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Spirituality 75

“예수 비유 묵상” 여섯 번째 시간에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마 20:1-16)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비유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일꾼을 구하러 아침 일찍 거리로 나갔습니다.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약속하고 일꾼을 구해 포도원으로 들여보냈는데, 아침 9시에 또 나가보니 거리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도 일꾼으로 채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낮 12시에도 나가서 일꾼을 구하고, 오후 3시에도 나가고, 마지막으로 오후 5시에도 나가서 일꾼을 구해 포도원으로 들여보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제십일시에 포도원으로 들어온 사람은 우리 시간으로 오후 5시에 들어온 사람입니다. 결국 뒤늦게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모든 일은 오후 6시에 끝났습니다. 일이 끝난 후 포도원 주인이 일꾼들에게 품삯을 계산해 주었는데, 아침 일찍 나온 사람이나 오후 5시에 나와 한 시간만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약속받은 품삯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아침 일찍부터 나온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듭니다. 이들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어떻게 아침 일찍 나와서 하루 종일 일하고 수고한 우리와 한 시간만 일한 사람을 똑같이 대우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옳지 않다. 포도원 주인은 정의롭지 못하다.’ 지금 이들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의 분노는 포도원 주인이 상징하는 하나님에 대한 분노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행하시는 것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계산하는 우리, 사랑하는 하나님

포도원 주인이 오후 5시에 일꾼을 들여보낸 이유를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마 20:6-7) 이 말씀에서 우리는 길에서 놀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발견합니다.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그들은 놀고 있었던 것 같지만, 사실은 고통 받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아무도 그들을 써주지 않아서 뙤약볕에서 한없이 기다리며 애가 탔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면 오늘 저녁 처자식 밥은 어떻게 먹일까’ 걱정하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일자리가 없어본 사람은 이들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침에 신발끈을 묶고 일을 나가면서 ‘오늘은 몇 불이라도 벌 수 있을까’ 걱정했던 사람은 이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마음을 꿰뚫어보십니다. 하나님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이들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약한 자들의 편을 드는, 기울어진 정의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기울어져 있습니다. 약하고, 소외되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자들을 하나님은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이것이 세상의 관점으로는 불공평해 보이지만, 이들의 고통과 애타는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은 이들에게 기울어진 정의를 베푸십니다.

이것은 마치 부모와 자식들의 차이 같습니다. 형제들끼리는 무엇이 섭섭하고,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 다툼과 분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부모는 다릅니다. 때로 부모는 자녀들에게 불공평하게 대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자녀에게 더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그것은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공평한가를 넘어서, 부모는 어떤 자녀가 지금 가장 힘들고 어려운가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냉정히 평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또한 우리를 사랑으로 바라보십니다. 우리는 계산하지만,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계산하기에 때로 섭섭하고 분노하지만, 하나님은 사랑하시기에 사람들의 약함을 함께 아파하십니다. 하나님의 기울어진 정의는 이 사랑을 깨달을 때에만 이해가 됩니다. 때로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다른 사람에 대한 분노와 섭섭함, 비교하는 마음을 버릴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깨달으면 우리의 불평이 사라집니다. 우리도 하나님처럼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가 속한 가정과 교회 공동체가 회복됩니다.

 

우리는 오후 5시에 들어온 사람

그런데 우리는 이 비유를 읽으면서 큰 착각에 빠져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왜 스스로를 아침 일찍 들어온 일꾼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우리를 아침 일찍 들어온 일꾼의 시각으로 이 비유를 읽으라고 했습니까? 우리는 당연하게  자신이 아침 일찍 들어온 사람이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분노하고 섭섭해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오후 5시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구원 받을 수 없는 죄인이 겨우 턱걸이로 주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자기 멋대로 살다가 인생의 해가 질 무렵인 오후 5시에 겨우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주님께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거부하고 살다가, 인생의 후반부에 비로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비유는 우리가 오후 5시에 들어온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할 때, 올바로 읽게 됩니다. 자격 없는 사람을 구원하시고,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교만한 우리에게 언제나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삶의 희망이 없던 우리에게 새롭게 일어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주시고, 그리고 나같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일을 맡겨 주시니, 우리는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을 경험하면 삶의 불평,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와 섭섭함이 모두 사라집니다.

 

사랑의 성자

한국교회사에서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늘 감동을 줍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옥고를 치렀고, 해방 후에는 여수순천반란 사건 때 두 아들을 공산당원에게 잃고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그 청년을 양자로 삼아서 목사로 키우셨습니다. “사랑의 성자”라는 별명을 가진 손양원 목사님 이야기 중에 가장 감동적인 일화는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말한 아홉 가지 감사입니다. 어느 누구도 아들의 장례식에서 감사를 이야기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감사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해 드리면 이렇습니다.

“나 같은 죄인의 가정에서 순교의 자식이 나게 하셨으니 감사하고, 삼남 삼녀 중에서 가장 귀여운 맏아들과 둘째 아들을 바치게 하셨으니 감사하고, 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으로 갔으니 감사하고, 사랑하는 아들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양자 삼고자 하는 마음 주신 것 감사하고,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것이 손양원 목사님이 아들의 장례식에서 말한 감사의 내용입니다. 이분의 마지막 감사,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말씀은 손 목사님의 믿음과 삶의 중심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음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늘 뜨겁게 경험했고,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실천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모든 고난과 삶의 문제를 이겨낸 원동력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오후 5시에 들어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이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심을 기억할 때, 우리는 삶의 문제들이 사랑으로 회복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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