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태복음 6:5-13).

산상수훈

마태복음 5-7장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메시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산상수훈입니다. 주기도는 산상수훈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습니다. 그래서 주기도는 산상수훈에 관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산상수훈이 얼마나 멋진 가르침이냐면서 그대로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팔복을 통해 산상수훈을 여시면서 그 복들을 누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잘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즐거워하면서 그것을 경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들은 하나같이 세상적인 관점으로는 전혀 복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것을 기뻐하고 경축해야 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생의 일반적 진리들과는 상반되는 내용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입니다. 인생은 어렵습니다. 아무리 성공하고 많은 돈을 가져도 인생은 고(苦)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이 일련의 놀라운 소식들은 새로운 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초청장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이며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새로운 방식이 마침내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새로운 시대를 여십니다. 새로운 시대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이 잘 안다고 생각했던 방식들과 반대 되는 방식을 따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놀라운 소식은 성공, 부, 장수, 전쟁에서의 승리와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겸손한 자, 가난한 자, 슬퍼하는 자,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들을 위한 놀라운 소식을 제시하십니다.

여기서 놀라운 소식에 해당하는 말은 종종 '복되다'로 번역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요점은 하나님께서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는지를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을 선언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약속입니다.

첫 번째 청원과 하나님 나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청원하는 사람이 이제 그 뜻을 실현하는 자로서 구하는 첫 번째 청원은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미래의 방식으로 현재를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미래가 나사렛 예수를 통해 현재에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 내용이 우리의 사고로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오늘 먹을 양식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주기도는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풍요함으로 인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는 굶주림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의 수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기아에 관한 8가지 사실'에 의하면, 8억7천만 인구는 건강에 필요한 충분한 식량 섭취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죽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1/3은 기아와 연관이 있습니다. 전세계 어린이들의 1/4은 성장발달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 아이들의 1/6은 저체중입니다. 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데 필요한 모든 영양분을 제공받는데 하루에 25센트면 충분합니다. 2050년이 되면 기후 변화와 불규칙한 날씨 패턴으로 인해 또 다른 2,400만 명의 아이들이 기아에 허덕일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개인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에게 임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는 공동체 안에 깃들어 있는 희년의 정신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기꺼이 가난해지기로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가진 것을 가난한 사람들과 기꺼이 나누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자들 주변에는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가난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제자로 하여금 자신의 제자 됨의 진정성을 시험하게 하는 이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또 그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들과 똑같이 먹고 마시는 한, 진정한 제자는 부자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제자들 주변에 모두가 가난하지만 아무도 가난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문 앞에서 기꺼이 가난해지기로 결심한 제자들 주변에서 아무도 가난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부자들의 나라가 아닙니다. 추호라도 부자가 되어 가난한 자를 돕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된 제자가 아니라 부에 미혹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기꺼이 가난한 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는 시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한 청원이 끝난 바로 다음에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청원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경제적 회개

 

오늘날 복음이 복음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첫 관문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관문을 피할 수 있는 우회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을 거꾸로 뒤집는 것입니다.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거기서 부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경제적 회개를 당신의 새 나라에 필수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사유 재산 자체를 비난하지 않으십니다. 또 새로운 기독교식 공동생활 체제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탐욕에는 단호하게 대처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희년의 정신을 따르는 새로운 나라를 제자들이 따라야 할 새로운 길로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은 자기 주위에 있는 궁핍한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로운 사랑에 응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탐욕스러운 사람들을 책망하시면서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도록 방임하는 당시의 경제 규범들에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물질이 악하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그 위험성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셨습니다. 돈과 물적 재화는 너무 쉽게 우상이 되어 버리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청원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할 뿐 아니라, 일용할 양식이 없어 주리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경제적 회개는 주님께서 강조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가장 중요한 필수입니다.

부의 위험성

부는 우리의 성숙과 하나님 나라를 가로막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속에는 재물이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어떻게 위협이 되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교가 들어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씨가 자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출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는 말라 죽습니다. 말씀을 들었으나 살아가는 동안 근심과 재물과 인생의 향락에 사로잡혀 결실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눅 8:14; 막 4:18-19; 마 13:12).

오늘날 근심과 재물, 인생의 향락에 해당하는 것은 어떤 것들일까요? 취직이나 승진, 집이나 아파트 혹은 별장, 호화로운 휴가, 색다른 취미, 금융 투자, 각종 명품들, 고급 자동차와 화려한 귀금속 등이 포함될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의 향락들이 하나님 나라가 자라는 것을 막습니다. 부는 우리의 영적 성숙을 가로막아 하나님 나라가 자라는 것을 강력하게 차단합니다.

또한 부는 우리를 염려하게 만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가 없기 때문에 염려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부가 없어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부가 우리로 하여금 염려하게 만듭니다. 부는 과거에 대해 죄책감을 갖도록 합니다. 인생을 후회하게 만듭니다. 미래에 대해 근심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물이 염려를 낳는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염려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애쓰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다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들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오히려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여라 그러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스스로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눈 12:29-34).

여기에서 "염려하지 말아라"에 사용된 헬라어는 '근심에 빠져 안달하지 말라'입니다. 이방사람들은 무엇을 입을지, 어디에 살고 얼마나 벌어야 할지를 염려하고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 나라에 몰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백성에게 안식일과 안식년을 주셨습니다. 안식일과 안식년을 통해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는데 굶었는지 굶지 않았는지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신학자 하워드 요더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당신이 6일 동안(혹은 6년 동안) 온 마음을 다하여 일한다면, 하나님께서 당신과 당신의 소유를 책임져 주시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두려워 말고 당신의 땅을 경작하지 않은 채 버려두라.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지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 공중의 새를 먹이시듯 당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실 것이다. 안식일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결코 당신보다 부유하지 못하다."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는 것은 용기이고 결단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염려하라고 주장합니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우리는 물질을 쌓는 일에 열중하게 됩니다. 쌓고 또 쌓고 넘치도록 쌓아놓아도 염려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에는 희년의 정신을 실천하라는 하나님 나라가 깃들 수 없습니다.

물질을 쌓아두지 말라

물질을 쌓아두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비전, 곧 하나님 나라를 구할 때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변화되어 궁핍한 사람들과 소유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마르지 않는 샘같이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청원은 바로 '그 같은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주님 앞에서 다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의 초점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물질을 쌓는 것은 이방 사람들의 몫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을 좇는 사람들의 방식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거꾸로 된 삶의 방식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로 나타납니다. 그분께서 선포하신 은혜의 해, 다시 말해 희년의 원리가 실행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가진 것을 내놓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선물에 응답합니다.

구하는 사람에게 주되 되받을 생각을 말고 베풀라고 가르치시는 주님의 선언 속에 이와 동일한 흐름이 있습니다.(마 5:42, 눅 6:34-35) 하나님 나라가 보물이 될 때, 우리는 쌓아두는 사람에서 베푸는 사람으로 변화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최우선으로 여길 때 가진 재산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까지도 다시 일으키고 자유의 사람으로 해방되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의 속박에서 풀려날 뿐 아니라 끝없는 소비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염려를 낳는 소유

염려는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짐이 아닙니다. 소유가 염려를 낳습니다. 소유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염려가 없으면 오히려 불안해집니다. "드디어 나도 염려거리를 찾았다. 내 염려는 염려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라며 기뻐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이러니입니까? 그 모습이 바로 소유의 노예가 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다"(마 6:34)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는데, 현대 사회는 염려를 부추깁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보험 광고의 증가입니다. 각종 보험이 우리를 대신해서 걱정해 주는 듯 곁으로 다가와 우리를 점점 더 불안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부에 대한 우리의 끝없는 욕망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소유에 대한 집착 때문에 우리는 염려의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습니다.

부는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얼마든지 조종이 가능한 중립적인 교환 수단으로 보입니다. 얼마든지 부를 소유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다고 자긍심을 높여 줍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은 은밀한 부의 위험성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소유에 집착하는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바꾸라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우선순위를 바꿔라!"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집중할 때 우리는 기꺼이 궁핍한 사람들과 소유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 가운데 하나님을 선택하면서 부의 위험성으로부터, 염려의 마귀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는 것은 소유의 굴레, 부의 위험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아 성찰이며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확인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다는 사랑 고백입니다. 거짓 신앙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 한 분만 신뢰한다는 믿음의 선언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어도 좋으니 돈 벼락 한 번 실컷 맞아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세상 속에서 돈이 가지는 위력은 막강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왜곡된 복음에 현혹되고 복음을 듣기만 할 뿐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만큼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선택입니다.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 이유는 문턱이 높기 때문이 아니라 부를 포기하고 가난을 선택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막강한 위력을 지닌 부를 포기한다는 것은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를 포기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섰을 때, 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부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기꺼이 가난을 선택하고 하나님 나라의 문 안으로 들어서십시오. 무책임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가진 것을 궁핍한 자와 나누는 사람이 되십시오. 기꺼이 베풀고 나누는 삶을 통해 믿음을 입증해 보이십시오. 바로 거기서 하나님의 '샬롬'을 경험할 것입니다. 결핍 없는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경험할 것입니다. 눈물을 닦아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선택할 가치가 있는 값진 것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 천국을 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는 그 순간 우리는 내가 바로 그 같은 선택을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기꺼이 가난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주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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