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시간에 성령께서 점진적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우리를 도우신다'"

매년 7월이면 국제 도로 사이클 경기인 투르 드 프랑스가 3주 동안 프랑스에서 열린다. 행사 기획자에 따르면, 190개국의 35억 명이 매년 투르 드 프랑스를 관람하며 도로 옆에서 1천2백만 명의 관중이 사이클 선수에게 환호를 보낸다.

1903년 대회 시작부터 2012년까지 영국의 사이클 선수들은 우승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난 6년 동안 영국은 다섯 번이나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런 이례적인 성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제임스 클리어는 최근 칼럼 제목을 “코치가 1%씩 작은 일들을 개선했고, 그 결과가 여기 있다”라고 붙이고, 2010년 영국 사이클 팀을 승리로 이끈 데이브 브레일스포드를 다루었다.

브레일스포드는 1%의 개선을 “한계 이익들의 집합”이라 불렀다. 그는 선수들과 관련된 모든 일의 1% 개선 전략을 세웠으며, 영양부터 훈련 프로그램, 사이클 의자의 인체공학 디자인, 타이어 무게까지 1%씩 개선해 나갔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간과하는 영역에 주목했다. 양질의 잠을 제공하는 베개, 효과만점의 마사지 젤, 감염을 피하기 위한 손 씻기 등등. 그는 이런 전략을 그의 팀이 성공적으로 실행한다면, 5년 안에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실제로 영국 선수들은 3년 만에 우승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 아들의 형상을 닮게 되는 것”이다(로마서 8:29). 성령은 삶의 전 영역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 가도록 일하고 계시며, 더도 덜도 아닌 바로 그 목적을 성취하실 것이다.

우리는 종종 인생에서 기념비적인 변화와 희생이 요구되는 과정을 성화(聖化)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죄를 짓거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중대한 변화를 요구하신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에 성령께서는 점진적으로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신다. 우리를 빚고, 이끌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일상의 모든 것들을 사용하신다.

문제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지나치게 작은 것에 만족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현상에 안주하면서, 하나님의 계획을 경계한다. 꾀바른 생각으로 안주를 위장한다.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겸손이 하나님을 방해한다고 말한다. 루이스의 표현을 빌면 우리는 완전한 신성을 구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에 저항한다. “나는 성인이 되는 걸 기대한 적 없다. 그저 예의 바르고 평범한 사람이 되길 바랐다.” 이런 말을 하면서 자신이 겸손하다고 생각한다. 루이스는 이런 태도를 “치명적 오류”라고 부른다.

그는 설명한다. “물론 우리는 어떤 종류의 피조물이 되길 원한 적도, 요구한 적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만들고 계신다. 우리는 스스로 무엇이 되고자 했는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을 때 의도하신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하나님은 발명가이며 우리는 기계일 뿐이다. 하나님은 화가이며 우리는 그림일 뿐이다. 우리에게 되라고 한 그 무엇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야 하나?”

태어나기 전 우리는 자궁 속에서 “야채와 같은” 혹은 “물고기와 같은” 모습들을 거쳐 왔다는 것을 루이스는 상기시켜 준다. “우리는 야채나 물고기와 같은 상태에 머무는 데 만족했을 것”이라고 루이스는 믿는다. 어느 날 무엇이 될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점은 이것이다. “그와 같은 일이 보다 높은 차원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라 부르는 상태에 머무는 데 만족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다른 계획을 수행하시고자 한다. 그러한 계획으로부터 후퇴하여 움츠러드는 것은 겸손이 아니다. 그것은 게으름이고 비겁함이다. 하나님의 계획을 따른다는 것은 교만이나 과대망상이 아니라 순종이다.”

이런 유혹에 물들지 않도록 인간 역사에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종이었던 두 사람을 생각해 보자. 주님이 예언자가 되라고 예레미야를 불렀을 때(예레미야 1:5), 그는 “주 여호와여 보소서 저는 어린아이라 말할 줄 모릅니다”(6절)라고 응답했다.

예레미야의 말이 겸손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을 보라. “너는 어린아이라고 말하지 마라 내가 너를 보내는 모든 사람에게 너는 가야만 하고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해 너를 구할 것이다”(7-8절).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는 “여호와여 저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주께서 주의 종에게 말씀하신 후에도 그렇습니다 저는 말이 어눌하고 혀도 둔합니다”(출애굽기 4:10). 이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 입을 준 자가 누구냐 또 귀머거리나 벙어리가 되게 하거나 눈으로 보게 하거나 눈멀게 하는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11-12절).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겸손을 주의하라.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나는 대리석 안에서 천사를 보았고, 그를 놓아 주기 위해 조각을 했다.”

성령은 당신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여 주시려고 오늘도 일하고 계신다. 지금 당장 성령께 좀 더 예수님을 닮게 해달라고 청하지 않겠는가?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것들을 모두 없애 달라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겠는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품성만 드러나도록 이끌어 달라고 하지 않겠는가?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은 성화로 가는 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대로 절대로 될 수 없다고 우기는 겸손은 성화의 적이다. 당신의 겸손은 어떠한가?

(* 편집자 주 : 짐 데니슨 문화사역자의 7월 13일 칼럼 일부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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