생각은 다 하더라도 코끼리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모두에게 눈을 감게 하고, 1분이 지난 후에 “이 중에서 코끼리 생각을 안 한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도 손을 든 사람이 없었습니다. 코끼리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더니, 코끼리 생각이 더 났던 것입니다. 학장은 코끼리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습니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었습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면 오히려 코끼리 생각이 더 나는데,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코끼리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100퍼센트 실패하지만, 코끼리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학장은 말했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영적 통찰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삶의 문제와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이 문제에 매몰되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더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곧 문제와 어려움을 이겨낼 힘이 공급되고 있는 잔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다스리는 잔치가 이미 내 삶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발견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에 응답하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다스림에 응답할 때, 내 삶에서 코끼리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33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다스림에 응답할 때, 삶의 모든 문제가 제자리를 잡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삶에서 벌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믿음의 눈으로 발견하고 응답할 때, 삶의 모든 것이 해결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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