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특단의 조치'(Extraordinary Measures) 한 장면

뉴저지 주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남녀 두 학생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습니다. 존(John)과 에일린(Aileen)이라는 학생의 만남이었습니다. 둘은 1990년에 결혼해서 인디애나 주 북부에 있는 사우스 벤드에 그들만의 첫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 후 남편 존이 로스쿨(Law School)에 들어가기 위해, 두 사람은 인디애나폴리스로 이사했습니다. 1995년, 두 사람은 하나님의 크리스마스 선물인 첫 아들 존 주니어(John Jr.)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세 식구는 다시 보스턴으로 이사했습니다. 존이 하버드 대학의 비즈니스 스쿨(Business School)에 합격했기 때문입니다.

     1997년, 보스턴에서 존과 에일린은 둘째 아이인 딸 메간(Megan)을 낳았고, 이듬해에는 새로운 직장을 얻어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막내 아들 패트릭(Patrick)을 낳았습니다.

     인정 받는 직장, 새로운 보금자리, 사랑하는 세 아이들이 있어, 존과 에일린은 자신들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들보다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그런 행복한 생활과 화려한 꿈도 잠시, 1998년 3월, 두 사람은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15개월 된 딸 메간과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막내 페트릭이 이름도 생소한 Pompe Disease에 걸렸다는 소식이었습니다.

      Pompe Disease는 점차적으로 근육이 퇴화되면서 걸을 수 없게 되고, 먹을 수도, 숨을 쉴 수도 없게 되는 병이었습니다. 워낙 희귀병이라 치료약이나 치료 방법도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존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두 아이의 질병도, 두 아이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해결해 주지 않는, 아니 해결해 줄 수 없는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고 발 벗고 나섰습니다.

 

 존과 에일린과 자녀들

   아이들의 효소(enzyme) 변제(replacement)를 개발할 수 있는 의사와 과학자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호주로, 유럽으로, 아이들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과 실마리가 있다면 어디든지, 누구에게든지 찾아 갔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마케팅 분야에서 남부러울 것 없던 직장도 그만두었습니다. 대신에 아이들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잡기 위해, 자신이 지금까지 공부해 왔던 분야와 전혀 다른, 생명공학 회사를 차렸습니다. 회사를 시작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37,000불의 자본금으로 노바짐(Novazyme)이라는 제약회사를 차렸고, 그 회사를 2,700백만 불 이상의 가치가 있는 회사로 키워냈습니다.

     실험에 또 실험을 거쳤습니다. 이 병원에서 또 다른 병원으로, 회사로, 집으로, 미국 전역과 세계곳곳을 오가며, 메간과 페트릭의 치료약 개발에 온 힘과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고, 생각하지 못했던 난치병 Pompe Disease의 치료약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2003년 1월 9일, 존은 자신이 개발한 그 약을 사랑하는 딸 메간과 아들 패트릭에게 처음으로 투여했습니다. 지금 메간과 페트릭은 비록 휠체어를 의지하고 있지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기자였던 지타 어낸드(Geeta Anand)는 2006년에 존과 에일린,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 이야기를 『치료』(The Cure) 라는 책으로 엮어 출간했습니다. 2010년 1월에는 그들의 이야기가 '특단의 조치'(Extraordinary Measures)라는 이름의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되었습니다.

     왜 존과 그의 가족 이야기가 책과 영화로 만들어졌을까요? 왜 그들의 이야기가 듣는 이로 하여금 비범함을 자아내게 할까요?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딸 메간과 아들 페트릭을 향한 아버지 존의 헌신적인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라는 말 속에는 자녀를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다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또 다른 이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다(사 9:6).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저를 위해 무엇이든지 다 내어주시는 사랑을 가지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당신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얼마나 체험하고 있습니까? 그 분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경험하고 있습니까?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10).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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