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저널
> 문화 > 생활글 | 시와 수필
난 시누이로소이다
윤효순  |  캘리포니아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8.18  00:26:1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사람의 마음처럼 묘한 것도 없는 듯하다. 내 소유인 내 마음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참 많다. 복잡한 문제를 제법 대범하게 처리하는가 하면, 하찮은 일 같은데 잠을 설치기도 한다, 상대방의 작은 눈짓 하나로 속을 절절 끓이기도 한다. 잘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갖고 있는 그 부분이 열등감의 발로이기도 하고, 앞선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저만큼 뒤처진 것을 알아내고 무안해 하기도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내 딴에는 최고로 배려하는 마음을 발휘하는데도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며, 좋은 관계가 깨지기도 한다. 배려한다는 자만심이 낳은 결과이었던가?

거기에 오랜 세월 가족으로 살아도 온전히 마음을 열기가 어렵다는 올케와 시누이사이의 미스터리한 감정을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남자 형제가 여섯인 친정에서 난 여섯 올케의 시누이다. 세 명의 여자 형제, 그 중 큰언니는 한국에 계시기에 가족 모임에는 두 명의 시누이들만 참여한다. 당연히 수적으로 열세한 우리가 올케들에게 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 짧은 시간의 만남이니 시누이 노릇을 할 틈조차 없는 게 사실이다. 갈 때마다 비싼 여비를 소비하는 내가 그런 시누이 노릇 때문에 귀한 시간을 빼앗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요즘엔 시댁이 시월드라는 신조어로 불리기도 한다. 거의 모든 여자들이 멀리하고 싶은 세계라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 친정만큼은 참 좋은 시누이인 내가 있어서 천국 같은 시월드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고, 자부심 또한 대단했다. 세상에 그 많은 시누이의 못된 마음을 난 한 조각도 갖지 않았다고 올케들에게 고개를 들고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나만한 시누이가 있으면 데리고 와보라"고.

그러기를 얼마나 오래 했던가. 몇 해 전, 시월드 안의 형편없고 고약한 시누이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큰 방망이로 머리를 치듯 경고해 준 사건을 만나고 말았다.

그 해 이월 중순, 사방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봄이 완연했던 캘리포니아에서 친정인 시카고로 갔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큰 웃음과 함께 기다린 막내와는 달리 무지무지한 추위도 함께 있었다. 주차장으로 가는 중, 차가운 날씨를 의식해야 했다. 지붕 밑에서만 움직이는데도 주차장에서 얼굴에 닿는 공기는 칼날같이 차가웠다. 하필 그날이 추운 지방인 그곳에서도 이월 중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했다고 했다.

친정에 있는 동안 숙소가 될 작은 언니 집에 도착했다. 저녁상을 봐놓고 언니와 형부는 창문에서 서성이다가 우리 일행이 도착하자 차고 문을 활짝 열고 맞아 주었다. 언제 봐도 정다운 얼굴들, 반가운 마음이 앞서 신발을 차고에 벗어두곤 얼싸안고 기쁜 만남을 만끽했다.

이튿날, 내 동선에 따라 운전사가 되어 줄 또 다른 동생이 당도했다. 여기저기 가야 할 곳도 많고 해야 할 일도 기다리고 있어 바로 출발하게 되었다.

차가 달리고 5분 정도가 지났을까? 내 발이 깨지는 것처럼 시리기 시작했다. 이상한 생각과 함께 손이 발로 갔다. 동생은 밤새 신발을 차고에 두었기에 얼었다고 했다. 벗은 신발을 히터의 온기가 나오는 곳에 잘 두고 자신의 재킷을 벗어 내 발을 감싸 주었다. 재킷의 온기로 시리던 발은 곧 따뜻해졌다. 행복한 마음과 함께 나누는 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했다. 우린 목적지에 곧 도착했다.

동생은 내리려는 나를 말렸다. 따뜻한 지방에서 온 누나를 위해 준비해온 털 스카프를 외투 위, 목둘레에 둘둘 감아 준 후에 잠깐 더 앉아 있으라고 했다.

섬세한 사랑의 손길에 눈물이 핑 돌았다. 마음이 뿌듯해지며 행복감이 밀려왔다.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사랑스런 동생을 목소리 높여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행복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누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운전석에서 내린 동생은 미끄러운 주차장 바닥, 차 앞을 조심조심 돌아서 내가 내릴 문을 열고 서 있질 않는가! 언 땅에 혹 발을 헛디딜까 감싸 안고 부축하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순간, 고맙고 사랑스러운 마음 밑에서 이상하게도 억울한 느낌과 함께 고약한 심사가 올라와 버렸다. 예기치 않게 올라온 고약한 것은 ‘아니 우리 올케는 날마다 이렇게 자상스런 내 동생의 보호를 받겠네!’ 올케를 시기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어떤 부부든 서로 의지하며, 다독이며, 챙겨 주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 동생이 자상한 손길로 아내를 살펴 올케가 행복해진다면 손위 누나인 내가 누구보다도 기뻐해야 할 텐데 시샘과 질투를 하고 있다니. 올케한테 한 일도 아니고 나한테 보여준 섬세한 손길 때문에.

그건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이 증명된 악한 시누이 마음의 한 단면이었다. 못난 그 마음은 나도 의식하지 못한 채 꼬깃꼬깃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마음은 꺼내 보여 주기 전에 상대가 미리 알아버리는 법. 좋은 시누이라고 스스로 외칠 때마다 올케들은 내 안의 이 못난 심보를 벌써 알고 있었으리라. 그렇게 창피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나쁘고, 난해한 마음을 소유하고 있었단 말인가? 어찌하여 스스로의 마음조차도 알아낼 수 없었단 말인가! 그 짧은 시간에 좋은 시누이라던 혼자만의 꿈에서 비로소 빠져나왔다.

그 후로 올케들을 만나면 뻣뻣했던 목에서 조금은 힘이 빠지고 있다. 그들 옆에서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말하곤 한다. ‘난 여인들이 적국으로 여기는 시월드 안에서 활개치고 있는 시누이로소이다.’ 자숙하며 낮아지려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생각조차도 자가당착이 될 수 있겠네! 거기에도 덫이 있는 것 같아 바짝 긴장감이 몰려온다.

윤효순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크고 단단한 새 그릇을 주셨습니다
2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
3
건망증 때문에
4
아프간, 연이은 폭탄 테러
5
106. 전도하는 성도 많아지는 게 하나님의 소원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235 N. Elston Ave., Chicago, IL. 60630  |  Tel: (773)777-7779  |  Fax: (773)777-0004  |  청소년보호책임자 : SAMUEL D PARK
Copyright © 2013 The Korean Christian Journal. All rights reserved. mail to kcj@kcj777.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