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들도 배가 무척 고팠다. 그때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시대였고, 양식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성경에 먹는 문제가 매우 자주 나오는 이유이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 6:25). 그만큼 의식주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배고프시고, 목마르시고, 헐벗으시고, 아무 데서나 주무셔야 하는 노숙자 신세도 되셨다.

그날도 안식일이었다. 일해서는 전혀 안 되는 날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는 엄명이 십계명 네 번째이다. 그날은 창조주 하나님도 안식 곧 편안하게 쉬셨고, 사람은 물론 가축들까지도 안식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40년간 헤맬 때였다.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하다가 모세와 아론과 모든 회중 앞으로 끌려 나왔다. 돌로 쳐서 죽였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었다(민 15:32-36). 그럴 정도로 안식일은 엄격하게 지켜졌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제자들과 함께 지나가셨다.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길을 열어가면서 이삭을 잘라 먹었다. 이것을 발견한 바리새파들이 예수님을 공격했다. 어찌하여 안식일을 지키지 않느냐고 호령했다. 배가 고파서 남의 밭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은 허용된 때였다.

그때 예수님은 천지개벽할 수준의 가르침을 베푸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막 2:27). 그리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근거는 바로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라고 하셨다(막 2:27-28). 하나님은 ‘제사 제도보다는 제사의 정신인 자비를 원하신다’는 말씀(마 12:7)도 덧붙이셨다. 다윗이 전쟁 중에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성전에 들어가 진설빵 열두 개를 부하들과 함께 나누어 먹은 사건을 실례로 드셨다. 법조문에 매여 법 정신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시다. 오히려 법 정신을 살려내야 법조문도 살아난다.

예수님은 이 말씀 한 마디로 온 인류의 모든 문명이 서야 할 자리를 확고하게 정립시켜 주셨다.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문명은 살리는 문명이냐 죽이는 문명이냐 둘로 나눌 수 있다. 음식이나 의복이나 집과 같은 문명물들은 모두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모든 지식, 기술, 제도, 예술, 산업, 통신과 교통...... 이런 문명들도 사람의 생명을 살려내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총기와 핵무기 등에서 보는 것처럼 지금 인류의 문명은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도구로 무섭게 악용되고 있다. 

2000년 9월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비행기로 폭파했던 사건은 인간 생명을 살려야 하는 문명을 오히려 죽이는 문명으로 악용한 대표적 사례였다. 어찌하여 인간이 그토록 흉악한 동물이 될 수도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당연한 결과이다. 

<대표 저서: 목회자의 최고표준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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