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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푸르구나!
윤효순  |  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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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3  06:4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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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월은 봄이라는 이름의 핀셋이 되어 땅속에 들어 있는 새싹을 깜짝깜짝 삽시간에 뽑아 올린다.

그 뒤를 푸른 하늘의 응원을 받으며 한층 따뜻해진 햇빛을 동원하여 쑥쑥 자라나게 하는 시기, 오월이 따라온다. 둘러보면 땅을 뚫고 올라온 모든 식물들이 곰실곰실 오월의 질서를 따르며 활기차고, 싱그럽게 푸르러간다.

푸른 오월! 푸른 오월 속에는 보드라운 설렘으로 다가오는 연한 새싹이 또 있다. 꼬무락 꼬무락 태어나서 보일락 말락 달라지는 아이들! 그들의 성장 속에서도 왕성한 오월의 활동을 느낀다.

1. 다나

내가 다나를 맨 처음 안아본 것은 약 이 년 전쯤, 예배시간에 유아실을 담당했을 때이다. 태어난 지 반 년을 조금 넘긴 귀엽고 조금 작은 아이였다. 병아리처럼 보드랍게 내 품에 안겼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차를 타면 스르르 잠들기 마련인데 어찌된 일인지 다나는 차만 타면 운다고 했다. 그 주일아침에도 예배 드리러 오는 부모님의 차 속에서 계속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자 울음을 그쳤다. 다행스럽게도 내 품에 안긴 다나는 울고 난 뒤끝으로 이따금 한숨과 함께 몸을 작게 떨곤 했지만. 의심도 두려움도 하나 없는 예쁘고 까만 눈동자를 끔뻑끔뻑했다. 뭉클하게 사랑스런 마음에 난 흔들의자에 앉아 가만 가만 흔들거렸더니 어느새 새근새근 잠이 들어버렸다. 예배시간이 끝나고 다나 엄마가 오기까지 내내 보드라운 아이를 안고 향긋한 아기 냄새를 맡으면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시간이 가면서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보았고, 이젠 뛰어 노는 모습도 보지만 다나는 향긋한 냄새, 보드랍고 포근하고 행복한 느낌과 까만 눈동자의 아이로 기억된다.

세월은 지나서 어느 사이 다나가 두 돌을 넘긴 지난 오월 두 번째 주일, 일부 예배를 드리고 이부 예배시간에 다나가 있는 방에 들어갔다. 몇 명의 아이들이 고물고물 놀고 있는 속에서 다나도 장난감 주방용기들을 들고 서성이고 있었다. 그러던 다나가 무엇인가를 내 앞에 내밀었다.

세상에!

한 손에 장난감 부침용 뒤집기를 들고, 한손에 작은 플라스틱 접시 위에 장난감 플라스틱 소시지를 올려서 내 앞에 놓는 것이다. 나에게 자기가 요리한 음식을 대접했던 것이다.

2. 하린

하린이는 세 살이다. 낯을 무척 가렸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귀엽게 생긴 하린이, 만날 때마다 손을 잡아 보고, 안아 주고 싶지만 한 치의 틈도 주지 않는다. 내 바람은 하린이 앞에선 어림도 없다. 언제나 엄마 뒤로 돌아가 숨어 버렸다. 말을 시켜도 야무지게 닫은 입은 꿈쩍도 안했다. 누가 무엇을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는다.

대개 이중 언어권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말이 늦게 트인다. 한 사물을 한국어와 영어로 습득해야 하는 데서 오는 혼란이리라. 말이 서툴고 자신이 없으니 딴에는 신중하려고 말을 아끼는 것이겠지만, 흠잡기 어려운 예쁜 얼굴엔 구김살 하나 없기에 내 눈에는 조심스러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도도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도 귀여워 도도한 것 하고는 상관없이 늘 마음이 끌렸다. 그런 하린이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엄마랑 같이 한국의 외갓집에 갔다고 했다.

어느 날, 몇 개월의 한국 방문을 마치고 드디어 교회에 등장했다. 멀리서 걸어오는 하린이가 번뜻 내 눈에 들어왔다. 웬일일까? 웃는 얼굴로 여태껏 짝사랑해온 나에게 눈까지 고정시키고 또박 또박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할 수 없이 기쁘고 반가웠다. 그 아이가 드디어 나를 친구로 대해 줄 것만 같은 기대감에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어떻게 말을 해야 그 조용한 아이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들을 수 있을까. 하고 있는데 내 앞에 당도했다.

나도 모르게 “누구세요? 어디 갔다 이제 왔어요?”연거푸 물었다. 드디어 앙증맞은 그 입술이 상큼하게 열리며 놀랍게도 또렷한 말이 방울처럼 흘러 나왔다. “하린이에요. 한국 갔다 왔어요!” 귀엽고 선한 세 살배기의 목소리, 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는 효순이에요!” 우리 사이가 이젠 친구 관계로 시작된다는 기쁨에 뛰는 가슴을 누르며 말했다. 이어지는 하린이의 말. “효순이 아니에요! 할머니에요!” 가슴에서 뭔가 빠져버리는 느낌이었다.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세 살배기가 일러 주었던 까닭이었다.

하린이에겐 말이 가져다 주는 자신감은 물론이고 머리 허연 노인네는 친구가 아니라 할머니라는 생각까지 자랐던 것이다.

3. 은우

이 세상에서 나를 예쁜 할머니로 불러 주는 아이가 둘 있다. 한 아이는 내 가족 안에 있기에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내가 훈련을 시켰다. 녀석은 예쁜이라는 단어의 뜻이 바로 내 호칭인 줄 알고 있다.

그리고 은우가 나를 이삐 함미라 부른다. 은우는 제 스스로 그리 불렀으니 아마도 예쁘다고 인정하는 아이는 은우뿐이리라. 예쁜 것 하고 거리가 먼 나를 은우가 유일하게 예쁘다고 인정해 준 셈이다. 감사한 일이다.

주일마다 교회에 가면 은우에게 인사를 꼭 해야 한다. 귀여운 은우는 언제나 멀리서도 눈으로 나를 찾아내고 혼자 바라보기 일쑤다. 내가 옆으로 가도 그 아인 선뜻 나서지 않는다. 그러다가 자기에게 아는 체 하지 않고 다른 아이를 챙기면 속상해 한다. 동그란 얼굴에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를 나에게 고정시키고 바라보고 있는 기척이 느껴지면, 얼른 먼저 인사를 하고 손을 잡아 주어야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품에 안기기도 하고 춤도 춰준다. 그 미소가 하도 귀여워서 먼저 인사하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지난 오월 셋째 주, 은우가 속한 방에 안녕을 외치며 들어갔다. 분명 내 소리를 들었을 은우, 돌아보지도 않았다. 무슨 일인가 하고 그녀의 곁으로 가보니 얼마 전부터 교회에 새로 온 엉금엉금 기어다니기 시작한 작은 아이의 등을 도닥거리고 있질 않은가! 어린아이에게만 집중된 듯했다. 서운한 마음이 잠시 들었다. 늘 저를 먼저 아는 체하지 않을 때 느끼는 감정이 이것이었으리라. 반응을 기다리던 잠시 후, 내가 옆에 있음을 알았나보다.

갑자기 일어나더니 양손을 맞잡아 배 중앙에 고정시키고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다.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 앞에는 어느새 의젓한 한 아가씨가 서있는 듯해서였다.

4. 노아

예쁜 세 살이 끝난 노아, 한국말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릴 때 쓰는 영어를 훨씬 편하게 사용한다. 침착한 성품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그만할 때의 건강한 사내아이들 대부분은 첫눈 온 날의 강아지 격이다.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을 참아내기가 힘들어서 돌보는 사람은 목소리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한국말을 가르치고 싶은 노아 엄마는 수요일마다 친정엄마를 모셔와 한국어를 사용하게 했다.

영어만 쓰려고 하는 아이에게 노아의 할머닌 열심히 동요를 불러 주었다. 김이 나는 커피잔을 얼굴 앞에 대고 “냄새 좋다.” 하곤 아이의 앞에 가져가서 따라하게 했다. 이젠 제법 할머니가 부르던 노래를 생각해 내곤 어눌한 발음으로 흥얼거린다고 했다.

어느 수요일 종일 아이와 놀던 할머니는 아이가 단어를 얼마나 알고 있나 알아보기 위해서. 이게 뭐냐, 저게 뭐냐를 묻는 게임을 했다고 했다. 책상, 연필을 비롯하여 대답하는 것이 제법 있었다고 했다. 그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칭찬에 재미를 붙었는지 묻지 않은 사물들도 가리키며 말을 했다.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어른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혼자 생각해 낸 단어들이 많아서 할머니는 놀랐다고 했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배운 말들을 듣는 즐거움을 달뜬 목소리로 나에게 전하기도 했다.

할머니와 손자가 시간가는 줄 모르게 지낸 오후. 퇴근시간이 비교적 정확한 사위가 올 무렵이었다.

노아가 아빠 들어올 문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예스럽지가 않았다. 발을 구르기도 하고 두 다리를 꽈가며 서 있는 모습이 꼭 소변이 급한 모습이었다고 했다. 오줌똥은 가리는 아이인지라 잔소리 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는데, 드디어 아이 아빠가 당도했다.

막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빠에게는 인사도 하지 않고, 급한 소리로 할머니를 부르더란다. 의아해 하는 할머니를 향하여 점잖은 목소리로 아이는 외쳤다. “함머니!!! Your 김서방 is here!!"

그리곤 화장실로 급하게 달려가 시원하게 “쉬~~~~아~~”를 하더라는 것이었다. 김서방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씀으로써 할머니의 칭찬을 한 번 더 듣고 싶었나보다.

온유한 오월은 따사로운 햇살과 보드라운 바람을 데리고 왔다. 우리네 동산의 곱디고운 새싹들의 이마를 사랑스럽게 쓸어 준다. 몸과 힘과 지혜를 자라게 하며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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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원
권사님~ 사랑스러운 글 감사합니다~♡
(2018-07-17 18:52:54)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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