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지음 / 김영사 펴냄(2018)

 

철학 교수이자 수필가인 저자가 평생에 걸쳐 쓴 글들 중에서 알짬만 모아 ‘100세 철학자의 대표산문선’을 출간했다. 상실론, 인생론, 종교론, 책 속 수필선이란 소제목 아래 25편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머리글을 대신하여’라 이름 붙인, 여는 글에서 ‘온갖 고통과 불행의 원인은 한 가지, 무책임과 상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애의 결핍과 포기였다. 인간은 자신의 삶과 인격을 존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하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 인간은 내가 나를 위하는 것같이 서로가 사랑함으로 행복과 희망을 창조할 권리와 의무를 갖고 태어났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러한 경건한 의무와 책임을 생각하면서 『영원과 사랑의 대화』 이후에 쓰인 글들을 선별해 모은 것'이라고 말한다. 첫 번째로 수록한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만이 새로 쓴 글이라고 저자는 덧붙인다.

백수를 코앞에 둔 저자는 최근 산문에서 '세상사는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고, 만났던 사람들은 헤어지게 마련이었다.'면서 '두 여인이 떠나 가정이 비었는데, 두 친구가 먼저 간 후에는 세상이 비어버린 것 같아졌다. 그래도 나를 위한 시간들이 아직은 남아 있다.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와 "힘드시지요?"라고 물으면, 나는 "예,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할 것 같다.”고 말한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1920~ )는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나 일본 조치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미국 시카고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의 연구 교수를 역임했다. ‘대한민국 철학계 1세대 교육자’로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초대회장으로 추대되었으며, 한국 철학계의 거두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도 방송, 강연, 집필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60년대의 베스트셀러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비롯해 수많은 수필집과 철학 서적을 펴냈다. 그 외의 저서로 『인생, 소나무 숲이 있는 고향』, 『나는 사랑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 『윤리학』, 『헤겔과 그의 철학』, 『종교의 철학적 이해』, 『역사철학』,『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세월은 흘러서 그리움을 남기고』(2008)와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2012)를 펴냈다.

(본문 중에서)

“내게 남겨진 시간이 길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현재가 최상의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통해 행복을 찾아 누리려는 신념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6쪽)

“우리는 밤의 암흑을 몰아내기 위해 촛불을 켠다. 초는 불타서 사라지고 만다. 초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그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초는 빛으로 바뀔 수 있어야 그 빛이 우주에 영원히 남을 수 있다. 그리고 암흑은 그 힘 때문에 자취를 감춘다.”(77쪽)

“옛날부터 우리는 육십, 즉 회갑 관념에 붙잡혀 살았다. 육십은 이미 늙어버린 나이이며 칠십은 고희(古稀)라는 잠재 관념 때문에 회갑만 지나면 나 자신도 늙었다고 생각하며 칠십이 지났는데 누가 나를 인정하며 받아주겠는가 하는 생각을 스스로 해버리곤 한다. 육십이라고 해서 늙으라는 법도 없으며 칠십을 지냈다고 해서 나 자신을 늙은이로 자인할 필요도 없다. 인생은 육십부터이며 칠십은 완숙기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82쪽)

“세상에는 질서가 있고 생활에는 의미가 있듯이 산책에도 이치가 있다. 아침 산책은 마음의 그릇을 준비하고 육체의 건강을 촉진시키는 소임(所任)을 맡아 주고, 저녁 산책은 마음의 내용을 정리하여 육체의 휴양을 채워 준다. 사색을 위해서는 오전이나 오후의 소요가 자연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으므로 좋고, 자연의 미를 느끼기에는 해 뜨기 전에 떠나서 아침볕과 같이 돌아오는 길이 좋다. 석양을 받으며 떠나서 황혼에 돌아오는 산책도 자연을 감상하기에 흡족하다. 안개 속 소나무 사이로 흘러드는 아침저녁의 고요, 산밑이 온통 그림자로 채워지는 부드러운 장막 속에 잠겨 보는 심정, 이 모두가 얼마나 아름다운 정서인가! 사람들은 바빠서 산책의 여유가 없다고 한다. 평생 그렇게 마음이 바쁜 사람은 큰일을 남기지 못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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