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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부활(1)문학 산책(8)
신정순  |  작가, 시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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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8  01:4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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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가 『부활』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이 소설의 원제는 “코니의 수기”였다.
1880년 대 말경, 저명한 변호사였던 A. F. 코니는 자기를 찾아온 청년의 이야기를 톨스토이에게 들려준 적이 있었다. 대학생이었던 청년은 지주의 아들이었는데, 16세가 된 병장지기의 딸 로잘리아를 유혹하여 임신을 시켰다. 배가 불러오자 그녀는 주인집에서 쫓겨나 매춘부로 살기 시작했고, 어느 날 술 취한 손님에 대한 절도 및 살인 모의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 마침 배심원으로 참석했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된 젊은이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이 여자와 결혼했다. 그녀는 결혼 후 4개월이 지났을 때 티푸스에 걸려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였다.

청년의 고백과 『부활』의 줄거리를 비교해 보면, 얼핏 이 소설은 청년의 경험담에 전적으로 기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소설의 큰 줄거리 즉, 네흘류도프의 유혹, 카튜샤의 임신, 양녀로 있던 집에서 쫓겨남, 윤락녀로 전락, 살인 혐의, 배심원으로 참석했다가 다시 만남 등은 젊은이의 체험담과 다를 바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소설에서는 카튜샤가 네흘류도프의 청혼을 거절하고 대신 감옥에서 만난 시몬스와 미래를 약속한다는 것 정도? 게다가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을 때 “코니의 수기”라는 제목을 달았음을 상기할 때, 이 작품은 그 청년의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그런데 톨스토이의 실제 체험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소설은 코니가 들려준 이야기에서만 따온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톨스토이가 위대한 점은 작가로서 혹은 사상가로서의 탁월함에도 있지만, 현자 혹은 성인이라고 칭송을 받고 있었던 그 시절에 자신의 도덕적으로 결여된 부분을 정직하게 고백한 데 있다. 작가는 젊었을 때 영지의 농민의 딸과 관계한 일이 있고, 숙모집의 마샤라는 순진한 하녀와 관계한 일이 있었다고 제자 비류코프에게 고백했다.

뿐만 아니라 젊은 예브게니가 유부녀와의 사랑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만다는 줄거리의 『악마』라는 작품이 그의 자전적 소설임을 고려해 본다면, 『부활』의 큰 소재는 코니에게 찾아온 젊은이의 고백 자체보다 실은 작가 자신의 체험에 더 크게 기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크게 세 가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카튜샤의 운명에 대한 연민, 네흘류도프의 도덕적이며 사회비평가적인 시선, 성경 말씀을 시대와 인생에 적용해 보려는 기독교적 시선이 바로 그것이라 하겠다. 사실 일반 독자들에게 가장 재미있게 읽히는 부분은 집시 남자와 농촌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카튜샤가 친모가 죽은 후 저택의 수양딸로 사랑스럽게 자라다가, 잘못된 사랑의 결과로 매춘부로 전락해 살인자로 몰리는 가련한 운명을 그려낸 부분이라 하겠다. 작가는 이 부분을 그려낼 때『안나 카레니나』에서 보여 준 필치에 못지않은 탁월한 묘사 기술을 보여 주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가 하면 작가는 네흘류도프를 통해 재판 제도나 정부에 대해 철저한 부정 의식을 드러내는데 작품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1899년 <니바>라는 주간지에 이 소설이 연재되었을 때, 독자들은 <니바>가 배달되는 금요일 아침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제정 러시아 당국은 이 작품에 격노했고, 1901년, 그리스 정교에서 그를 추방했다. 당시 국내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각지의 사상가들이 만나고자 열망했던 톨스토이에게 어떻게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있었나 싶기도 하지만, 작품 속에 나오는 재판 제도에 대한 비판을 읽다 보면 정부의 반응에 조금은 수긍이 간다.

네흘류도프는 형제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나 용서하라는 마태복음의 말씀을 이렇게 해석한다.

‘감옥과 군대에서 목격한 무서운 악은 그 악을 행사하고 있는 살인마들이 자기가 악인이면서도 악을 바르게 고쳐 보려는, 그 불가능한 일을 하려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을 그는 똑똑히 알았다. (...) 너희들은 몇 백 년 동안이나 범죄자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을 처벌해 왔다. 그런데 어떠냐? 범죄자는 근절되었을까? 근절되기는커녕 차츰 더 늘었을 뿐이다. 형벌에 타락된 범죄자들, 그들 범죄자들 앞에 버젓이 앉아서 사람들을 처벌하고 있는 재판관과 검사와 예심 판사와 형무관, 이러한 패들에 의해 차츰 더 늘어날 뿐이다. 네흘류도프는 이제야 비로소 사회와 질서가 이대로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은 남을 재판하고 처벌하거나 하는, 법률로 보호된 이들 범죄자들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타락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서로 동정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하권 331-332)

이같이 과격한 비판을 받은 국가의 관리들은 마음에 큰 찔림이 있었을 것이고, 자신들을 범죄자로 모는 작가를 그냥 둘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작가는 사유재산 반대 사상을 표출하는 데 있어서 갈등하는 자아를 등장시켜 리얼리즘을 확보한다. 네흘류도프는 청년 시절 토지란 사유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정열적으로 주장했던 사람이다. 실제로 토지 사유에 대한 자기 신념을 어기지 않으려고 약간의 토지를 농민들에게 분배해 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사상은 늘 올곧은 행동으로 뻗어나갔던 것만은 아니었다. 상속으로 2백 헥타르의 대지주가 되었을 때 갈등이 깊어졌다. 이미 사치와 향락의 생활에 젖어 있었고, 남과 나누기에는 재산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청년 시절에 가졌던 스펜서의 <사회 평형론>이나 토지 사유의 불법성에 대한 신념을 저버릴 수도 없어 고민에 휩싸인다.

나는 이 대목을 읽을 때 아, 하며 감탄했고, 읽기를 잠시 멈추었다. 맞다. 작은 돈이 수중에 들어오면 이웃과 나누기 쉽다. 그런데 큰돈을 이웃과 균등하게 분배해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독자들이 왜 톨스토이에 열광을 했고 톨스토이즘이라는 말로 그의 사상을 부각시킨 연유를 알 듯했다. 톨스토이는 알았던 것이다. 남들과 나누는 건 좋은데 많은 것을 주고 나면 내 것은 얼마나 남지? 나중에 내 돈이 부족해지면 어떡하지?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일해야 한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사치스런 취미 생활은 접어야 하는 건가? 거의 예외 없이 누구라도 이러한 갈등과 고민을 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작가는 네흘류도프를 통해 긍휼의 행동 이전에 마음속에 숨은 갈등을 투명하게 드러냈다. 더 위대한 것은 이러한 심리적 과정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인생관을 대변하는 소설의 주인공들은 여지없이 도덕적 결정을 행동으로 나타냈다는 것이다. 자신을 이웃에게 실제로 내주는 것. 톨스토이식의 복음 해석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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