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태복음 6:5-13).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일 두 가지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일 두 가지는 죄를 안 짓는 것과 우리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는 일입니다. 죄 짓고 싶어 죄 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가 즐거움을 준다고 해도 죄 짓고 싶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 결국 후회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의식의 세계에서 죄를 쫓아낼 수 있다 해도 무의식 속에서 벌어지는 죄까지 쫓아낼 수는 없습니다. 또 개인의 죄가 아니라 사회적인 죄가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또 죄를 짓지 않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은 용서입니다. 다른 피조물들은 자연 그대로 살다가 아무 원한도 남기지 않고 사라집니다. 인간만이 그러지 못합니다. 용서할 수 없는 상처를 한으로 간직한 채 죽어가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살아가면서 상처를 주고받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적어도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덜 주고, 다른 이로부터 덜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길을 부단히 개척해야 할 것입니다. 치유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가 오늘의 삶에 파괴적인 영향을 주지 않도록 상처에 대한 정성어린 돌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이들을 용서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원망과 상처가 떠나지 않으면 결코 남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용서가 힘든 이유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용서

우리가 사소한 일에도 상처를 받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힘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존중감이 없는 사람들은 쉽게 자신을 비하하고 단죄합니다. 스스로를 무가치한 존재, 실패한 존재로 간주하기 때문에 쉽게 상처를 받게 됩니다. 자기 비하와 자기 단죄는 파괴적이고 비그리스도교적입니다. 참된 영성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라는 사실을 늘 떠올리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그의 책 『사랑받는 자의 삶』에서 현대인의 가장 큰 함정은 성공이나 인기나 힘이 아니라 자기 비하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가치 없고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 믿게 될 때 성공이나 인기나 힘은 쉽게 매력적인 해결책으로 다가올 것이다. 진정한 덫은 자기 비하이다. 자기 비하는 영성생활의 가장 큰 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받는 자'라는 거룩한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가장 큰 적은 자기 비하입니다. 영성가들은 자기 비하를 사단의 운동장이라고 부릅니다. 사단은 여러 가지 무기를 써서 우리 영혼을 파괴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그 무기들은 인간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 분노와 악한 마음을 품게 하는 것, 걱정과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 자기를 비하하도록 만드는 것 등입니다. 그중에 가장 강력한 무기는 자기 스스로를 비하하고 단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성가들은 사단과 그의 졸개들이 자존감과 자신감이 부족한 영혼들에게 구미를 가장 많이 느낀다는 말합니다. 사람들이 자기 비하에 빠지는 것은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자신, 실수한 자신, 넘어지고 비틀거리는 자신을 긍휼하게 바라보고, 그러한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자기 비하는 더 이상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을 용서한 사람에게 자기 비하란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 존중이 낮은 사람이 오히려 자의식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자기를 존중할 줄 모르고 다른 이들 중심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실상 자신을 더 많이 의식하기 때문에 더 자기중심적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바람이 너무 커서 그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거나 돌보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사랑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칭찬을 받아야 안심하는 칭찬중독증에 걸리기 쉽습니다. 또 자기 자신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조종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겉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이 인정받기 위해서 행동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에서 우리라는 복수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에는 나와 다른 이들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허물도 용서해야 하지만 ,자신의 허물도 용서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용서야말로 진정한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자기애

1)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기독교의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 계명에는 세 가지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 자기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입니다. 이 세 가지 사랑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세 가지 사랑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그것은 참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믿지 못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 10:15)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나를 내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성가 린네 페이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한 그리스도인일 수 있다. 하지만 내 자신을 미워한다면 하나님의 빛은 뒤틀린 나를 통해서 비추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나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내게 들려주시려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 그리고 교정의 말씀을 듣지 않을 수 있다. 내가 타인에게 의존해 있으면 있는 그만큼 그들이 인정해 주기를 바랄 것이며 나아가 그들의 허락까지 찾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을 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합쳐져서 온전한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주기도의 청원을 드릴 때마다 "나 자신을 용서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2) 우울증의 원인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존감이 결여될 때 그것은 우울증의 원인이 됩니다. 기독교 심리학자인 돕슨 박사는 우울증을 초래하는 원인 열 가지를 제시하고, 비교적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기혼 여성들에게 우울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부터 순서대로 나열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제시한 열 가지 원인은 사랑이 결핍된 결혼생활 /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 / 자기 비하감 / 자녀 문제 / 경제적 곤란 / 고독감, 격리감, 지루함 / 성 생활 문제 / 몸의 아픔, / 피로감과 시간에 쫓김 / 나이를 먹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자기 비하감을 선택했습니다.

3) 성숙한 자기애

성숙한 자기애는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자기애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 보살피는 마음, 자기 존중, 책임감 등이 포함됩니다. 자기애가 있을 때 남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기애는 자기중심적인 태도나 이기심 혹은 자만심과는 다릅니다. 때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존감을 높인다면서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자기 사랑은 이기심과 다를 바 없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이기적이 아니면서 올바르게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성숙한 자기애와 이기심의 차이를 갈릴리 호수와 사해를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와 사해의 물은 같은 물입니다. 갈릴리 호수의 물이 흘러 사해에 이릅니다. 갈릴리 호수는 요단강 상류에서 신선한 물을 공급 받아 요단강 하류로 흘려보냅니다. 갈릴리 호수 덕분에 물고기들은 물론 신선한 야채들이 이스라엘 전역에서 자랄 수 있습니다. 반면 사해는 요단강 물을 받아들이지만 다른 곳으로 더 이상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명체가 살지 못하는 죽은 바다가 된 것입니다.

두 호수에서 보듯이, 성숙한 자기애는 생명을 받아서 그 생명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지만 이기심은 받아서 챙길 뿐 남에게 일체 내어놓지 않습니다. 성숙한 자기애는 자신의 안녕과 복지에 유익이 되는 일도 하지만, 그와 똑같이 다른 이들에게도 유익이 되는 일을 합니다.

그러한 성숙한 자기애를 가로막는 것이 바로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용서야말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성숙한 자기애를 지니고 이웃 사랑을 하는 출발점입니다.

용서의 이유

그렇다면 용서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하면, 그것이 어렵고 힘든 일일지라도 우리 자신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 용서는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이 뉘우쳤기 때문이 아니라, 분노와 화와 적개심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분노, 화, 적개심과 같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감정들이 마음 속에 있으면 우리 몸이 견디지 못합니다. 육체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잠식해 몸과 영혼을 질식시키는 독소로 작용합니다.

하버드 대학의 비틀만 박사에 의하면, 화를 자주 내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장마비를 일으킬 확률이 두 배나 높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상처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나만 화병에 걸린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용서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체와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 용서는 꼭 필요합니다. 용서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청원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이들에게 피곤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함께 지내기 어려운 사람은 불평과 불만에 차 있는 사람입니다. 부정적 감정이나 생각만큼 전염성이 강한 것은 없습니다. 한 사람이 우울하면 그 옆에 있는 사람도 우울해지기 쉽습니다. 만일 누가 지난날의 불행을 붙들고 이웃을 탓하고, 가족을 원망하고, 분노에 차 있다면 결국 아무도 곁에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못할 것입니다.

증오심보다 잘 자라는 것은 없습니다. 분노에 증오심이 더해지면 상처를 키우게 됩니다. 과거에 상처 준 그 사람이 우리의 마음 속을 다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웃이나 가족에게 피곤한 사람, 불만에 차 있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입니다.

영성학자들은 미움은 마귀에게 자기 마음을 내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귀의 운동장에서 놀지 않으려면 용서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곤한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용서해야 합니다. 미움이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용서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의 행복을 위해 노심초사하시고 바른 길을 제시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용서란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해결 방식입니다. 인간인 우리가 가장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일을 우리에게 명하시는 건 우리의 육체와 영혼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 땅에서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실수투성이입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비겁하고, 게으르고, 불성실한지 모릅니다. 그 사실을 남은 몰라도 자신은 잘 압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경멸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래서 용서는 우리 자신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직시하고, 그런 자신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할 수 있는 존재, 긍휼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 청원에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는 주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자신을 용서하십시오. 자신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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