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쌍둥이?” 아내가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병원에서 뱃속의 아이가 둘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놀라움보다 신기함과 설렘이 컸습니다. 마냥 즐거워서 주위 분들에게 자랑했습니다. 그때 한 권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전도사님이 뭘 모르시는군요. 쯧쯧.” 좋기도 하지만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였는데, 그 설명이 당시에는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태어난 아이 둘을 쌍둥이 유모차에 싣고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며 한 마디씩 합니다. “어머! 이쁘다, 두 번 고생할 거 한 번에 하니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어떤 분들의 말은 다릅니다. “엄마가 많이 힘들겠네.” 육아를 해본 분들은 관심과 첫마디가 확실히 달랐습니다.

집안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으로 이주했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미국에서 학창생활을 보냈습니다. “아이들 영어 잘하지요? 얼마나 좋을까.” 한국을 방문하면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고, 또래 부모들의 관심사였습니다. 부러운 눈빛으로 물어보는 그들에게 미국 생활에 적응 못하는 아이들도 많다는 이야기나 “아이들을 미국 문화에 빼앗긴 것 같아요” 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을 테니까요.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은 정체성을 찾느라 힘든 과정을 거쳤고 방황했습니다. ‘잘 자라기만(착하고 말 잘 듣는다는 의미)’ 할 줄 알았던 아이들이 ‘반항’을 하고, 제 인내의 한계를 넘는 행동을 할 때엔 “대체 누굴 닮아서 저래?”라는 말을 수 없이 중얼거렸습니다. “아빠! 교회 안 나가면 안 돼요?” 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사단이 우리 집안을 무너뜨린다고 생각했고, 목사직을 그만두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세대 차이와 문화 차이로 인한 충돌은 어리석은 부모와 미성숙한 아이의 약점을 예리하게 파고 들며 상처를 악화시켰습니다. 사고방식뿐 아니라 얼굴 모양까지 교포형(?)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느낄 때는 이질감이 적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와는 달리 두 아이는 지금 다니는 학교도 다르고 전공도 다릅니다. 삶에 대한 가치관이나 결혼관이 부모와 다르고 자매지간도 약간 다릅니다. 달라진 시대이고 사는 곳이 미국이니, 앞으로 한 집에서 지낼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가능한 한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지만, 아이들은 내 맘 같지 않은가 봅니다. 전엔 아이들이 아빠를 찾았는데 지금은 내가 아이들을 찾습니다. 그런데 찾는 대상의 답은 똑같습니다. “바빠요.”

모처럼 아이들이 집에 왔다가 돌아가는 날이면 마음이 더 무겁습니다. 공항에선 눈물을 참느라 얼굴이 붉어집니다. 여성호르몬을 탓하면서 헛기침을 합니다. 자동차 룸미러에서 자주 보았던 수퍼맨이자 완벽 교사였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요? 대신 뒷자석에서 날카로운 눈빛이 사라진 중년 남자가 창밖을 보고 있습니다. 신호등의 숫자를 세며 지난 세월의 변곡점들을 되돌아보는 것 같습니다. “옛 어른들 말씀 틀린 것 하나 없다”고 혼자 중얼거립니다. ‘나도 나이가 들었네. 그런데 철도 들었나?’ 혼자서 묻고 답을 기다립니다. 이런 경험과 과정이 저만의 것은 아니겠지요?

생각들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하나, 사람은 경험한 것 만큼만 세상을 이해하나 봅니다. 고로 남의 일에 대해 섣부른 확신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경험을 타인에게 우격다짐으로 적용하고 원칙으로 삼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구나 특별한 자기만의 경험이 있으니까요.

둘, 그렇지만 동서고금을 통해 수많은 인생들이 겪은 다양한 경험과 거기서 얻은 지혜의 격언들은 여전히 보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로 자기는 예외라는 왜곡된 신념이나 자신만 특별하다는 교만한 마음을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신의 경험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셋, 이 둘 사이의 균형과 해석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고, 일반적이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나’의 역사와 존재가치에 대해서 말입니다.

무엇이 중요할까요? 과정 속에서 ‘오늘 내가’ 내리는 생각의 결론, 정리된 교훈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이 나를 나 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딸아이의 빈 방이 크게 느껴지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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